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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수배'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 미국서 왜 체포 못하나

중앙일보 2019.07.17 05:00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 [뉴스1]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 [뉴스1]

미국에 머무는 김준기(75)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이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한 혐의로 추가 고소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앞서 김 전 회장은 2년 전 여비서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치료를 이유로 출국한 뒤 경찰의 소환요구에 불응해왔다. 그사이 김 전 회장에게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적색수배’까지 내려졌지만 그는 여전히 송환되지 않고 있다. 
 
범죄인인도 조약 따라 신병 확보 가능 
16일 경찰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범죄인인도 조약을 맺고 있다. 범죄인인도를 요청한 뒤 상대 국가에서 받아들여져야 피의자를 본국으로 데려올 수 있다. 체포영장이 발부돼도 마찬가지다. 김 전 회장은 여비서 사건과 관련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바 있다. 한국의 경우 범죄인인도 청구 권한은 경찰이 아닌 검찰에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에 대한 검찰의 범죄인인도 청구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추방하도록 미국에 요청했고 현재 김 전 회장은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다만 김 전 회장이 미국 현지에서 추방에 대해 재판을 걸어 귀국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도피 3년 만에 필리핀서 체포 된 김대업씨. [연합뉴스]

해외도피 3년 만에 필리핀서 체포 된 김대업씨. [연합뉴스]

한국 경찰이 미국 내에서 수사는 불가능
미국내 한국 경찰이 현지에서 직접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는 등의 수사 권한은 없다. 주미 한국영사관에 경찰관이 파견 중이지만 외교관 신분이다. 수사권이 주권의 일종이기 때문에 한국 경찰의 미국 내 수사는 불가능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반대로 미국 경찰이 직접 한국에 도피 중인 미국인 피의자를 검거한다고 생각해봐라. 수사권, 주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리안데스크(현지 파견 한국경찰)가 활동 중인 필리핀도 수사당국의 협조를 얻은 뒤 수사를 벌여야 한다고 한다. 최근 경찰이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장남의 병역비리 의혹인 이른바 ‘병풍 (兵風)사건’을 일으킨 김대업(57)을 필리핀 이민청과 협조해 붙잡은 경우다. 적색수배자였던 김대업은 사기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상황 추정 녹음파일 공개   
김 전 회장은 2016년부터 1년 동안 자신의 경기도 남양주 별장에서 일했던 가사도우미 A씨를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이런 내용을 담아 지난해 1월 김 전 회장을 고소했다. A씨는 김 전 회장이 주로 음란물을 본 뒤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고소인인 A씨에 대한 조사는 마쳤지만, 미국으로 출국한 김 전 회장이 소환에 응하지 않아 피고소인 조사는 벌이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당시 A씨의 피해 상황으로 추정되는 녹음파일까지 공개된 상태다. 녹음이 파일에는 김 전 회장이 A씨에게 “나 안 늙었지” “나이 먹었으면 부드럽게 굴 줄 알아야지” “가만히 있어” 등의 말을 한 정황이 담겼다. 
 
김 전 회장 측 "합의된 관계였다" 부인 
이런 A씨 주장에 대해 김 전 회장 측은 “합의된 관계였다”며 성폭행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에게 합의금을 줬는데 추가로 거액을 요구하려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전 회장 측은 여비서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비서가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했다고 주장했었다. DB그룹 측은 “김 전 회장이 이미 물러난 상황에서 그룹 차원에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해 5월 김 전 회장의 가사도우미 성폭행 건과 여비서 성추행 건 모두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보낸 상태다. 1년 이상 사건이 사실상 멈춰서 있는데 수사가 재개돼 김 전 회장이 송환될지, 아니면 자진 귀국할지 관심이다.   
회삿돈 322억원을 빼돌린 뒤 21년을 도피한 한보그룹 회장의 4남 정한근(55)씨. 에콰도르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기 위해 파나마를 경유하는 비행기에 탔다가 파나마 이민청에 의해 공항에서 붙잡혀 보호소에 구금됐다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는 모습. [뉴스1]

회삿돈 322억원을 빼돌린 뒤 21년을 도피한 한보그룹 회장의 4남 정한근(55)씨. 에콰도르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기 위해 파나마를 경유하는 비행기에 탔다가 파나마 이민청에 의해 공항에서 붙잡혀 보호소에 구금됐다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는 모습. [뉴스1]

 
대기업 일가 해외도피 의혹 잇따라  
한편 대기업 일가의 해외 도피 의혹은 비일비재하다. 21년간 도피행각을 벌였던 한보그룹 정태수 전 회장의 4남 정한근(54)씨가 대표적이다. 정씨는 수백억원대 회삿돈을 해외 비밀계좌를 통해 빼돌린 혐의가 불거지자 해외로 내뺐다. 행방이 묘연했던 정씨는 에콰도르 입국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체포됐다.
 
범 LG가(家) 3세 구본현(51)씨는 주가조작 혐의에 대한 금융당국의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해외로 출국해 도피의혹을 받고 있다. 구씨는 지난해 10월 네덜란드로 출국한 뒤 종적이 묘연한 상태다.
 
반면 변종 마약 구매·흡입 혐의를 받고 있는 현대가 3세 정현선(29)씨는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 영국으로 출국해 한때 도피성 출국 의혹이 불거졌지만 자진 귀국해 체포됐다.
 
김민욱·김민상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수정:2019년 7월 17일
기사가 나간뒤 검찰이 송환 관련 추가 사실을 알려와 관련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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