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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 황인춘 “내 골프 인생에 봄이 왔다”

중앙일보 2019.07.18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황인춘. [성호준 기자]

황인춘. [성호준 기자]

“그때는 KPGA 프로만 되면 대박이라고 생각했죠. 메이저 대회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디 오픈 첫 출전하는 늦깎이 골퍼
불혹 넘은 나이에 메이저 도전
처음 참가하는 선수 중 최고령
충분한 스트레칭이 롱런 비결

황인춘(45)은 골프를 늦게 시작했다. 아버지를 따라 스무 살 때 처음 연습장에 가 봤다. 10개월 동안 골프를 배우다 일반병으로 군 복무를 하고 나서 22세에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제대 후 집안 사정이 나빠진터라 볼을 주우면서 틈틈이 배우는 연습생으로 골프를 했다. 29세에 프로가 되더니 30세에 투어 프로가 됐다. 다들 대단하다고 했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에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승을 거뒀다. 역시 늦깎이로선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걸로 끝나는 듯했다. 2017년 황인춘이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 7년 만에 우승했을 땐 다들 “고목에 꽃이 피었다”고 농담을 했다. 그러나 이것도 끝은 아니었다. 황인춘은 18일 개막하는 메이저 대회인 디 오픈 챔피언십에 참가한다. 지난 6월 열린 한국 오픈에서 2위를 하면서 출전권을 땄다.
 
날 궂은 북아일랜드 북쪽 해안에 있는 로열 포트러시에 모처럼 해가 떴다. 봄날처럼 따사로운 날씨였다. 45세의 나이에 디 오픈에 처음 출전하는 황인춘의 표정도 아주 밝았다. 그는 “와이프가 나이 먹어서 대단하다고 하더라. 열두 살인 아들은 혹시 내가 TV에 나오게 된다면 좋아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황인춘이 이번 디 오픈 출전 선수 중 최고령 선수는 아니다. 그러나 처음 출전하는 선수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다.
 
골프를 늦게 시작한 황인춘이 서른이 다 돼서 프로 테스트에 합격하고, 40대 중반에 오히려 더 높은 자리에 오른 이유는 뭘까. 황인춘은 “다른 선수들과 생각이 좀 달라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디 오픈 챔피언십이 열리는 로열 포트러시 골프장. [AP]

디 오픈 챔피언십이 열리는 로열 포트러시 골프장. [AP]

 
“다들 공을 똑바로 치고 싶어 한다. 그건 몹시 어렵다. 그러나 내 자신의 구질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치면 골프가 몹시 어렵지 만은 않다. 세미프로가 되고, 정회원이 될 때도 나는 공을 똑바로 치지 못했다. 다 슬라이스 구질이었다. 드라이버는 왼쪽 OB라인을 겨냥하고 쳤다. 4번 아이언은 20야드 왼쪽, 7번 아이언은 10~15야드 왼쪽을 봤다. 웨지를 칠 때도 왼쪽으로 오조준했다.”
 
황인춘이 요즘도 그렇게 슬라이스를 내면서 골프를 하는 건 아니다. 그는 “스윙은 계속 변화한다. 몸도 달라지고, 장비도 바뀌고 주변 상황도 바뀐다. 슬라이스를 훅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조금씩 적응하는 것이 좋다. 아마추어 골퍼도 에이밍과 어드레스, 셋업 같은 것을 바꾸면 스윙을 크게 뜯어고치지 않고도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황인춘이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다시 경쟁력이 좋아진 것은 거리가 늘어난 덕분이다. 그는 “부드럽게 힘을 모았다가 폭발시키는 스윙을 연마했다. 1년 넘도록 이런 방법으로 스윙하고 있는데 거리가 15야드 정도 더 나간다. 아직 완전히 적응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허리 때문에 고생하는 타이거 우즈(미국)보다 황인춘이 한 살 더 많다. 나이가 들어서도 골프를 잘하는 이유가 뭘까. 황인춘은 “스트레칭을 많이 한다. 사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면 한 시간 정도 한다고 대답했는데 실제론 스트레칭 시간이 더 길다. 일어나자마자 3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고 시간만 나면 몸을 풀어 준다”고 말했다.
 
가장 오래된 골프 대회인 디 오픈은 노장에게도 열려 있는 대회다. 딱 10년 전인 2009년 대회에서 당시 59세의 톰 왓슨이 4라운드 막판까지 우승 경쟁을 펼쳤다. 2011년엔 대런 클락, 2012년 어니 엘스, 2013년 필 미켈슨, 2016년 헨릭 스텐손이 우승했다. 모두 40대에 메이저 챔피언이 됐다.
 
황인춘은 “처음엔 컷 탈락할 것으로 여기고 이틀간 여행 왔다고 생각하고 경기할까 했는데, 두 번째 연습 라운드를 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힘으로만 되는 코스가 아니다. 링크스에서는 지혜와 경험이 중요하단 것을 알게 됐다. 티샷이 일정하게 페어웨이에 가면 기회가 있을 것도 같다”고 했다. 
디 오픈을 앞두고 박상현(가운데)과 함께 연습라운드하는 황인춘. [성호준 기자]

디 오픈을 앞두고 박상현(가운데)과 함께 연습라운드하는 황인춘. [성호준 기자]

 
그는 지난해 KPGA 투어에서 페어웨이 적중률 2위를 기록했다. 황인춘은 “2년 전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을 때 내 이름의 춘(春)자처럼 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 출전한 지금이 더 화려한 봄이 아닌가 싶다.내 인생의 봄이 어디 가 버린 것이 아니라 근처에 머물고 있던 것이었다. 내가 그 봄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승은 어렵더라도 한국 선수 디 오픈 최고 성적인 8위(최경주) 이상의 성적에 도전해 보겠다”고 말했다.
 
포트러시=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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