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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109명 고발당한 국회···그들은 왜 경찰서 맴도나

중앙일보 2019.07.16 05:00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여의도인싸]

‘패스트트랙 고발 건 관련 영등포경찰서 출석. 7월 16일 10:00’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실이 지난 15일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의 일부. 하준호 기자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실이 지난 15일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의 일부. 하준호 기자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실에서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입니다. 국회의원이 수사기관에 출두한다고 스스로 기자들에게 문자를 돌린 건 드문 일입니다. 백 의원은 지난 4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법안을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과정에서 폭행을 행사한 혐의(공동폭행)를 받고 있습니다. 고발인은 자유한국당입니다.   
 
백 의원뿐만이 아닙니다.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영등포경찰서의 ‘출석요구서’를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고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국회 폭력 사태 관련 경찰의 피고발인 출석 요구에 응해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하겠습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도 표 의원처럼 페이스북에 경찰의 출석요구서를 올리고 ‘인증’도 마쳤습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보낸 피고발인 출석요구서를 올렸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보낸 피고발인 출석요구서를 올렸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16일부터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고발당한 여야 국회의원들을 줄줄이 소환해 조사한다는 계획입니다. 민주당 백혜련·송기헌·윤준호·표창원 의원 등 4명, 한국당 정갑윤·여상규·이은재·이종배·김규환·김정재·민경욱·박성중·백승주·송언석·엄용수·이만희·이양수 의원 등 13명, 여기에 정의당 윤소하 의원까지 총 18명이 대상입니다.

 
민주당·정의당 의원 5명은 16~17일 중으로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흔쾌히’ 밝혔습니다. 반면 한국당 의원들은 대조적입니다. 아직 따로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데요. 영등포서 주변을 맴도는 태도와 기류가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한국당에선 “여당 의원들이 경찰 출석 통보를 SNS에까지 올리면서 유난을 떤다”는 야유가 나옵니다.
 
경찰의 출석요구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이 경찰출두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한국당 의원들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여당은 공공연히 “아무리 국회의원이라도 고발을 당했으면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야당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이 지난 4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여당의 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제출을 저지하기 위해 몸으로 막아서고 있다. [뉴스1]

야당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이 지난 4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여당의 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제출을 저지하기 위해 몸으로 막아서고 있다. [뉴스1]

경찰 수사가 부담스러운 쪽은 한국당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정의당 의원들은 대개 형법상의 폭행 혐의로, 한국당 의원들은 회의방해를 위한 폭력 행위를 금지한 국회선진화법(국회법 제165조) 위반과 공무집행 방해, 특수 주거침입·감금 혐의 등으로 고발당했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의 처벌조항이 무겁습니다. 국회법 제166조에 따르면 국회 회의를 방해하는 행위로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하면 최소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습니다. 공직선거법 제19조 4항은 국회법 제166조에 따른 처벌을 받은 경우 징역형은 형 집행 종료 후 10년간,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은 형 확정 후 5년간 공직 선거 출마를 금지하고 있어 정치인에겐 치명적이죠.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고발당한 현역 의원은  무려 109명(민주당 40명, 한국당 59명, 바른미래당 6명, 정의당 3명, 무소속 1명)에 달합니다. 이중 경찰이 일단 18명에 대해 출석을 요구한 것입니다. 나머지 피고발 의원들도 소환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여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야당이 2008년 12월 18일 국회에서 충돌했다. 한나라당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회의실의 출입문을 책상 등으로 막은 채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상정했고, 야당은 해머로 출입문을 부쉈다. [중앙포토]

여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야당이 2008년 12월 18일 국회에서 충돌했다. 한나라당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회의실의 출입문을 책상 등으로 막은 채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상정했고, 야당은 해머로 출입문을 부쉈다. [중앙포토]

