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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체스판 위의 대통령

중앙일보 2019.07.16 00:07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체스만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 중요한 스포츠는 없다. 매 수(手)마다 반드시 어떤 결과가 있다.”
 
전설의 체스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56·러시아)의 말이다. 저서 『챔피언 마인드』(2008년)에서 “그 수가 전략에 맞는지 계속 묻지 않는다면 일관성 있는 계획을 가지고 덤비는 체스 기사를 당해낼 수 없다”고 했다. 두뇌 스포츠의 본질이자 ‘필승 비법’이다. 그런 그도 1997년 IBM의 수퍼컴퓨터 ‘딥 블루’에 졌다. “맞은 편에 새로운 차원의 지능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는 게 패자의 소감이다.
 
변화무쌍한 체스의 전략은 외교에 비유되곤 한다. 미국의 외교 거물 즈비그뉴 브레진스키(1928~2017)의 영향이 크다. 폴란드 출신으로 하버드·컬럼비아대 교수를 거쳐 카터 행정부의 국가안보 특별보좌관을 지낸 그는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1998)이라는 책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체스판에 빗댔다. 냉전 이후 ‘세계 일등적 지위(global supremacy)’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시각에서 지정학적 전략을 제시했다. 책 첫머리엔 ‘나의 학생들에게-그들이 내일의 세계를 만드는 것을 돕기 위하여’라고 적었다. 극동아시아엔 미국이 ‘닻’을 내리고 있어야 한다면서 “미국과 중국, 일본이라는 3대 강국 사이의 상호작용이 위험한 지역적 방정식을 빚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여 년 뒤의 지정학적 체스판은 알파고도 버거워할 고차방정식이 됐다. 브레진스키의 예상보다 중국은 더 강해졌고 한국은 종속 변수를 거부한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경제 제재를 휘두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12척의 배를 이끌고’ 판 위에 섰다. 입씨름이 아닌 수 싸움을 하려면 비판과 훈수에 마음을 열고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선수(先手)는 내줬지만, 체스는 끝나지 않았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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