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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테러" 커터칼 들고 '정치인 현수막' 떼는 구청장

중앙일보 2019.07.16 06:00
지난달 22일 가좌역 인근에서 철거된 정치 불법 현수막. 두 현수막 중 위 현수막은 불법 현수막에 해당 되지만 아래 서대문경찰서의 교통사고 예방 현수막은 옥외광고물법 제8조 예외사항 6항(안전사고 예방, 교통 안내 등을 위하여 표시·설치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합법 현수막으로 철거되지 않았다. [사진 서대문구청]

지난달 22일 가좌역 인근에서 철거된 정치 불법 현수막. 두 현수막 중 위 현수막은 불법 현수막에 해당 되지만 아래 서대문경찰서의 교통사고 예방 현수막은 옥외광고물법 제8조 예외사항 6항(안전사고 예방, 교통 안내 등을 위하여 표시·설치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합법 현수막으로 철거되지 않았다. [사진 서대문구청]

‘빚내서 퍼주는 추경 동의하십니까’
‘예산확보 성공’
 
거리를 지나다니면 정치인 얼굴·이름이 크게 들어간 슬로건 형식의 정치 현수막을 쉽게 볼 수 있다. 총선을 앞둔 최근 서울시 곳곳에 현역 지역구 의원부터 정치 신인까지 앞다퉈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너무 흔해 당연히 문제 없는 걸로 알고 있지만 사실 불법 게시물에 해당한다.
 
이렇게 난무하는 불법 현수막에 한 구청장이 칼을 빼 들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3선·민주당)이다. 실제로 문 구청장은 차에 커터칼을 가지고 다니며 관내에 불법 현수막을 발견하면 직접 철거한다. 문 구청장은 15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현수막으로 도시가 공격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테러'다”며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려면 시민들의 시선이 피곤하지 않도록 여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관내에 걸린 불법 정당 현수막. 서대문구에는 신촌전철역, 동교동로타리 등 주요 교차로와 홍제역 등 지하철역 연세로 등 상가밀집지역에 이러한 정치인들 현수막이 많이 붙어있다.  [사진 서대문구청]

서대문구 관내에 걸린 불법 정당 현수막. 서대문구에는 신촌전철역, 동교동로타리 등 주요 교차로와 홍제역 등 지하철역 연세로 등 상가밀집지역에 이러한 정치인들 현수막이 많이 붙어있다. [사진 서대문구청]

 
옥외광고물법 제3,4조에 의하면 허가를 받지 않거나 신고하지 않고 표시방법을 위반한 현수막은 모두 불법이다. 같은 법 8조에 따라 정치 현수막은 제한적으로 예외를 두기도 한다. 선거관리위원회법에 따라 선거 홍보 등을 위해 설치하는 것, 단체나 개인의 정치활동을 위한 행사·집회에 사용되는 광고물이 그에 해당한다.
 
서대문구 건설관리과는 상시로 순회를 하며 불법 현수막을 발견하는 즉시 철거한다. 분양광고 등 불법 상업 현수막도 모두 철거 대상이다. 문 구청장은 “주말에는 공무원들이 쉰다고 생각해 주말에 집중적으로 현수막을 건다”며 “현수막이 보이면 주말에도 직원들하고 연락해서 즉시 철거한다”고 말했다. 서대문구는 올해부터 6월 말까지 총 3643개 현수막을 철거했다.
 
문 구청장은 “현수막으로 정치하는 시대는 갔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어 “국회의원은 국가 의제로, 지방의원은 동네 의제를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하는데 슬로건으로 정치하는 건 문제”라며 “정치권이 국민의 수준이나 생각을 배려하지 않고 우습게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대문구청이 철거한 불법 현수막. 서대문구는 올해 초 부터 6월말까지 총 3,643개 현수막(행정현수막 121개, 정당현수막 202개, 상업현수막 3,320개)을 철거했다. [사진 서대문구청]

서대문구청이 철거한 불법 현수막. 서대문구는 올해 초 부터 6월말까지 총 3,643개 현수막(행정현수막 121개, 정당현수막 202개, 상업현수막 3,320개)을 철거했다. [사진 서대문구청]

정치인들은 서대문구의 이러한 결정에 항의하기도 한다. 실제로 서대문구의 이러한 현수막 철거에 반대 집회를 연 정당이 있었다. 문 구청장은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으니 반대 집회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 현수막은 법에 따라 불법으로 정한 것이고 나는 구청장으로서 단속해야 할 의무를 지키는 것”이라며 “여야·진보·보수 차별을 두지 않고 모두 철거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 현수막은 미관뿐 아니라 시민들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문 구청장은 “장마나 태풍이 오면 찢어지고 날아가 차의 시야를 막을 수 있어 흉기가 된다”며 “이 기간에는 더 철저히 단속한다”고 말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3선·민주당) [사진 서대문구청]

문석진 서대문구청장(3선·민주당) [사진 서대문구청]

나무나 전신주에 거는 현수막은 불법이지만 구가 지정하는 지정게시대에는 정치 현수막도 허용된다. 서대문구 관내에는 현재 상업용 13개, 공공용 10개의 지정게시대가 설치돼 있다. 서대문 관계자는 “행정현수막은 건설관리과에서 신청받고 있으며, 그 외 일반현수막은 서대문구 도시관리공단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받는다”고 말했다.
 
서대문구는 정치 현수막뿐 아니라 도시 미관을 해치는 다양한 종류의 불법 게시물을 단속하고 있다. 돌출 간판, 불법 세움간판, 전단지 등 유동 광고물도 모두 단속 대상이다. 문 구청장은 “이러한 불법 광고물은 도시 전체 수준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한시적이 아닌 꾸준히 끝까지 단속해야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대문구청 관계자가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는 모습. [사진 서대문구청]

서대문구청 관계자가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는 모습. [사진 서대문구청]

 
문 구청장은 오는 19일 구청장협의회에 이러한 불법 광고물 철거를 안건으로도 제출할 예정이다. 문 구청장은 “서대문뿐 아니라 25개 구가 함께 하면 문화가 될 것”이라며 “지방에도 특히 불법 광고 게시물들이 난무하는데 서울부터라도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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