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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시선] ‘설마 타령’과 ‘희망적 사고’란 이름의 쌍둥이

중앙일보 2019.07.18 00:27 종합 28면 지면보기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를 보면서 3년 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를 떠올렸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 보복 가능성을 낮게 봤다. 주된 근거는 “마늘분쟁(2000년) 때와 달리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에 가입해 국제규범을 준수하는 나라가 됐다”는 이유였다. 주중 대사관 당국자가 자료를 들춰가며 특파원들에게 친절히 브리핑해 준 기억이 생생하다. “설마 중국과 같은 대국이 속 좁게 보복 조치를 하겠냐”는 고위 당국자도 있었다. 그 뒤 어떤 결과가 일어났는지는 모든 국민이 지켜본 대로다. 보복이 두려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정부의 안이한 상황 판단을 지적하는 것이다.
 

8개월간 사전 경고 무시하고
설마하다 당한 일본 보복 조치
임진왜란 ‘황윤길 교훈’ 잊었나

아베 정부의 보복 조치는 충분히 예상되던 일이다. 일본이 100여개 항목의 보복 리스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건 연초부터 모든 일본 언론이 보도한 기정사실이었다. 많은 전문가와 언론들이 “단순한 으름장이 아니다”며 일본의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정부는 ‘설마’ 타령을 반복했다. “보복 조치를 하면 일본도 피해 볼 게 뻔한데 자충수를 두겠냐”는 논리였다. 6월 초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금 한·일 관계가 최악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상 초유의 경제보복 조치가 현실화된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되묻고 싶다. 그렇게 8개월을 흘려보낸 결과 ‘설마’가 기업을 잡고 나라 경제를 잡는 지경에 이르렀다.
 
‘설마’는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와 같이 붙어 다니는 쌍둥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것이라 기대하는 희망적 사고에 빠지면 냉정하게 정세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현장에서 정확한 보고가 올라와도 무시하기 십상이다. 안타까운 것은 ‘설마’가 아직도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정부 당국의 백그라운드 브리핑에는 이번 조치를 선거전략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보인다. 일본 참의원 선거(21일)에서 불리한 아베 신조 총리가 보수 우익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초강경 카드를 빼들었다는 것이다. 한술 더 떠 “선거가 끝나면 강경 자세가 누그러질 것”이라고도 한다.
 
도쿄 현지에서 살펴보니 이런 분석은 상당 부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하필이면 본격 선거전이 시작될 시점에 보복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선거를 의식한 측면이 다분히 있다. 하지만 가두 유세나 TV 연설에서 수출 규제 조치를 거론하며 표를 호소하는 후보는 보지 못했다. 선거 쟁점이 아니란 얘기다. 아베가 선거에 불리해 카드를 빼들었다는 점도 사실과 다르다. 자민당의 목표는 53석이지만 지금 판세로는 60석 가까이 차지하며 여유 있게 승리할 전망이다. 선거 후 분위기기 바뀔 것이란 전망이야말로 희망적 사고다. “선거가 끝났다고 거둬들일 카드가 아니다. 유일한 변수는 한국 정부의 자세와 행동”이라는 게 일본 관료와 언론인,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일본 관료는 “한국 정부가 징용공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1965년 청구권협정과 모순이라고 본다. 그러니 협정의 한쪽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한국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직접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협상의 여지가 생긴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대법원 판결과의 정합성을 다듬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3권 분립 때문에 정부가 나서기 어렵다”는 태도는 문제를 풀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일본은 받아들인다. 8개월 만에 제시한 ‘1+1 안’이 그 자리에서 거부당한 이유다.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지는 8월 초 결정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 하루빨리 설마 타령과 희망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설마가 나라를 잡은 실례가 있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에 다녀온 사신 두 사람(김성일과 황윤길) 가운데 김성일의 엉터리 보고를 믿고 방책을 게을리 한 결과 조선은 7년 국난을 당했다. 일본 사신을 만난 오억령도 왜적이 침입해 올 것이라고 보고했으나 “전쟁은 없다”는 희망적 사고에 빠져있던 조정은 민심을 혼란시킨다며 오억령을 파직했다. 8개월 전부터 우리에게는 “일본의 보복이 빈말이 아니다”고 직언한 황윤길과 오억령이 분명히 있었지만 정부는 “일본 편만 든다”며 ‘토착 왜구’취급을 하고 귀를 닫았다. 그 결과 이제 ‘12척의 배’ 말고는 기댈 데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도쿄에서>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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