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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빠름의 역습

중앙일보 2019.07.16 00:16 종합 28면 지면보기
송인한 연세대 교수, 사회복지학

송인한 연세대 교수, 사회복지학

어린 시절 천재라고 주목받던 이들의 후일담을 들을 때면 안타까움과 다행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곤 합니다. 세상으로부터의 조급하고 과도한 관심 때문에 심적 부담을 느끼고 일찍 소진되어 소위 “실패한 천재”로 불리게 되었음에 안타까움도 있지만, 그 중 어떤 이들이 자신의 소박한 행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평범한 삶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로움을 찾았음에 다행스런 마음도 듭니다. 그런데 실은 문제의 시작은 우리 사회가 가진 천재에 대한 성급한 기준인지도 모릅니다. 천재에 대한 정의를 논할 때 칸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저서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는 천재에 대해 설명하며, 예술에 규칙을 부여하는 타고난 천부적인 자질이라 강조함과 동시에 훈련을 통해 도야 된 재능으로 독창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말합니다.
 

생존하기 위해 빠름을 추구하며
망각하고 간과했던 중요한 가치
사람 중심의 속도로 회복하여야

즉 천재란 타고난 재능과 탁월한 업적이라는 두 요소가 합쳐졌을 때 사후적으로 판단하는 것임에도, 우리 특유의 “빨리” 문화에서 일찍 재능이 발견된 영재를 성급하게 천재라고 불렀던 것이 우리가 진짜 천재를 갖기 어려웠던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그 재능이 꽃을 피우고 독창적인 업적이 쌓여 천재성이 입증되지도 않았는데 조급하게 기대했으니 말입니다.
 
빠른 영재성에 대한 집착은 소위 소년급제자들의 몰락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상식과 동떨어진 판단과 행동을 볼 때면, 소년급제를 꿈꾸며 시험공부에만 전념하다 소년기에 고착된 생각에서 나온 판단이 삶의 다양한 경험을 거치고 인생의 깊은 고민을 통과해 나온 판단과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선행학습이라는 이름의 빠름 집착은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 아니 실은 입시를 위한 과열경쟁에 기인합니다. 아동 발달단계에 맞춰 적절하게 구성된 교육과정을 몇 년씩 건너뛰고 앞당겨 선행학습을 해야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안심하는 건 아이러니입니다. 빨리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이라 여겨지는 세상. 그 빠름은 학생들을 소진시켜 막상 대학에 와서는 지쳐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듭니다.
 
그 이후 학계의 모습도 과히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학문은 재치문답형 퀴즈 대회와 유사합니다. 진중하게 깊이 오랫동안 고민하기보다는 빠른 임기응변을 요구합니다. 긴 호흡으로 깊이 연구하기보다는 기한에 맞춰 급히 서두르고 기한에 맞춰 연구 업적을 산출해야 합니다.
 
다양한 자문과 심사도 깊이 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기한이 언제죠? 천천히 주시면 됩니다. 오늘 중으로만요! 많은 공공 계획들이 초속성으로 만들어지는걸 보곤 합니다. 이렇게 만든 계획들로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산전, 수전, 공중전 위의 속도전의 전사들로 생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빠름을 위해 신중함과 깊이는 포기되고, 빠른 성장을 위해 개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고, 주말을 바쳐 일하며 가족과의 시간이 희생되고, 잠자고 먹는 생존적 시간도 박탈당하고 결국엔 미래의 시간까지 미리 당겨 갈아 넣으면서 빠른 성장의 세상은 유지되어 왔습니다. 신속한 처리를 위해 누군가의 여유는 고갈되고 빠른 배송을 위해 누군가는 극한 노동에 시달리고 빠른 음식 배달을 위해 아찔한 위험이 도로에 가득합니다. 빠름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빠름을 위해 우리가 포기했던 것들은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빠름의 역습.
 
세계 최빈국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경제 대국으로 발전한 우리가 지불해야 했던 대가였겠지요. 한번 실패하여 낙오하면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안전망의 부재 속에서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빠름과 열정 뿐이었을 것입니다.
 
도를 닦는 사람처럼 이제 느리게 걷자고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제안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간 우리가 빠름을 위해 간과했던 합리성과 양심과 안전과 원칙과 상식과 복지의 부재를 언젠가 우리는 메워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선진국들이 오랜 시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가지게 된 사람 중심 느림의 교훈이 무엇인지 상기해야 합니다.
 
밀란 쿤데라는 『느림』에서 이야기합니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고. 빨리 달린 속도 만큼이나 강하게 망각했던 우리의 좌표를, 사회의 방향을 재점검하는 것이 숙성된 사회로 향하는 이제부터의 숙제입니다. 숙성은 ‘빨리’로 재촉할 수 없습니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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