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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정부를 바란다

중앙일보 2019.07.15 00:29 종합 27면 지면보기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많은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다. 북핵 위협은 여전한데 목선 사태에서 보듯 국가 안보엔 구멍이 숭숭 뚫렸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무역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는 우리 기업의 목을 옥죈다. 정치권은 내년 4월 총선에 관심이 쏠린 채 현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직장인·주부·기업인·자영업자 등의 입에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불안하게 만들고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불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발등에 떨어진 불이 반도체 소재 등에 대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다. 정부는 아베 정권이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으로 우리 기업의 아픈 곳을 찌르리라는 것을 예상했다면서도 정작 대응 수단은 마련하지 못해 허둥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핵심 참모들에게 “지금이 우리 정부의 능력이 평가되는 시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사태 해결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이번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30일 강제 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고 확정 판결한 이후 8개월 넘도록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 아베 정부가 일본 기업들에 피해가 발생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민주 국가에선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이는 역대 한국 정부의 입장과 배치된다. 역대 정부는 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에 대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74년 박정희 정부에 이어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도 징용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면서 보상 문제는 한국 정부의 책임임을 재확인했다. 덕분에 징용 문제는 한·일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강제 징용 문제를 방치하며 사태를 키웠다. 그 결과 한국 기업들이 아베 정부의 수출 규제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아베 정부는 한·일 기업의 기금 출연으로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자는 한국 외교부의 지난달 제안보다 더 진전된 안을 가져오면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외교부 제안에 한국 정부의 역할을 더 담아서 다시 제안하면 양자 협상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조태용 전 외교부 차관은 지난해 10월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제기되는 강제 징용 소송을 한국 정부가 일단 동결하거나 일본 기업의 자산 처분을 유예하는 방안을 일본에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 이후 전국 법원에서는 유사 소송이 잇따르며 피소된 일본 기업이 80개를 넘었다. 일본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에 투자하거나 한국 기업과 합작·제휴했다간 강제 징용 배상 소송에 휘말리게 될 위험이 커졌다. 실제 올해 1분기 일본의 해외직접투자(FD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8% 늘었는데 한국에 대한 투자만 6.6% 감소했다. 강제 징용 문제는 한·일 관계의 분수령이 됐다.
 
중국 전국시대 명의(名醫) 편작은 병이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의사가 최선이고, 병이 커지기 전에 다스리는 의사가 차선이며, 큰 병이 난 뒤에 고치는 의사는 그다음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강제 징용 문제에 있어 사태를 예방하거나 커지기 전에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이로 인해 아베 정부가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내며 한국 경제는 큰 병이 생겼다. 문재인 정부가 이 병의 치료마저 실패한다면 한국의 앞날은 더 암울해지고 국민 불안은 더 깊어질 것이다.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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