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랑스서 400만 웃었다, 오합지졸 중년남성들의 수중발레 도전기

중앙일보 2019.07.17 08:00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에서 어쩌다 보니 수중발레에 도전한 위기의 중년들. 대회 참가에 의의를 두려던 그들의 소박한 계획은 열혈 코치로 인해 180도 달라진다.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에서 어쩌다 보니 수중발레에 도전한 위기의 중년들. 대회 참가에 의의를 두려던 그들의 소박한 계획은 열혈 코치로 인해 180도 달라진다. [사진 엣나인필름]

배 나온 중년 남자들이 수중발레에 도전한다. “게이 아냐?” 하는 주위 빈정거림도 모자라 왜 그렇게 쓸데없는 일에 열심이냐는 가족들의 한심스런 눈빛까지 무릅쓰고.  
 

18일 개봉 佛 코미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프랑스서 마블영화 제치고 420만 관객 흥행
중년 위기에 수중발레로 인생 2막 연 남자들
"캐스팅이 5성급" 프랑스 연기파 스타 총출동
시원한 수중발레 볼거리, 뭉클한 성장담 펼쳐

18일 개봉하는 프랑스 코미디 영화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감독 질 를르슈)은 동네 수영장의 수중 발레팀 모집공고를 보고 우연히 뭉친 오합지졸 여덟 사내들이 국제대회 출전까지 하게 되는 성장담. 저마다의 인생사에 웃음을 듬뿍 실어 지난해 프랑스선 420만 관객을 모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블랙 팬서’ ‘아쿠아맨’ 등을 제치고 지난해 흥행 6위까지 올랐다.  
 
우울증·이혼…위기의 중년에 찾아온 수중발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예민한 이혼남 로랑(기욤 까네)은 버럭하는 성미 탓에 아내와 아들마저 떠난다. 양극성 장애를 앓는 어머니는 그의 또 다른 아픔. [사진 엣나인필름]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예민한 이혼남 로랑(기욤 까네)은 버럭하는 성미 탓에 아내와 아들마저 떠난다. 양극성 장애를 앓는 어머니는 그의 또 다른 아픔. [사진 엣나인필름]

우울증이 심해 2년째 백수인 가장 베르트랑(마티유 아말릭)과 화를 벌컥벌컥 내는 성미 탓에 이혼당한 까칠남 로랑(기욤 까네), 손만 대면 망하는 파산 직전 사장님 마퀴스(브누와 뽀엘부르드) 등 주인공은 하나같이 위기의 중년들. 수중발레만큼은 엄청난 실력자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잠수조차 서툰 왕초보인 탓에 발끝 한 번 모으는 기본 동작에도 온갖 몸 개그를 불사한다.  
 
그런 이들이 감히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금메달을 꿈꾼 이유는? 이렇게라도 발버둥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당장 바스러져 증발해버릴 것만 같아서다. 문 닫기 직전의 고교 수영부를 수중발레로 되살렸던 일본영화 ‘워터 보이즈’의 꽃미남 남학생들과는 삶의 무게부터 차원이 다르다.  
 
"게이 아냐?" 비아냥 웃어넘기게 된 힘은…
물속에서 완벽하게 호흡 맞추기 위해 둥글게 손잡고 하늘을 향해 누운 수중발레팀. 대회 출전을 위한 훈련 과정의 하나다. [사진 엣나인필름]

물속에서 완벽하게 호흡 맞추기 위해 둥글게 손잡고 하늘을 향해 누운 수중발레팀. 대회 출전을 위한 훈련 과정의 하나다. [사진 엣나인필름]

덩치 큰 어른 남자들이 휠체어 탄 자그마한 코치 아만다(레일라 벡티)의 독한 훈련에 쩔쩔매고 열 받는 광경을 키득대며 보다가도 그런 인생사가 드러난 대목에선 울컥하게 된다. 영화 초반 안하무인격으로 예민하거나, 허세가 과해 보기 불편했던 이들의 모습은 알고 보면 저마다 자신을 지켜온 어설픈 무기였다.  
 
