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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보복 리스트 있다는 김상조···정작 실무담당 과기부는 "없다"

중앙일보 2019.07.16 16:24
박태희 산업2팀 기자

박태희 산업2팀 기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3일 "일본이 수출 제한할 품목의 롱 리스트를 갖고 있다. 일본이 우리 아픈 곳 1~3번을 딱 집었다"고 말했을 때, 불행 중에도 두 가지는 다행스러웠다. 우선 정부의 정보 수집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 또 하나는 공격 지점을 알고 있으니 맞춤형 대응책도 나오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로부터 12일이 지난 1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회 업무보고에서 유영민 장관은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내놨다. 롱 리스트에 관한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지자 유 장관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청와대 실장과 내각의 각료가 대한민국 대표 산업의 존폐가 걸린 문제로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면, 청와대가 가진 일본의 '공격 리스트'가 수비 대책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실무 부처에 공유되지 않았단 얘기다. 그 12일간 소재 수출 제한은 본격화했고 한국 반도체 업계에는 반도체 역사상 가장 짙은 불안감이 드리워졌으며, 일본이 다음 타깃으로 어떤 품목을 옥죌지 몰라 산업계가 마른 침을 삼키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롱 리스트를 갖고 있지 않다는 유 장관의 후속 답변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급망 사슬이 한 번에 흐트러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늦었지만 롱 리스트가 100개든 그 이상이든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해 어떤 것이 영향도가 큰지 분석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겠다." 
 
일이 터진 지 12일이나 지난 뒤에 내놓는 답변으로는 한가하기 짝이 없다. "모든 정보는 공유되고 있고, 관련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다각도로 대책을 수립 중"이라고 말했어도 국민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을 터다. 재계 관계자는 "청와대와 정부 간에 얼마나 손발이 안 맞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혀를 찼다.
 
과기정통부는 매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32%를 쓰는 조직이다. 특히 소재는 기초과학과 연관성이 높아 과기정통부가 발 벗고 나서야 국산화 속도가 빨라진다. 과기정통부의 답변을 해석하면 '일본이 움켜쥐고 있는 우리의 취약 지점도 파악 못한 채 그간 연 20조원 안팎의 R&D 예산을 써왔다'가 된다.
청와대와 내각이 손발이 안 맞고 내각은 국가 경쟁력을 키울 지점을 파악하지 못한 와중에 여당과 청와대에서는 소재 국산화가 덜 된 이유를 기업 탓으로 돌리는 얘기가 시나브로 터져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 최첨단 제품으로 경쟁을 벌이는 기업에 소재 국산화의 책임을 모두 지울 수도, 지워서도 안 된다. 최첨단 제품의 품질은 그 제품에 들어간 소재 중 가장 품질이 떨어지는 소재 이상을 뛰어넘기 어렵다. 최고급이 아닌 소재로 최고급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얘기다.
 
유 장관이 "롱 리스트 없다"고 하던 그 날,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에 경고한다"며 "국산화의 길을 걷겠다”고 했다. 16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한술 더 떠 "소재 독립선언"을 외쳤다. 그러나 속이 후련한 말은 정치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기업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제라도 청와대와 행정부는 정보망을 풀가동하고 필요하면 민간 전문가들의 지혜도 모아야 한다. 그리고는 외교적 명분과 산업적 실익을 두루 따져 치밀하고 정교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는 감성의 영역이지만 경제·산업은 이성과 시장의 영역이다.
 
박태희 산업2팀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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