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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하다] '말타기'중 다쳐도 신고…'황당 학폭위' 제보 쏟아져

중앙일보 2019.07.17 15:30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 가해자라니요. 다른 아이랑 통화하는 걸 들어보니 ‘죽고 싶다’는 말까지 하면서 울더라구요.”
 
수도권의 한 중학교 3학년인 A군의 어머니 정모씨는 17일 ‘탐사하다 by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문제를 꺼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15년간 아이를 키우면서 ‘학폭’은 남의 얘기로만 생각했던 정씨였다. 하지만 A군은 지난주 졸지에 학폭 가해자로 지목됐다.
 
사연은 이랬다. A군은 얼마 전 우연히 2학년 B양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단 얘기를 들었다. A군은 B양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학교 후배의 일이라고 생각해 중재를 시도했다고 한다. A군은 B양을 괴롭힌다는 후배들에게 직접 전화를 해 “여러명이 같은 반 친구 한 명을 괴롭히고 따돌리는 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2학년 후배들은 “B가 틈만 나면 학폭으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고 괴롭혀 지금은 아는 체도 않는 사이”라며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억울해했다. A군은 이런 내용을 SNS에 올렸는데, B양이 글을 쓴 A군과 댓글을 단 학생들까지 모두 학폭에 해당한다며 학교에 신고한 것이다. 학교측에 따르면 B양은 주변 친구들과 다툼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학폭위 소집을 요구했다고 한다. 올해 초엔 B양이 한꺼번에 10여명의 학생을 지목해 학폭위 소집을 요구하면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씨는 “학폭위가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는 커녕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고 협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교측은 “일단 학폭 신고가 접수되면 규정에 따라 무조건 학폭위를 소집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탐사하다 by 중앙일보’의 ‘길잃은 학폭위’ 보도(7월16·17일) 이후 전국에서 “우리 학교도 학폭위 문제가 심각하다”는 제보 메일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 장난이 학폭위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남학생 4명이 ‘말타기 놀이’를 하다가 C모군의 앞니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가 난 C군의 부모는 다른 3명을 학폭으로 신고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의 어머니는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C가 실수로 넘어지면서 발생한 사고인데 무작정 학교폭력이라고 하면 어떡하냐”며 “선생님들도 중재를 하려는게 아니라 ‘일단 학폭위부터 열고 보자’는 식이었다”며 답답해 했다.
 
반대로 ‘학폭위 부작용’이 부각되면서 실제 피해 학생들이 위축되는 사례도 생긴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박모(15)군은 올해 초부터 같은 반 친구 6명에 의해 지속적으로 금품갈취 등을 당하다 참다못해 학폭위 소집을 요구했다. 이 때부터 반에서 박군을 지목해 “괜히 쟤랑 어울리다간 학폭 신고당할 수 있다”며 따돌림이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박군은 피해자였음에도 다른 학교로 전학을 떠나야 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당초 취지에 벗어난 학폭위 오·남용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학교는 사법기관이 아닌데 학폭 수준에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학폭위를 개최하면서 정작 교육적 회복과 중재는 뒷전이 됐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도 대책마련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폭위 제도 자체를 폐기할 순 없지만 ‘제대로 된 학폭위’를 만들기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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