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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와 오차즈케 나눠먹는 며느리…긴 시간이 만든 평온

중앙일보 2019.07.18 07: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26)
 주인공이 아들부부와 함께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갈등을 다룬 영화 '쿵후선생'의 한 장면. [사진 영화 쿵후선생 스틸]

주인공이 아들부부와 함께 살게 되면서 겪게 되는 갈등을 다룬 영화 '쿵후선생'의 한 장면. [사진 영화 쿵후선생 스틸]

 
배가 부를 때까지 드시지 않는 시아버지. 한두 입 남길 때도 허다했다. 아침 식사로 토스트를 즐기셨었으나 지금은 이가 듬성듬성해져서 오차즈케(お茶漬け)를 즐기신다. '오차즈케'는 쉽게 말하면 밥에 간단한 찬거리를 얹고 물이나 차, 육수를 말아 먹는 것이다. 라면 스프처럼 한 끼씩 포장된 제품이 많다. 저렴한 것에서부터 고가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아침이나 야식으로 딱 좋다.
 
한 그릇 싹 비우시던 분이 요즘 번번이 남기신다. 체중이 떨어지지 않아 건강 걱정은 없는데 남긴 밥을 버릴 때의 죄책감이 껄끄러웠다. 반반씩 나누어 먹기로 했다. "아버님이 남기시니까 반은 제가 먹기로 했어요"라며 그릇을 보여드렸다. 허허 웃으신다. 며느리도 같이 웃는다. 식탁 위에 준비해 놓은 간식거리와 야채 주스가 야무지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 주식이 아니면 간식이 있지.
 
시부와 내가 웃음을 되찾을 때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6~7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결혼 후 15년 이상을 같이 살아온 시부와 며느리는 대판 싸웠다. "내 집에서 나가라"라는 말까지 나왔다. 남편이 외동아들이기도 해서 시부모와 같이 살았고, 친딸처럼 잘해야지 하며 살아온 15년여의 세월이 풍비박산 나는 순간이었다. '15년을 사이좋게 살아도 며느리는 남이구나'라고 실감했다.
 
집에 기본적으로 준비해 놓는 오차즈케(위). 시간이 없을 때 점심으로, 늦게 귀가했을 때 야식으로 먹기도 한다. 끓인 물이나 녹차, 육수를 끼얹어서 먹는 오차즈케(아래). 오차즈케는 일본의 전통요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달해 있다. 고급요리집에서도 오차즈케를 낸다. [사진 양은심, photoAC]

집에 기본적으로 준비해 놓는 오차즈케(위). 시간이 없을 때 점심으로, 늦게 귀가했을 때 야식으로 먹기도 한다. 끓인 물이나 녹차, 육수를 끼얹어서 먹는 오차즈케(아래). 오차즈케는 일본의 전통요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달해 있다. 고급요리집에서도 오차즈케를 낸다. [사진 양은심, photoAC]

 
그 당시 큰아들이 고2만 아니었어도 가족을 데리고 시집에서 나갔을 것이다. 남편이 말리기도 했지만, 큰아들의 대입을 생각하면 이사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경제적인 이유로 눌러앉았다. 만약 그때 집을 나갔다면 나는 장례식 외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배신감이 컸다. 그 후 나는 오지랖 넓은 며느리를 그만두었다. 부탁받은 일 외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딸 같은 며느리가 되어야지'는 자기만족에 불과했음을 절실히 느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했던가. 문득문득 오지랖 넓은 짓을 하려는 마음이 꿈틀거렸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고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내가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때까지 3년 정도 걸렸지 싶다. 시부모와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나는 편해졌다.
 
2017년 10월 시모가 갑자기 세상을 떴다. 그해 여름부터 누워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시부는 혼자가 되었다. 만 90세. 대화할 사람도, 화낼 상대도, 책임져야 할 아내도 없다. 정년퇴직 후 가사를 분담하고 아침 식사 준비까지 했던 시부는 모든 것에 의욕을 잃었고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모가 돌아가신 이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식사량이 줄었고 체력이 떨어졌다. 체력이 떨어지니 화장실 실수를 했다. 올 것이 왔구나! 탈취제와 향초를 사 모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체력이 떨어지는 원인은 '언제 죽어도 좋다!'며 식사를 하지 않는 데에 있었다. 구청에 상담하고 요양사를 계약해 식사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받았다. 요양사들은 프로였다. 어르고 달래며 30~40분 들여 죽 한 사발을 다 드시게 했다. 살이 오르기 시작하고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90을 넘겼으니 100세까지 살고 싶으시단다. 며느리는 말한다. "그럼 잘 드셔야겠네요."
 
따로 빨던 시부의 빨래를 어느 날부터 같이 빨기 시작했다. 빨래를 널며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하늘은 응어리가 없는 사람은 빨리 데려가고, 풀어야 할 응어리가 있는 사람은 남겨두는구나. [사진 pxhere]

따로 빨던 시부의 빨래를 어느 날부터 같이 빨기 시작했다. 빨래를 널며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하늘은 응어리가 없는 사람은 빨리 데려가고, 풀어야 할 응어리가 있는 사람은 남겨두는구나. [사진 pxhere]

 
시부가 싫어하는 것은 강요하지 않는다. 마찰을 줄이기 위함이다. 꼭 필요할 때는 요양사의 힘을 빌린다. 주 4일 주간 보호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시부는 싹 잊어버리지만, 생활에 활기가 생겼다. 사람과의 교류, 사회와의 연결고리는 가족의 힘만으로는 만들기 어렵다.
 
산 넘고 바다를 건넌 기분이다. 탄탄해졌다고 여겼던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는 뜻하지 않은 풍랑을 겪어야 했다. 지금은 안다. 인간이기에 실언도 한다는 것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도 같이 살다 보니 연민이라는 감정이 생겼다. 나 또한 실언도 하고 실수한다. 참고 산 것은 나만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알고 나니 흘려보낼 줄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따로 빨던 시부의 빨래를 '우리 빨래'와 같이 세탁기에 넣는 내가 있었다. 꺼낼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이렇게 받아들여지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빨래를 널며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하늘은 응어리가 없는 사람은 빨리 데려가고, 풀어야 할 응어리가 있는 사람은 남겨두는구나'라고. 시모와의 사이에 풀어야 할 응어리는 없었다. 하지만 시부와 나 사이에는 풀어야 할 생채기가 있었다.
 
시부는 잊었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깊은 상처였고 후유증이 남아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시부는 입만 열면 '고맙다'라고 하신다. 아물지 않을 거라 여겨졌던 상처에 새 살이 돋기 시작했다. 시부와 싸웠을 때 집을 나갔다면 미움과 원망만 남았을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상태로 오래 사시게 할까'를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착해서가 아니다. 시부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화장실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절실한 바람 때문이다. 노인이라고 과보호하지 않고, 가능한 한 사회제도를 이용하고, 아들 손자를 끌어들여 혈육의 정을 느끼게 하고 있다. '혈육의 사랑'보다 더 효과 있는 보약은 없다. 며느리인 나의 역할은 주의 깊게 관찰하며 오차즈케를 나누어 먹는 정도이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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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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