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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의 영화몽상] 인어공주의 피부색, 콩쥐팥쥐의 피부색

중앙일보 2019.07.16 00:19 종합 27면 지면보기
이후남 문화스포츠 에디터

이후남 문화스포츠 에디터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이 1950년대에 그렸다는 ‘예수의 생애’ 연작은 퍽 한국적이다. 재료와 기법만 그런 게 아니다. 그림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한복을 입었다. 예수도, 마리아도, 수태고지를 하는 천사도 2000년 전 머나먼 유대 땅이 아니라 조선 시대쯤에 이 땅에 살았던 이들처럼 보인다.
 
재작년 서울미술관 전시에 나온 총 30점의 연작을 찬찬히 뜯어본 건 그래서였다. 종교적 신앙이나 남다른 미술적 지식은 없지만,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고 친근하게 그려낸 파격에 끌렸다.
 
1989년 처음 개봉한 애니메이션 ‘인어 공주’.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1989년 처음 개봉한 애니메이션 ‘인어 공주’.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문화는 종종 새로운 옷을 입는다. 원형이 유명할수록 그 효과도 크다. 디즈니의 실사영화 ‘인어공주’는 흑인 가수 겸 배우 할리 베일리를 인어공주 에리얼로 캐스팅해 화제다. 첩보영화의 대명사 ‘007’시리즈는 흑인 여성 배우 라샤나 린치를 ‘본드 걸’이 아니라 차세대 주역으로 발탁한다는 소문도 나온다. 여성의 활약에 대한 대중의 기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 관객의 인종적 다양성에 부응한 결과로 보인다.
 
일부 반발도 있다. 원작 동화 ‘인어공주’의 작가 안데르센이 덴마크 사람인데 흑인 인어가 웬 말이냐는 말도 나온다. 이런 논리를 따르자면 덴마크 왕자가 주인공인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은 한국 배우가 공연해선 안 될 작품이다. 사실 30년 전 나온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도 약 200년 전 나온 동화를 곧이곧대로 옮기지는 않았다.
 
맥락을 무시하고 남의 문화를 내 것인 양 갖다 쓰는 문화적 전유는 비판을 받곤 하지만, 충실한 해석과 상상력을 통한 재해석은 기존 문화에 생명력을 더하곤 한다. 일부에서 예를 드는 대로, 콩쥐팥쥐 같은 전래동화도 피부색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는 예전의 동요 구절일 뿐, 적어도 21세기 한국사회가 배경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후남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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