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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아폴로 11호 달 착륙 50년-인간은 왜 불가능에 도전하는지를 보여주다

중앙일보 2019.07.16 05:00
오는 20일로 인류가 달에 착륙한 지 50주년을 맞는다. 1969년 7월 20일 21시 17분(이하 그리니치 표준시간 기준) 미국 우주항공국(NASA)의 닐 암스트롱(1930~2012년) 선장과 버즈 올드린(89)은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의 착륙선 모듈인 이글호를 타고 달 표면의 ‘고요의 바다’에 내렸다. 인류가 달에 처음으로 착륙한 순간이다. 
1969년 7월 20일 달에 도착한 아폴로 11호의 착륙 모듈 이글호에서 내린 버즈 올드린의 헬멧 유리에 닐 암스트롱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사진 NASA]

1969년 7월 20일 달에 도착한 아폴로 11호의 착륙 모듈 이글호에서 내린 버즈 올드린의 헬멧 유리에 닐 암스트롱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사진 NASA]

 

7월 20일 아폴로 11호 달 착륙 50주년
아폴로 프로그램, 미소 자존심 대결로 시작
케네디,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에 도전"
57년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 발사하자
미국, 과학기술 대대적 혁신해 집념의 반격
관련 투자확충, 수학·과학 교육 과감히 개혁
12년 만에 아폴로 11호 달 착륙으로 대역전
컴퓨터·태양광발전·데이터 기술 등 파생하며
민간분야 혁신 자극, 영감 제공해 경제적 효과

“개인에겐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겐 큰 도약”
이들은 7월 16일 13시 32분 미국 플로리다주 메리트 섬에 있는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새턴 5호 로켓이 쏘아 올린 아폴로 11호로 달 궤도에 도착한 뒤 이글호를 타고 달에 착륙했다. 달 도착 6시간 뒤인 7월 21일 02시 56분 암스트롱은 이글호에서 나와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디뎠다. 그는 달에서 휴스턴 본부와 무선 교신을 하면서 “이 걸음은 한 인간에겐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겐 커다란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는 말을 남겼다.  
1969년 달에 내린 아폴로 11호의 착륙선 이글호의 모습.[사진 NASA]

1969년 달에 내린 아폴로 11호의 착륙선 이글호의 모습.[사진 NASA]

 
인류의 달 정복, ‘아폴로 신드롬’ 낳아
19분 뒤 착륙 모듈 조종사인 올드린이 뒤따라 달에 내렸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중력이 지구의 약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달 표면을 깡충깡충 걸어 다니며 2시간 15분 동안 월석 채취 등의 활동을 했다. 이 과정은 전 세계에 중계돼 ‘아폴로 신드롬’을 낳았다. 그동안 사령선 모듈인 컬럼비아호에는 우주비행사 마이클 콜린스(89)가 남아 달 궤도를 선회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 표면에서 활동한 시간과 이글호 안에 머문 시간을 합쳐 모두 21시간 30분을 달에서 보낸 뒤 이글호를 이륙시켜 사령선 모듈과 도킹했다. 귀환에 나선 세 사람은 7월 24일 태평양 해상에 무사히 내려 지구로 귀환했다. 이들이 임무를 수행한 시간은 8일 3시간 18분 35초였지만 그 영향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아폴로 11호의 우주인들. 왼쪽부터 닐 암스트롱 선장, 마이클 콜린스 본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 착륙선 조종사. [사진 NASA]

아폴로 11호의 우주인들. 왼쪽부터 닐 암스트롱 선장, 마이클 콜린스 본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 착륙선 조종사. [사진 NASA]

소련이 세계최초 인공위성 쏘자 미국 설욕 다짐  
소련이 19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로 쏘아올린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의 모형. 미국 워싱턴의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전시물이다. 그 직후 미국은 소련에 추월당한 과학기술을 따라잡으려고 연구·교육 체계 혁신에 들어갔다. [사진 위키피디아]

소련이 19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로 쏘아올린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의 모형. 미국 워싱턴의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전시물이다. 그 직후 미국은 소련에 추월당한 과학기술을 따라잡으려고 연구·교육 체계 혁신에 들어갔다. [사진 위키피디아]

원래 아폴로 프로젝트는 냉전 시절 경쟁국인 미국과 소련의 자존심 대결에서 시작됐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쏘아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과학기술은 세계 최고’라는 미국의 자부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년, 재임 1953~61년)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 1위의 자리를 탈환하려고 총력을 다했다.  
1958년 7월 29일 우주와 항공 분야 장기계획을 위한 우주항공국(NASA)을 창설했다. 설욕을 위해 우주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고 과학기술 전반에 걸쳐 대대적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늘렸다. 대학은 물론 중고교 교과 과정도 대대적으로 개혁해 수학·과학 교육을 강화했다. 이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과학기술 인재를 미국으로 초빙했다. 인재는 배경이 아니라 철저하게 실력에 따라 대접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모습.[사진 JFK도서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모습.[사진 JFK도서관]

