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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연금’ 칼댄 브라질 국채 눈길

중앙일보 2019.07.15 05:00 경제 4면 지면보기
지난 10일 브라질 연금 개혁안이 하원을 통과하자 개혁안에 반대하는 이들이 상파울로에서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0일 브라질 연금 개혁안이 하원을 통과하자 개혁안에 반대하는 이들이 상파울로에서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 예산의 45%를 연금 지급에 쓰는 나라가 있다. 병원ㆍ학교ㆍ도로 건설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된 부문엔 고작 2.8%만 투입된다. 브라질 얘기다.
 

받는 나이 늦춘 개혁안 하원 통과
채권값·헤알화 가치 상승 기대감
변동성 심해 투자 땐 잘 따져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브라질 중부의 작은 마을 파우미타우에 있는 병원은 주 3회 문을 연다. 진통제는 아예 없다. 루이자 아주카르 병원장은 “의료장비 구입은 물론이고 월급 줄 돈도 없다”고 한탄했다.  
 
 반면 전직 경찰서장 산드라 실베이라(50)는 연금으로 레스토랑을 열었다. 45세에 은퇴한 뒤 마지막해 연봉에 해당하는 연금을 받고 있다. 그는 “브라질 정부가 일찍 은퇴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평생 ‘호화 연금’을 주는 것보다 예산 운용을 더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WSJ은 브라질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7755달러(916만원)인데 연금으로 매년 1억5000만원씩 받는 전직 공무원도 있다고 보도했다.  
 
 병원엔 진통제 없는데 40대 은퇴자는 억대 연금 받아
 
 연금 때문에 나라의 기둥뿌리가 뽑힐 지경에 이르자 브라질 정부가 칼을 들었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연금개혁에 나섰다. 40대에 은퇴해 마지막 소득만큼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고, 심지어 상속까지 가능한 법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1988년 만들어진 연금법 때문에 95년 이미 연금 수령액이 납입액을 초과했다. 2000년대 원자재 붐이 일면서 당시 노동당 정부는 공무원 수를 크게 늘렸다.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부족분은 급증했다. 올해에만 770억 달러(약 91조원)에 이른다.  
 
 세금을 올려 연금 부족분을 충당하기도 벅차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에 따르면 브라질의 세금 부담은 국내총생산(GDP)의 32%다. 북유럽 국가와 비슷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대한 반감, 노동계와 공무원들의 저항도 있지만 연금으로 인한 폐해가 워낙 심하다 보니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5%가 연금개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브라질 전역 150개 도시에선 ‘내 연금을 깎으라’는 시위까지 열렸다.
 
 노동당 정부가 공무원 수 늘린 탓…세금으로 부족분 메워
  
 수술대에 오른 연금 개혁에는 청신호가 커졌다. 브라질 하원은 10일(현지시간) 보우소나루 정부의 연금개혁 법안을 찬성 379표, 반대 131표로 통과시켰다. 2차 투표와 상원 투표가 남아있지만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개혁안은 연금 수령 최소 연령을 남성 65세, 여성 62세로, 최소 납부 기간을 남성 20년, 여성 15년으로 하고 있다.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고 최소 납부 기간을 늘린 개혁안이 통과되면 절감되는 정부 예산은 1조 헤알(약 312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 10일 브라질 하원에서 연금개혁안이 통과된 뒤 여당계 의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일 브라질 하원에서 연금개혁안이 통과된 뒤 여당계 의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월가를 비롯한 투자자들은 연금개혁안 통과에 환호했다. 하원에서 개혁 법안이 통과된 10일 상파울루 보베스파 지수는 1.23% 오르며 사상 최고치인 10만5817포인트로 거래를 마쳤다. 헤알화 가치는 전날보다 1.3% 오른(환율 하락) 달러당 3.759헤알에 마감됐다.  
  
