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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돈으로 ‘기부영웅’ 행세, 사기꾼 청년버핏

중앙일보 2019.07.15 00:02 종합 16면 지면보기
지난 11일 오전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33호 법정. 재판을 맡은 형사1부 안종열 재판장이 한 남자의 이름을 부르자 재판정 옆 수감자 대기 공간에서 박철상(33)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박철상 모교 등에 잇단 거액 기부
‘400억 성공신화’ 꾸며냈다 들통
법원, 18억 가로챈 혐의로 5년형

박씨는 2016년 10월께 투자자 A씨에게 13억9000만원을 받는 등 지인 4명에게 총 18억여원을 가로챈 뒤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지난 2월 구속 기소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박씨)이 투자받은 돈 상당 부분을 기부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장학사업에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속여 피해가 발생했다”며 “목적이 아무리 도덕적이라고 해도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었고 그것이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박씨는 한때 자신의 이름 옆에 ‘청년 워런 버핏’ ‘청년 기부왕’ 등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1000여만원을 자본금으로 주식을 해 400억원대의 자산가가 됐다고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그렇게 번 돈을 통 크게 기부하면서 평범한 대학생의 ‘성공 신화’로 자리매김하는 듯 했다.
 
그랬던 그가 세상에 알려진 지 불과 6년여 만에 사기 피고인으로 전락했다. 태양 가까이 날아갔다가 추락해버린 신화 속 이카루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동안 그에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박씨가 처음 언론에 등장한 건 2013년 1월이다. 자신이 재학 중이던 대학에 1억원을 기부하면서다. 2년 뒤인 2015년 2월 박씨는 한 번 더 모교에 장학금 4억5000만원(5년 약정)을 기부했다. 같은 해 7월 그는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에도 가입했다. 대학생 신분으론 최초였다. 이듬해 미국 포브스지의 ‘2016 아시아 기부 영웅’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성공신화’가 거짓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덴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씨의 실체를 밝힌 인물로 유명한 주식 투자가 신준경(46)씨가 2017년 8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박씨의 주식 투자 성공 스토리에 의혹을 제기했다. 박씨는 처음엔 강하게 부인했지만 신씨와 만나 거짓임을 털어놨다. 다음 날 신씨는 SNS에 “박씨가 주식으로 번 돈이 400억원이 아니라 몇억원 정도”라고 폭로했다.
 
신씨는 “그는 영웅으로 남고 싶었고 자신의 신분 상승에 취해 있었다”며 “본질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냥 약간의 허언증에 사회가 그를 영웅으로 만들면서 본인이 심취해 버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연 박씨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중에게 비치고 싶었던 모습은 뭘까. 자신에게 의혹이 제기되기 직전인 2017년 7월 22일 그가 SNS에 올린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저는 무엇을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원래 가졌어야 하는 분들의 것을 잠시 맡고 있다가 있어야 할 제 자리에 돌려놓는 사람일 뿐입니다. (중략) 저는 이름이나 업적이 아닌, 정제된 가치관과 철학을 남기고자 합니다. 그리고 제가 뿌리는 씨앗에서 열리는 열매가 사회와 공동체에 고스란히 전달돼 누리길 바랍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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