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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고에도 '러시아 사드’ 도입 강행한 터키, 믿는 건 트럼프?

중앙일보 2019.07.15 16:40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신화사=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P·신화사=연합뉴스]

터키가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불리는 러시아산 지대공 미사일 S-400을 자국에 들여놓았다.  
자국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으름장에 영국·독일·프랑스·일본뿐 아니라 경쟁국 중국도 쩔쩔매고 있지만, 터키는 아랑곳 않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터키 국방부는 14일(현지시간) S-400의 부품을 실은 3대의 러시아 화물기가 수도 앙카라 인근 무르테드 공군기지에 착륙했다고 밝혔다. S-400 인도 작업은 지난 12일 시작된 후 사흘째 이어졌다.  
F-35 스텔스 잡는 미사일…군사기밀 유출 우려
지난 12일 러시아 화물기에서 S-400 미사일 부품이 터키 공항에 하역되는 모습.[EPA=연합뉴스]

지난 12일 러시아 화물기에서 S-400 미사일 부품이 터키 공항에 하역되는 모습.[EPA=연합뉴스]

터키는 2017년 12월 S-400 4개 포대를 25억 달러(약 2조 7000억원)에 도입하는 계약을 러시아와 맺었다. 미국은 이후 S-400도입을 줄곧 반대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가 S-400을 씀으로써 NATO의 군사정보가 러시아로 유출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S-400은 미 공군의 F-35 스텔스 전투기와 B-2 스텔스 폭격기도 포착해 격추하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가 S-400 도입을 강행하자 미 정부는 제재를 할 채비에 나섰다. 블룸버그 통신은 터키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안이 곧 발표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미 정부 관리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보좌진에 보고할 제재안을 마련해 놨다고 전했다. 미국은 터키와 추진하려 했던 F-35 공동생산 계획을 폐기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이런 와중에도 터키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소리를 쳤다. FT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14일 취재진에 "이 상황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할 사람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의 '전략적 동반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그는 “터키는 S-400을 사들임으로써 안보 태세가 더욱 확고해졌다”며 “터키의 S-400 구매는 NATO의 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美 정부, 경제·군사제재 준비해도…트럼프가 변수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에르도안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EPA=연합뉴스]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에르도안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EPA=연합뉴스]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같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트럼프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친분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에런 스타인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 국장은 FP에 “제재안이 백악관에 보고된다 해도 트럼프가 ‘와일드카드(변수)’”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군사·경제 제재안을 마련해도 에르도안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실행을 미루거나 제재를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의 S-400 도입 문제를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탓으로 돌리며, 다른 해결책을 내놓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의 지정학적 중요성도 미국이 섣불리 제재에 나설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터키는 역사적으로 국제 분쟁의 최전선 역할을 해왔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기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대(對)소련 최전방 기지 역할을 했다.  
지금도 터키 남부 인지를릭 공군기지엔 미국의 전략 핵무기가 배치돼 있다. 이곳은 2014년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 격퇴전 당시 미국 주도의 국제동맹군이 이용하기도 했다. 
미국은 이곳을 거점으로 러시아의 영향권 안에 들어간 시리아를 바로 위에서 압박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견제도 했다. 만일 터키가 미군의 인지를릭 기지 진입을 막는다면 미국으로서도 곤란해질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쿠르드 지원에 반발한 터키…경제 악화 우려는 부담
지난 5월 터키 이스탄불의 한 환전소의 모습. [EPA=연합뉴스]

지난 5월 터키 이스탄불의 한 환전소의 모습. [EPA=연합뉴스]

에르도안 대통령이 S-400을 구매하는 등 미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배경엔 쿠르드족이 있다. 
터키는 그동안 미국이 쿠르드족을 지원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해왔다. 쿠르드족은 터키·시리아·이라크 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이다. 터키 인구 약 7800만 명 중 1400만 명(약 18%)이 쿠르드족이다. 
터키는 자국 내 쿠르드족이 인근 시리아, 이라크 쿠르드족과 연합해 독립국가를 만들까 우려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미국이 독립을 미끼로 쿠르드족을 IS 격퇴전에 동원하는 등 적극 지원하는 자세를 취하자, 터키가 미국에 대해 반감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겉으론 미국에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내심 제재 현실화로 발생할 정치적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고 실업률이 상승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제재까지 겹쳐져 경제가 더 나빠지면 자신에 대한 국내여론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FP는 여야 불문하고 터키를 제재해야 한다는 미 의회의 의견을 트럼프 대통령이 마냥 외면하긴 어려울 것으로 봤다. 스타인 국장은 “터키가 미국의 제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중요한 것은 제재의 시점과 강도”라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o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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