사실 과거에도 이런 무더기 고발사태는 있었습니다. 2008년 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상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하려는 여당과 이를 막으려는 야당이 충돌한 뒤 다수의 의원이 공무집행 방해와 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검찰이 야당(민주당) 의원들의 폭행 혐의에 대해선 기소, 여당(한나라당) 의원들의 공무집행 방해 혐의에 대해선 무혐의로 처리하면서 야당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죠. 그때는 선진화법이 생기기 전이라 지금처럼 국회 폭력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정활동 중 여야가 다투고 “얘가 먼저 잘못했다”며 검·경에 달려가는 모습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국회 관계자는 “무차별적인 고소·고발 중에는 무혐의가 날 것을 알면서도 상대 당 의원을 검·경 포토라인에 세우려는 ‘악의’도 없지 않다”고 하네요.

 
박준규 국회의장(가운데)이 1991년 1월 28일 국회의장단과 여야 총무의 연석모임을 주재, 국회의원 '뇌물 외유' 사건에 따른 국회 차원의 자정 노력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이날 박 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중앙포토]

박준규 국회의장(가운데)이 1991년 1월 28일 국회의장단과 여야 총무의 연석모임을 주재, 국회의원 '뇌물 외유' 사건에 따른 국회 차원의 자정 노력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이날 박 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중앙포토]

국회의원이 의정활동 중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국회 스스로 벌할 수 있는 제도는 있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입니다. 1990년 말 국회 상공위원회 ‘뇌물 외유’ 사건과 91년 초 ‘수서 비리’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국회의원들이 뜻을 모아 출범시켰습니다. 윤리특위는 상설기구였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처음 비상설특위가 됐습니다. 그래서 활동 시한(1년)이 지나면 재구성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야가 위원장 자리를 놓고 싸우다가 지난달 30일 이후 결국 가동이 중단된 상황입니다.

 
물론 윤리특위가 상설특위였던 시절에도 제 기능을 한 건 아닙니다. 윤리특위 출범 이후 20대 국회까지 접수된 국회의원 징계안 238건 중 가결된 건 12건(5.0%)뿐인데요, 그마저도 11건은 본회의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됐습니다. 1건은 본회의까진 갔으나 부결(강용석 의원 제명안)되기도 했지요.(※강 전 의원은 같은 본회의에서 ‘출석정지 30일’ 징계가 확정됐습니다.) 국회의원 징계안을 다루는 윤리특위 회의는 속기록까지 남기지 않는 ‘깜깜이’라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간사(왼쪽 두 번째부터), 한국당 소속 박명재 윤리특위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바른미래당 이태규 간사가 지난 2월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야 3당 윤리특별위원회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김승희 간사(왼쪽 두 번째부터), 한국당 소속 박명재 윤리특위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바른미래당 이태규 간사가 지난 2월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야 3당 윤리특별위원회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윤리특위가 제 기능을 못 하니 의정활동 중 일어난 모든 ‘불상사’가 사법당국으로 향하는 현상이 만연한지도 모릅니다. ‘정치의 사법화’라 부르는 현상 말입니다. 국회에서 벌어진 문제를 툭하면 수사기관으로 가져가고, 결국은 사법부 재판을 받겠다는 것은 입법·행정·사법부 삼권의 분립 기반을 스스로 흔드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대원칙에 따라 국회의원도 잘못했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과 서로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세상에 어느 나라 국회가 국회의원의 3분의 1이 전부 사법당국의 수사 대상일 수가 있나요.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에서 볼썽사나운 언행을 한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지 못하고 쪼르르 경찰·검찰에 달려가 또다시 서로 삿대질을 하는 모습도 유권자가 보기에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회가 자정 기능을 회복하면 어찌 경찰이 우리를 감히 부르겠습니까. 우리 스스로 업신여기기 때문에 남들도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입니다. 삼권분립의 원칙인 ‘체크 앤 밸런스(check and balance·견제와 균형)’의 ‘체크’는 우리 스스로 해냈을 때 당당한 것입니다.”
 
지난 12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한 말입니다. 국회 스스로 윤리적으로 당당하고, 자정 기능이 튼튼할 때야 행정부와 사법부에도 할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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