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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대법관들이 잘못 끼운 첫 단추

중앙일보 2019.07.15 00:22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의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는 유시민씨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이 판국에 아베 편드는 듯한 발언 하는 분들은… 도쿄로 이사를 가시든가”라고 빈정댔다. 유씨는 지금 사태를 무슨 종족 간 패싸움으로 몰고가 진영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세상은 그런 사람들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김능환·김명수 등 판단력에 유감
판결문에 ‘한국적 특수성’ 지나쳐
종족 간 패싸움 유혹 빠지면 곤란

요즘 상황은 한국의 대법관들이 첫 단추를 이상하게 끼우는 바람에 비롯된 측면이 있다. 발생 원인의 상당 부분을 한국 측이 제공했다는 인식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널리 퍼져 있기에 우리가 “아베가 잘못했다”고만 외치고 다니면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한국의 유권자들은 이 정부와 집권세력이 종족 간 패싸움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오히려 쿨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일 간 호혜평등,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문제가 풀리도록 해야 한다.
 
2012년 5월 24일 당시 김능환 대법관이 주심이었던 대법원 소부의 ‘일제 강제징용 사건’ 파기 환송 판결문과 2018년 10월 30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전원합의체의 판결문을 읽어 보면 세계 일반의 상식과 법의식에 부합하는 논리의 자연스러운 전개는 찾기 어렵다. 대신 현재 이 시점에서 한국인의 민족적 정의를 내세우는 감성적 호소가 많다. 세계사적 보편성보다 한국적 특수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2년 판결문은 “일제 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에 지나지 않는다”며 가장 중요한 논거로 제헌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우리 대한국민이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선포”한 사실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법에서 국가의 법적 효력은 운동이나 선포로 확립되지 않는다. 영토·국민·주권의 3대 요소가 실체적으로 존재해 이를 국제사회가 승인함으로써 국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권은 헌법과 입법·사법·행정 3부가 실제로 작동하고 독립적인 군사력과 외교력을 갖춘 권력이다.
 
이에 따라 2012년 판결문의 취지 “1919년 한국이 건립되었으니 1919~45년까지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그 자체로 불법이다”는 국제법적으로는 전제 불성립의 오류로서 국제사회에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헌법은 한국인에겐 절대적이지만 분쟁 상대국이나 국제사회에서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적 감성을 앞세운 주관주의적인 오류는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다. 2018년의 대법원 판결문은 1965년 발효된 한일 청구권 협정 중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2조에 대해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 안 된 범주’를 신설해 거기에 강제징용 문제를 포함시켰다. 신규 범주는 한국이 일본한테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따른 법적 배상 청구권’을 당연히 갖고 있다는 전제 위에 설정됐다.
 
그런데 국제법적 진실은 패전국한테 ‘법적 배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승전국’밖에 없다. 한국은 국제법상 일본에 승전국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배상권을 행사할 수 없는 관계였다. 전승 연합국들과 패전국 일본과 전후 처리 협상인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협정에 한국이 초대받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 힘으로 해방하지 못해서 벌어진 분하고 원통한 일이지만 사정이 이렇게 명백한데도 2018년의 대법관들은 법적인 배상 청구권을 기어이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 논리적 귀결은 ‘일본과 전쟁해서 승전국이 되어라’ 하는 얘기다.
 
이래서는 두 나라의 주권적 충돌이 예상되는 마당에 정부가 제3자의 중재 혹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무대에 오르거나, 국제사회 여론전을 펴면서 설득력을 갖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고는 대법원이 치고 고통은 국민이 속절없이 당하는 형국이다. 대법관들의 판단력이 야속하기만 하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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