홀딱 벗어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낸 수영복 차림처럼 차츰 ‘센 척’ ‘좋은 사람인 척’을 벗어던진 이들이 그렇게 드러난 저마다의 다름을 껴안는 방식도 유쾌하다. 그렇다고 그런 변화를 마냥 감상에 젖어 그리지만 않는 점이 이 영화의 묘미다. 딸네 학교 급식소에서 일하며 변변한 집도 없는 처지지만 로커의 꿈을 못 버렸던 시몽(장 위그 앙글라드)은 서로 솔직하게 터놓게 된 친구들로 인해 자신의 실력을 비로소 직시하게 된다. 바닥을 쳤던 그들의 인생은 서로로 인해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다.  
 
"5성급 캐스팅" 배우들, 7개월간 수중발레 훈련
밖에선 안 보여도 물 속에선 이런 각고의 노력이 이뤄진다. 맨 아래에서 받쳐주는 사람은 발군의 잠수실력이 필수다.[사진 엣나인필름]

밖에선 안 보여도 물 속에선 이런 각고의 노력이 이뤄진다. 맨 아래에서 받쳐주는 사람은 발군의 잠수실력이 필수다.[사진 엣나인필름]

배우들이 직접 7개월간 배워 소화했다는 수중발레 대회 장면은 그 자체로 속 시원한 볼거리다. 다리만 물밖으로 나온 동작은 7년 훈련해도 어려워 이것만 대역을 썼단다. ‘펀치 드렁크 러브’ ‘이터널 선샤인’ 등 감미로운 영화 OST로 이름난 존 브라이언 음악감독의 선율도 뭉클하게 흥을 돋운다.  
 
프랑스에선 “캐스팅이 5성급”(대중잡지 '클로저')이란 호평이 나올 만큼 연기파 스타들이 총출동한 영화다. 가장 극적 변신을 보여주는 베르트랑 역의 마티유아말릭은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전신마비 환자 역, 까칠한 로랑 역의 기욤 까네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러브 미 이프 유 데어’ 등 장르를 넘나든 섬세한 감정연기로 여러 연기상을 휩쓸었다. 독특한 블랙코미디 ‘이웃집에 신이 산다’를 본 관객이라면 이기적인 신 역할을 맡았던 벨기에 배우 브누와 뽀엘부르드가 반가울 것이다.  
 
"우리 세대 중년의 권태·우울 8년 전부터 탐구"
주인공들'끼리'의 이해와 나눔이 아니라 이들을 돕는 코치들, 가족들도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뭉클함이 번져가는 과정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묘미. [사진 엣나인필름]

주인공들'끼리'의 이해와 나눔이 아니라 이들을 돕는 코치들, 가족들도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뭉클함이 번져가는 과정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묘미. [사진 엣나인필름]

각본과 연출을 겸한 질 를르슈는 코미디 영화 ‘세라비, 이것이 인생!’ 등에서 탁월한 연기를 펼친 배우이기도 하다. “10년 전 영화를 위해 알코올중독자 익명 모임에 갔다가 그 모임의 따뜻한 응원과 대화, 비판하지 않는 분위기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는 그는 “내 세대의 사람들, 프랑스 사회에 느껴지는 권태감, 잠재적 우울증을 탐구하고 싶어 8년 전 첫 대본을 쓰고 5년에 걸쳐 이 영화를 완성했다”고 전했다.  
 

“나를 매혹시키는 것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시립구장에서 축구를 하기 위해 일요일 밤 20km를 이동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공통점도 딱히 없지만 헌신과 팀 정신이 있어서 경기가 끝나면 함께 술을 마시러 가는 그런 관계 말이다. 그들이 친구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인생에서 매우 특정한 시기를 공유하고, 바로 그 순간들에서 스포츠 그 자체보다 큰 무언가가 탄생한다.” (질 를르슈 감독)

 
로커의 꿈을 버리지 못한 시몽(장 위그 앙글라드)도 조금은 변한다. 딸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 [사진 엣나인필름]

로커의 꿈을 버리지 못한 시몽(장 위그 앙글라드)도 조금은 변한다. 딸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 [사진 엣나인필름]

한여름 원기를 가만히 북돋워 주는 시원한 영화다. 큰 과장 없이 삼삼하게 웃기는 유머코드도 보고 나면 자꾸 생각난다. 15세 관람가.  
어쩌면 이렇게 캐릭터도 제각각인지.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는 캐릭터를 한명쯤은 발견하게 된다. [사진 엣나인필름]

어쩌면 이렇게 캐릭터도 제각각인지.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는 캐릭터를 한명쯤은 발견하게 된다. [사진 엣나인필름]

관련기사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