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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가 나이 든 사람에게는 ‘배려’가 되는 이유

중앙일보 2019.07.18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39)
경기도 파주 감악산 출렁다리. [중앙포토]

경기도 파주 감악산 출렁다리. [중앙포토]


출렁다리
지금 여기와 아직 저기에 가로 걸쳐
비낀 저녁노을마저
비틀거리게 만드는 출렁다리
 
길 끝에서 골과 마루는 때때로
바람의 방향이 달라 흔들리는 것이리라
 
세월 따라 비슷한 듯 다른
사랑의 눈높이를 다투는 연인들처럼
 
외아들이 다투는 실전 권투경기를
눈 돌리고 지켜보는 어미의 마음처럼
 
눈 돌리고 싶었던
생의 침전물 속 내 모습에
발그레해지는 두 뺨처럼
 
엇갈린 무언가에 매달려 출렁인다는 건
슬픔인지 경이로운 유혹인지
 
해설
몇 년 전부터 체험 여행이 대두되면서 각 지자체에서는 명소에 케이블카를 만들거나 출렁다리를 지어 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는다. 자연환경을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이런 시설은 나이나 건강 등 제약으로 몸소 체험할 수 없는 사람에게 소중한 감동을 선사하는 계기가 된다. 환경을 잘 지키는 일도 포기할 수 없지만, 관광에 소외되었던 사람에게 특별한 기회를 주는 일도 보람된 사업일 게다.  

 
소통과 만남의 상징 다리  
출렁다리 앞에 서니 생각보다 흔들림이 심하게 전해온다. 다리의 흔들림은 골과 산마루 차이에서 오는 바람의 방향이 엇갈릴 때 심해진다고 한다. 경기도 파주 감악산 출렁다리. [중앙포토]

출렁다리 앞에 서니 생각보다 흔들림이 심하게 전해온다. 다리의 흔들림은 골과 산마루 차이에서 오는 바람의 방향이 엇갈릴 때 심해진다고 한다. 경기도 파주 감악산 출렁다리. [중앙포토]

 
얼마 전에 마장호수와 감악산 출렁다리에 내자와 함께 다녀왔다. 감악산 출렁다리를 건너 운계폭포와 범륜사를 지나 산 중턱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갔다. 출렁다리가 걸쳐있는 전체 조망을 굽어보니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석양이 지는 멋진 광경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계곡이나 물로 길이 끊어진 자리, 그 허공에 다리를 놓는다는 건 여하튼 기특한 생각이 아닌가. 어렸을 적에 누구나 한 번쯤 허공을 가로질러 저쪽으로 날아가 보고픈 상상을 했을 것이다. 건강하고 다리가 튼튼한 사람은 그런 시설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체험은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출렁다리 앞에 서니 생각 보다 흔들림이 심하게 전해온다. 출렁다리 바로 아래 실마천 계곡으로 난 굽은 도로가 멀미를 더한다. 예전에는 저 길로 감악산 등산을 했으리라. 안내문을 보니 범륜사까지 이어진 산 아랫길이 십리 길이라 한다. 출렁다리가 생겨 시간과 공간을 축약해준 셈이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의 짜릿한 체험은 덤이고 말이다. 다리의 흔들림은 골과 산마루 차이에서 오는 바람의 방향이 엇갈릴 때 심해진다고 한다.
 
다리는 떨어진 두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로 소통과 만남을 상징한다. 오작교는 멀리 떨어진 견우와 직녀도 일 년에 한 번은 만날 수 있음을 뜻한다. 두 사람간의 소통은 상대방을 배려하는데서 출발한다.
 
구두끈이 풀어졌다는 친구의 말에 그 연극배우는 고맙다며 고쳐 맸다. 그리고 친구가 나가자 다시 구두끈을 풀고 연습했다. 그는 구두끈을 풀고 연기해야 하는 거지 역할이었지만, 친구가 잘되라고 지적해준 거니 그냥 그대로 들어주었던 거다. 배려는 대단한 행동이 아닐 수 있다. [사진 pixabay]

구두끈이 풀어졌다는 친구의 말에 그 연극배우는 고맙다며 고쳐 맸다. 그리고 친구가 나가자 다시 구두끈을 풀고 연습했다. 그는 구두끈을 풀고 연기해야 하는 거지 역할이었지만, 친구가 잘되라고 지적해준 거니 그냥 그대로 들어주었던 거다. 배려는 대단한 행동이 아닐 수 있다. [사진 pixabay]

 
어떤 연극배우가 무대에서 연습하고 있었다. 그때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가 찾아왔다. 그 친구는 배우를 보고 말했다. “친구야, 네 구두끈이 풀어졌어.” 그러자 배우는 고맙다는 듯이 얼른 구두끈을 고쳐 맸다. 그리고 친구 앞에서 연극 연습을 계속했다. 조금 후 그 친구가 나갔다. 그러자 배우는 구두끈을 다시 풀어놓고 연습을 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옆 사람이 물었다. “왜 그렇게 하세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내 배역이 거지입니다. 구두끈을 풀어헤쳐 어수룩하게 보이는 거지 역할입니다. 그런데 내 친구가 구두끈이 풀어졌다고 지적한 건 나름대로 나를 잘되라고 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대로 들어 주었습니다. 이제 그가 다시 나갔으니 원래대로 풀어 놓아야 하겠지요.”

 
이런 행동이 배려이다. 먼저 남의 생각을 읽고 그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배려다. 만약 그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들어 설득하려 했다면 곧 이해는 했겠지만, 마음에 어떤 그림자는 남았을 것이다. 그럼 다음번에 비슷한 충고를 다시는 들을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배려와 설득의 차이
배려는 남이 보기에 대단한 행동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그렇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지니려면 막연해서 선뜻 실천하기 어렵다. 배려는 어떤 인식이 아니라 행동 양식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몸에 배지 않으면 겉으로 드러나기 어렵고 쉽게 따라 하기는 더 힘들다.
 
또 배려는 단순히 습관이 아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어떤 조건에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관성적인 힘에서 벗어나 새로운 행동 양식을 창조하는 것이다.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그려나가는 게 배려이다. 체험과 숙고를 통해서 삶의 양식을 바꾸는 실천이다. 그것도 무조건 내가 먼저 손수 행하는 것이 배려다.
 
골이 깊으면 산마루도 높을 것이니 배려에는 반드시 보답이 따라온다는 걸 믿어보자. 설득은 감정을 북돋울 수 있지만, 배려는 감동을 북돋는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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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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