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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일본 ‘전후세대’의 한국 공습

중앙일보 2019.07.17 00:19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우리는 한국 경제 공습에 나선 일본 정치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상대방을 알아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선 태평양전쟁 이후 태어난 ‘전후(戰後)세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무엇보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에 대해 소극적인 사람들이다. 부족한 과거사 교육 탓도 있지만 ‘사죄 무용론’이 더 큰 듯 싶다. 역대 일본 총리들을 통한 학습효과다.  
 

반일 감정으로는 공세 못 막아
이성적·전략적 접근만 유효
일본 불만도 경청, 포용할 필요

일본 총리들은 거듭 과거사에 고개를 숙였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처음 사과한 1993년 ‘고노담화’가 출발이었다. 이때부터 사과는 계속됐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는 95년 ‘전후 50주년 특별담화’를 내놓았고,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는 98년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죄’를 문서화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2001년 서대문독립공원을 방문해 머리를 조아렸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는 2006년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2017년에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무릎을 꿇는 정치인(하토야마 유키오)도 나왔다.  
 
하지만 한국의 평가는 늘 박하다. 고이즈미가 헌화한 추모비는 공원 정비 명목으로 오간 데 없어졌다. 그래도 하토야마는 “(피해자가)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후세대는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사죄해도 한국이 “진정성이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국을 ‘없는 셈 치고 가도 되는 국가’로 보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전후세대는 일본의 번영과 쇠락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들이다. 한국 경제 공습에 나선 이들은 70~80년대 일본 경제가 미국을 삼킬 듯 뻗어나갈 때 자부심 넘치는 청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잃어버린 20년’을 거쳐 2010년 중국에 세계 경제 2위 자리를 내주고,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세계 경제 12위 국가로 성장했다. 이런 상대적 박탈감을 겪으면서 이들은 무기력과 함께 위기감에 빠져들었을 터다. 한국을 도와야 할 역사의 피해자로 봤던 전전(戰前)세대와 달리, 전후세대에겐 한국이 눌러놔야 할 경쟁자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런 조바심은 급기야 ‘경제 정한론(征韓論)’이란 괴물로 자라났다. 벼르던 차에 뺨을 때려준 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다. 이는 5억 달러를 제공해 한국 경제 발전을 지원한 한·일청구권협정의 근간을 뒤흔드는 ‘신뢰의 위기’라는 게 그들 입장이다. 아베가 “국가 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분명한 상황에서 무역관리 규정도 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 이유다. 여론조사에서도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가 타당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일요일 참의원 선거 후에는 오히려 보복 공세가 더 강화될 것이란 예상이 어렵지 않은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배 12척”에 이어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고 결의를 다졌지만 일본이야말로 장기전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아베 측근들의 면면을 보면 보인다. 경제 공습의 선봉장을 자처한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은 “아베 총리를 위해서라면 분골쇄신하겠다”고 맹세한 사람이다. 그는 “수출 규제는 협의의 대상이 아니고, 철회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직전에 방위상을 지낸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자민당 안보조사회장은 “(한국의) 이번 정권하고는 절대 관계가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다닌다. 이들 모두 전후세대다.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정면 강공은 하책이다. 오히려 이들의 불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외교력을 발휘하라는 얘기다. 외교란 게 무엇인가. 나라 밖의 시장을 관리하고 외국 국민의 마음을 사는 고도의 정치 행위 아닌가. 마치 북한 달래듯 포용적인 자세로 아베 정권을 설득해야 한다. 감정적 불매운동이나 시대착오적 반일(反日) 몰이로는 일본 국민을 우리 편으로 만들지 못한다. 이성적·전략적 접근만이 국익을 위한 길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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