 알베르토 라모스 골드만삭스 수석 라틴아메리카 이코노미스트는 “투자자들은 이제 성장률 증가세를 주시할 것”이라며 “경제활성화의 첫 단추인 연금개혁에 이어 민영화, 조세 개혁 등이 계속 뒤따르지 않으면 투자 동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브라질 연금개혁안 통과는 국내 브라질 국채ㆍ펀드 투자자들에게도 희소식이다. 연금개혁이 가시화하면서 기준금리 인하가 뒤따르고 채권 금리가 떨어져(채권값 상승)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헤알화도 강세도 예상된다. 달러ㆍ원화가 약세를 띠면 환차익을 얻을 수 있다.
 
 안재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0일까지 브라질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약 21%로 기준금리 인하로 국채 금리가 추가 하락하면 연말까지 자본차익이 더 발생할 수 있고, 하반기 이자수익까지 고려하면 연간 수익률 30% 이상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과세, 고금리…브라질 국채 대체할 상품 별로 없어”  
 
 브라질 국채는 비과세 혜택이 적용되는 유일한 해외 채권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만기는 대부분 10년이지만 수수료를 내면 주식처럼 매매도 가능하다. 이자는 매입 시점과 상관없이 1월과 7월 초에 지급된다.
 
 저금리 상황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몰리는 이유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에서 매수한 브라질 채권 규모는 1억712만달러(약 1254억원)다. 지난해 같은 기간(8460만달러)보다 26.6% 늘어났다. 올해 보관잔액은 8억5532만 달러(약 1조84억원)에 이른다.
 
 신환종 NH투자증권 FICC리서치센터장은 “현재 비과세에 고금리의 브라질 채권을 대체할 상품은 별로 없다”며 “연금개혁과 공기업 민영화에 따른 투자심리 회복과 헤알화 강세가 기대되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연금개혁이 이뤄지더라도 브라질의 국가신용등급이 올라가려면 지속가능한 성장 리듬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S&P와 무디스 등은 재정 악화를 이유로 2015~16년 브라질의 국가신용등급을 정크 수준으로 강등했다. 현재 S&P와 피치는 BB-, 무디스는 Ba2로 평가하고 있으며, 등급 전망은 모두 ‘안정적’이다.  
 
브라질국채 [ MY LIFE ]

브라질국채 [ MY LIFE ]

 쓰린 기억을 안고 있는 투자자도 많다. 브라질 국채는 극심한 변동성의 대명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2017~18년 투자자들은 20~80%의 수익을 거뒀다. 하지만 2014년 중반 이후 금리가 급등하고 헤알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데다 노동당 정부의 반시장적 정책으로 경제가 2년 연속 -3.5% 성장률을 기록하며 위축됐기 때문이다. 2016년 초반 지우마 후세프 대통령 탄핵으로 시장친화적 중도 정부가 들어서며 그해 72% 투자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환차손 우려도 있다. 이자 지급이 달러로 이뤄지는 만큼 채권 자체로 수익을 거두더라도 ‘헤알화→달러화→원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손실이 생길 수 있어서다. NH투자증권의 헤알화 이자 지급 서비스를 이용하면 환차손 우려를 줄일 수 있다.
 
 “재정 압박 못 견뎌 브라질처럼 할지, 정치적 결단해야”
 
 브라질의 과감한 연금개혁은 공무원 채용을 늘리는 문재인 정부에도 시사하는 점이 있다. 정부는 올해 예상 공무원 증원 인원을 3만3000명으로 잡았다. 3만5961명이 증원됐던 1991년 이후 최대 규모다.  
 
 정부는 2022년까지 총 17만4000명의 공무원을 늘리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공무원 수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전체 공무원은 처음으로 11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부 계획대로 2022년까지 17만4000명을 늘리면 누적 인건비가 28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이 30년 근속하면 누적 인건비는 327조 8000억원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김병덕 금융연구원 보험ㆍ연금연구센터장은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이미 재정적자가 너무 크고 사학연금도 적자가 불가피하다”며 “새로 공무원이 될 사람의 연금은 단계적으로 국민연금과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 압박을 견디지 못할 때까지 버텼다가 브라질처럼 할지, 사전에 국민적 컨센서스를 모아 정치적 결단을 내릴지 선택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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