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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 3국 중재 꼭 수용해야 하나…강제조항 없어, 2011년 일본도 불응

중앙일보 2019.07.18 00:03 종합 6면 지면보기
고노 다로. [AFP=연합뉴스]

고노 다로. [AFP=연합뉴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은 1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한국의 수출관리제도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이 제3자 중재를 수용하는 것은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상의 의무라고 했다. 고노 외상 언급의 사실관계를 짚어봤다.
  

고노 외상 인터뷰 팩트체크
한국이 전략물자 수출관리 부실?
재래식 무기 포함 광범위한 통제
ISIS 평가 순위, 한국이 일본 앞서

화이트국가 제외는 WTO 무관?
특별한 예외사유 없이 특혜 취소
최혜국 대우 의무 위반 가능성

“재래식 무기에 대해 캐치올 규제를 도입하지 않는 등 한국 내 수출관리제도가 꼭 충분하지는 않다.”사실과 다르다
 
한국은 2003년 이후 대량살상무기(WMD)와 재래식 무기에 대해 ‘캐치올(catch all·무기 전용 가능한 전략물자를 WMD 제조 가능성이 있는 국가에 수출할 수 없도록 통제)’을 적용하고 있다. 재래식 무기를 제외한 일본보다 통제 범위가 넓다. 일본은 화이트 리스트 27개국 이외 국가에 이 규제를 적용하지만 한국처럼 사후 보고 의무 규정이 없다. 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지난 5월 발표한 전략물자 무역관리 제도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200개 국가 중 일본(36위)보다 높은 17위였다.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는 것은 간소화한 절차를 통상의 절차로 되돌리는 것이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다소 틀리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조는 같은 상품 수출입 때 WTO 회원국 사이에 차별을 두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화이트 국가로 수출할 때보다 더 엄격한 수출 규제가 돼 최혜국 대우 의무 위반 가능성이 있다.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특별한 예외 사유가 없는 한 특혜 취소 조치도 원칙적으론 최혜국 대우 의무 위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2005년 8월, 일본에서 받은 무상자금에 강제동원으로 고통받은 역사적 피해 보상금도 포함돼 있다고 공표했다.”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 때 행정법원의 판결에 따라 ‘한·일 회담 문서 공개 민관 공동위원회’(공동위원장 이해찬 당시 총리, 이용훈 변호사와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도 위원으로 참여)는 외교 문서를 전면 공개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협상 당시 ‘고통받은 역사적 피해 사실’에 근거해 정치적 보상을 요구했고, 이런 요구가 무상자금 산정에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며 “일본에서 받은 무상 3억 달러는 개인 재산권, 조선총독부 대일채권 등 한국 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징용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됐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다만 개인의 청구권을 특정하진 않았다.
 
“청구권 협정에서 일본이 유·무상 5억 달러의 경제협력을 약속하고(1조) 양국 및 국민 간 재산·청구권에 대한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2조) 명문 규정으로 확인했다.” 내용엔 있지만 해석이 다르다
 
이상갑 변호사(왼쪽)가 지난달 21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앞에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후속 교섭 요청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이국언 시민모임 상임대표. [연합뉴스]

이상갑 변호사(왼쪽)가 지난달 21일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앞에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후속 교섭 요청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이국언 시민모임 상임대표. [연합뉴스]

이런 내용이 청구권 협정문에는 있다. 한국이 제시한 8개 대일 청구 요강에 강제징용 피해 보상이 포함된 것도 맞다. 8개 항목 중 5항이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 청구’다. 하지만 산정 근거 자료 부족으로 각 항목을 개별 집계해 총액을 계산하는 대신 포괄적으로 전체 청구권 총액만 제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본이 이에 응해 합의된 게 청구권 협정 1조와 2조다.
 
하지만 일본이 왜 5억 달러를 낸 건지, 1조와 2조의 상관관계가 안 나와 있다. 즉 청구권 해결 여부인지가 모호하게 처리됐다.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피징용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이 식민 지배의 불법성 자체를 부인해 이런 내용까지 협정에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 청구권을 인정하며 “원고들은 미지급 임금, 보상금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를 구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청구권협정에선 일본의 불법행위가 인정되지 않은 만큼 피해자의 위자료 청구권도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일본 전범 기업들은 청구권 협정으로 면죄부를 받았을 뿐, 강제노동으로 자산을 쌓았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정부가 일본 기업과 청구권 자금으로 이득을 본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기금으로 보상하는 이른바 ‘1+1’ 제안을 한 배경이다.
  
“한국은 협정상 의무에 따라 18일까지 중재에 응하길 요구한다.” 사실과 다르다
 
청구권협정 3조는 ▶협정과 관련한 분쟁이 생기면 외교 경로로 해결하고(3조의 1) ▶안 될 경우 30일 내 양국이 임명하는 위원 등으로 중재위원회를 구성하며(3조의 2) ▶30일 내 구성이 안 되면 제3국 정부가 중재위원을 임명하도록(3조의 3) 했다. 일본은 한국의 1+1 제안을 거부하며 3조의 2, 3조의 3에 따른 중재위 구성을 요구했는데, 그 기한이 18일이다.
 
하지만 3조에 ‘협정상 의무’란 조항은 없다. ‘외교적으로 대처했어야 했다’는 내부의 지적은 있을 수 있지만, 일방의 요구에 응할 의무는 없는 셈이다. 2011년 9월 한국의 위안부 피해 배상 문제 협의 요청을 일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는 아직 3조의 1에 따른 1+1 제안에 대한 외교적 협의가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입장이다.
 
유지혜 기자, 세종=김기환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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