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2척 배로 나라 지켜"···文, 日홀대 소식에 연설문 바꿨다

중앙일보 2019.07.14 17:29
12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 (오른쪽 사진 앞부터) 한국측 대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 (왼쪽 사진 앞부터)일본 측 대표인 이가리 가쓰로(猪狩克郞)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이와마쓰 준(岩松潤) 무역관리과장. [연합뉴스]

12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 (오른쪽 사진 앞부터) 한국측 대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 (왼쪽 사진 앞부터)일본 측 대표인 이가리 가쓰로(猪狩克郞)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이와마쓰 준(岩松潤) 무역관리과장. [연합뉴스]

지난 12일 오후의 두 장면은 한ㆍ일 양국의 기류를 그대로 반영한다.
 
#1. 12일 오후 2시 도쿄 경제산업성 별관 10층. 작은 사무실에서 한ㆍ일 양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첫 실무회의를 열었다. 회의 장소는 창고 같았다. 명패나 음료수는커녕 파손된 의자가 한쪽에 쌓여 있었다. 이러니 회의 결과도 뻔해 5시간 50분간 말을 주고받았지만 남은 것은 “금명간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배제하겠다”는 일본의 통보뿐이었다.  
 
#2.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10번째 전국 경제 투어 일정으로 무안에 있는 전남도청을 찾았다. 통상 대통령의 연설문은 사전에 취재진에 배포되는데, 이날도 행사 2시간 전인 오후 3시 40분께 나왔다. 그런데  실제 현장 연설에 “전남 주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12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는 발언이 나왔다. 연설원고에 없던 표현이었다. 문 대통령이 현장에서 직접 해당 내용을 삽입한 것이다. 이때는 도쿄 한ㆍ일 실무 협상에 응하는 일본 측의 태도가 알려진 뒤였다.
 
두 장면은 상징적이다. 외교 사절에 대한 환대가 특기인 일본은 일부러 창고 같은 회의장에서 한국 대표단을 맞이하는 장면을 통해 또 다른 외교를 했다. 한국은 문 대통령이 직접 ‘12척의 배’를 언급했다. 보기에 따라 ‘전의’(戰意)를 다지는 모양새다. 이렇게 한ㆍ일 관계는 지금 잔뜩 날이 서 있다. 지난 8일 문 대통령은 수석ㆍ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기업들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내용도 참모진이 얼개를 잡은 초안에는 없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직접 수위를 정할 정도로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이번 주를 한ㆍ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기간이라 보고 있다. 청와대는 오는 18일부터 21일 사이를 '1차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18일은 일본의 추가 제재가 나올 것이라 전망되는 날이고, 21일은 참의원 선거일이다. 추가 제재를 하는지, 그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참의원 선거 결과가 과연 어떨지, 그 결과에 따른 일본의 공식 메시지는 어떤지 등을 본 뒤 향후 한국의 대응 방안을 구체적으로 정해가겠다는 취지다. 
관련기사
청와대의 시각은 낙관보다는 비관에 가깝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처음엔 참의원 선거를 노린 도발 정도로 보다가, 곧 우리 반도체 산업의 장기 경쟁력 약화를 노린 문제라고도 봤지만, 지금은 동아시아의 판 전체를 흔들려는 시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남북과 북·미 간의 관계가 재설정되는 등 격변기를 맞는 상황에서 위기감을 느낀 일본의 계획된 도발이란 것이다. 청와대ㆍ정부와 기업 간의 핫라인을 개설하고, 문 대통령이 '장기화'를 언급하는 건 그만큼 이번 문제가 쉽게 매듭지어질 성격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최근 한ㆍ일 관계는 꼭 경제영역에 국한된 사항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에선 “장기적으로 한·일 관계를 재설정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