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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2035] 조국 수석의 허망한 죽창론

중앙일보 2019.07.17 00:23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준영 정치팀 기자

김준영 정치팀 기자

잘못 본 줄 알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죽창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최악의 한일관계 속인데, 한가로이 드라마 ‘녹두꽃’(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전봉준 일대기)에 나온 배경음이 ‘죽창가’였음을 알아차렸다고 자랑하려는 목적은 아니었을 거다. 조국은 몰랐을 리 없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시초는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으로 말미암은 고부 민란(1차 거병)이다. 전봉준이 봉기를 일으키기 전 돌린 사발통문엔 “고부성 점령, 조병갑 처형, 탐관오리 처단, 서울 진격”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당초 그들의 죽창은 집권세력의 무능과 부패를 겨눴다는 얘기다.
 
창끝을 일본으로 돌린 건, 드라마 녹두꽃에도 나오듯 고종이 동학군에 보낸 거의(擧義) 밀서가 한몫했다.(황태연, 『갑진왜란과 국민전쟁』) 시기적으론 고종이 청나라를 끌어들여 동학군을 진압하려 하자, 일본이 톈진조약을 빌미로 자동 개입해 경복궁을 무장 점령(1894년 7월)한 전후였다. 본인의 오판으로 자처한 일제 침략에 동학군을 방패막이 세운 셈이다.
 
조국에겐 또 다른 죽창의 기억도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헬조선’을 부르짖던 청년들을 대표하는 구호는 “죽창 앞에선 너도 한방 나도 한방”이었다. 이들의 절망을, 정권 교체 동력으로 바꿨던 인사 중 하나가 바로 서울대 조국 교수였다. 그는 제자뻘 청년들에게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헬조선’이 ‘민주공화국’을 대체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학자와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의 간극은 크다. “대책을 내놓아야 할 정부가 민족주의에만 기댄다”는 야권 비판이 쏟아지는 까닭이다. 그러자 한 여권 인사는 야당을 겨냥해 "과거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맞받았다. 다시 1894년. ‘항일 거병’ 밀서에 따라 일본군에 죽창으로 맞선 동학군은 같은 해 12월 우금치 전투에서 전멸 수준으로 스러졌다. 고종은 동학 운동을 ‘비도(匪徒)가 일으킨 난’이라 했고, 전봉준은 이듬해 사형당했다. 대책 없는 감정적 오판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민중이다. 진정 과거를 잊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김준영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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