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美 체제보장 카드에 北 제재완화 속내…비핵화 수싸움 돌입

중앙일보 2019.07.15 15:03
 북ㆍ미 간 비핵화 실무 협상이 다가오면서 양측의 치열한 수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6월30일 오후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용호 북한 외무상,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연합뉴스]

6월30일 오후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용호 북한 외무상,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연합뉴스]

미국이 먼저 공개적으로 유인책을 내놨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직접 “우리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 보장(security assurance)이 제대로 되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12일 인터뷰)고 밝혔다. 이는 최근 요미우리신문과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ㆍ중 및 북ㆍ러 정상회담에서 제재 해제보다 체제 안전 보장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보도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폼페이오 "북한 안전보장" 거론하며 협상장 유인
北, 체제 보장 요구하다 제재완화 성동격서 나설 수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판문점 회동 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주고받는 데 열려 있다”고 시사했다. 비핵화 전에 제재 완화는 못 해주지만 인도적 지원 확대, 대화확대, 연락사무소 개설 등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낮은 단계의 체제 보장 수단으로도 해석 가능한 조치들이다. 북ㆍ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든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단 체제 보장 조치 자체가 다소 기시감이 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를 요구하지만,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합의한 9ㆍ19 공동성명에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1항에서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비건 대표가 제시한 연락사무소 개설도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 북ㆍ미가 합의했던 내용이다. 장소는 물론 초대 북한 주재 미국 연락사무소장까지 내정됐지만, 2003년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공식파기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당시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대포동미사일 발사 등 북한 도발 때문에 그렇게 됐지만, 사실은 북한이 미국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들어올 경우 이를 거점으로 대북 첩보 활동을 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연락사무소를 꺼린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연락사무소를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검증된 이후에 할지, 협상의 선순환을 유도하기 위한 ‘당근’ 차원에서 그 전에 할지도 예민한 문제다. 연락사무소 설치는 사실상 외교관계 수립의 전 단계로, 미국이 공식적으로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체제 보장 조치는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협상 개시 정도라는 게 외교가 안팎의 해석이다. 이를 넘어서는 조치는 한ㆍ미 동맹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체제보장 카드를 꺼냈다면, 북한은 체제보장이 아니라 다른 쪽을 뚫기 위해 이 카드를 '받는 척'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많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도 처음부터 주한미군 철수 같은 강한 요구를 하면 판이 깨질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단계적 접근을 하겠다’며 처음엔 한ㆍ미 연합훈련의 완전한 중단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으로선 이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 테고, 그럴 경우 ‘그게 안 된다면 제재라도 일부 풀어줘야 안심하고 협상을 계속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올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정말 원하는 제재 부분에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 전술로, 일종의 성동격서”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대미 협상 경험이 많은 북한 외무성이 전면에 다시 나선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차관보는 최근 VOA 인터뷰에서 “미 정부 동료 관리들에게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꽤 고위직 북한 외교관이 협상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으면 이미 실패를 의미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 외무성이 협상을 총괄하게 된다면 다시 한번 논쟁적이고 질질 끄는 어떤 장치를 마련할 것이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의 앤킷 판다 선임에디터는 자신의 트위터에 “연락사무소 개설 정도의 체제 보장 합의는 하노이에서도 가능했다. 이는 협상 교착 국면에서 외교적 협상을 이어가기 위한 일종의 중심축 전환에 지나지 않는다”며 “여전히 북한의 주목적은 제재 완화이고, 핵무기가 김정은의 체제 안전 담보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