케네디, 의지와 집념의 달 정복 도전장 던져
이렇게 과학기술 국력을 재정비한 미국은 1961년 설욕을 위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1917~63년, 재임 1961~63년)은 취임 첫해인 1963년 5월 25일 의회 연설에서 “1960년대 말까지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키는 것”을 국가적 목표로 내걸었다. 소련의 우주기술을 단박에 뛰어넘는 아폴로 계획은 이렇게 시작됐다.  
케네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는 1962년 9월 12일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라이스대에서 국가우주계획과 관련해 연설한 내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왜 달인가? 왜 이를 우리의 목표로 골랐는가? 그런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도 말했을 겁니다. 왜 가장 높은 산에 오르려고 하는가? 왜 35년 전에 대서양 횡단비행을 했는가?” 케네디는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인 텐징 노르가이의 에베레스트 정복과 1927년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비행을 예로 들며 도전의 가치를 강조했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달에 가고 다른 일도 하기로 선택한 것은 그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는 우리의 에너지와 능력을 최대한 조직하고 평가하게 해줄 것입니다.”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도전하기로 했다’는 케네디의 연설은 아폴로 계획의 과감한 도전 정신을 잘 표현한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모습.흐루쇼프가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케네디는 1961년 인간을 달에 보내는 아롤로 프로그램으로 맞섰다. [중앙포토].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모습.흐루쇼프가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케네디는 1961년 인간을 달에 보내는 아롤로 프로그램으로 맞섰다. [중앙포토].

 
아폴로 1호 우주인, 화재로 전원 희생
하지만 아폴로 계획은 비극으로 시작했다. 1967년 1월 27일 자상 훈련 중이던 아폴로 1호에서 화재가 발생해 내부에 타고 있던 거스 그리섬 선장과 에드워드 화이트, 로저 채피 등 3명의 우주비행사가 목숨을 잃었다. 아폴로 계획의 희생자이고, 인류 우주 정복 시도의 순교자다.  

NASA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롭게 도전에 나섰다. 아폴로 4~6호는 무인비행으로, 7~10호는 유인 비행으로 인간이 달에 가는 연습을 차례로 마쳤다. 그 결과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성공적으로 달에 착륙할 수 있었다. 미국은 아폴로 프로그램에 따라 1972년까지 모두 6차례 달 착륙에 성공했다.  
미국과 소련 간의 우주 경쟁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으로 승부가 났다. 소련이 1957년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지 12년 만에 미국은 달에 인류 최초의 유인우주선을 착륙시킴으로써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미국이 연구소와 교육기관에서 이룬 과학기술 혁신의 결과다.  
  
1972년 아폴로 17호에서 바라본 지구. [사진 NASA]

1972년 아폴로 17호에서 바라본 지구. [사진 NASA]

우주 기술, 민간에 파생돼 생활기술로 활용
우주 개발은 엄청난 비용이 든다. 과학기술 지식과 노하우를 총동원해 존재하지 않은 기술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폴로 프로그램만 해도 1961년부터 1973년(마지막 달 착륙 이듬해)까지 12년간 254억 달러를 예산을 들였다. 2018년 가격으로 환산하면 1530억 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아폴로 프로그램을 비롯한 우주개발 프로젝트는 과시와 체제 경쟁을 넘어 경제적인 효과도 톡톡히 거두면서 인류 발전에 기여했다.  
우주개발 과정에서 사용한 기술이나, NASA가 미래를 대비해 개발한 기술이 대거 민간에 제공되면서 인류의 생활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NASA 스핀오프(spinoff, 파생) 기술’로 불리는 우주 관련 기술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귀 체온계, 라식, 화학물질 탐지 우주기술에서
건강 의학 부문에서는 의료기관에서 흔히 사용하는 귀 적외선 체온계가 대표적이다. NASA가 별의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을 의료용으로 응용했다. 인공심장이나 심실세동기도 NASA에서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레이저 시력교정에 사용하는 라식 기술도 마찬가지다. 흠이 나지 않는 렌즈도 NASA에서 나왔다.  
우주선에선 작은 흠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NASA는 안전기술 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다. 민간에 넘어간 안전기술로 항공기 결빙방지 기술, 불에 타지 않는 내화 소재, 화학물질 탐

지기, 화재 탐지기 등이 생활기술로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소방을 위한 다양한 시스템도 NASA가 원천기술을 제공했다. 신발 등에 사용하는 충격 흡수 소재나 배게 등에 쓰는 형상기억 폼 같은 소재로 NASA에서 개발돼 민간에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우주식량을 개발하면서 나온 다양한 기술이 민간에 이전되기도 했다. 냉동건조 식품 기술과 필터 정수기가 대표적이다. 태양열이나 태양광 발전도 우주선에 사용하던 것이 민간으로 대대적으로 퍼져나간 기술이다. 디지털 이미지 센서, 데이터 저장 CD 등 디지털 기술은 원래 민간에서 개발했지만, 우주선에 적용하면서 발전하게 된 경우다.  
스페이스X사의 ‘팰컨 헤비’ 로켓이 발사 대기 중이다. [사진 스페이스X]

스페이스X사의 ‘팰컨 헤비’ 로켓이 발사 대기 중이다. [사진 스페이스X]

 
새로운 우주 경쟁의 시작  
우주 기술은 민간에 확산하면서 인류 생활에 기여할 뿐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 첨단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을 자극하고 영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왔다. 컴퓨터의 발전에 우주 관련 수요가 큰 자극제 역할을 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과 소련 간에 체제대결로 시작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 아폴로 프로그램의 우주 경쟁은 오늘날 우리 주변의 첨단 생활기술로 남아있다.  
현재는 스페이스X, 버진애틀랜틱 등의 민간 우주산업도 발전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인도·일본 등 후발 주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우주 개발이 나서고 있다. 바야흐로 50년 전의 우주 대결이 다시 시작될 조짐을 보인다. 새로운 우주 경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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