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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한진칼 지분 투자로 꽃놀이패 쥔 델타항공…백기사로 등장해 대한항공에 협상력 강화

중앙일보 2019.07.14 00:03
델타항공 매입한 한진칼 지분 평가손 상태… 한진그룹 경영권 향배에 ‘캐스팅보트’
사진:델타항공

사진:델타항공


미국 델타항공이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을 일부 매수하면서 한진칼 경영권 분쟁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델타항공은 6월 20일(현지시간) 오전 7시 30분 회사 홈페이지에서 한진칼의 지분 4.3%를 인수했다고 밝혔다. 델타항공 측은 “규제 승인을 받은 후 지분율을 10%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일단 델타항공이 조원태 회장 일가에 백기사로 나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어서 한진칼 지분을 공격적으로 매입하던 강성부펀드(KCGI)가 코너에 몰렸다는 관측이다. 특히 델타항공이 한진칼의 지분 매입 사실을 밝힌 후 경영권 분쟁을 재료로 급등했던 한진칼 주가는 급락했다. 양정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KCGI가 한진칼 지분을 더 사더라도 글로벌 최대 항공사인 델타항공이 가세한 이상 조원태 회장 일가와의 지분 경쟁에서 우세를 점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며 “한진칼을 둘러싼 KCGI와 조원태 회장 일가의 지분 경쟁 가능성은 작아졌다”고 설명했다.
 
 
“조원태 회장 일가 지원” 밝힌 적 없어
사실 델타항공은 조 회장 일가를 지원하기 위해 한진칼 지분을 매입했다고 밝힌 적이 없다. 지금까지 한진그룹과 델타항공의 관계를 봤을 때 델타항공이 조 회장 일가의 백기사로 나섰다는 분석이 우세할 따름이다. 최남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델타항공 입장에서는 지분 투자로 스카이팀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조 회장 일가와의 우호적 관계를 견고하게 구축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관계를 이끌어 낼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델타항공이 다른 항공사에 투자한 것도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델타항공은 중국의 중국동방항공, 프랑스의 에어프랑스-KLM, 멕시코의 GOL라인 등에 투자했다. 델타항공이 대한항공과 조인트벤처를 세워 운영하고 있는 만큼 지분을 매수하는 것은 파트너십 증진을 위해 자연스럽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여러 정황을 고려했을 때 델타항공의 이번 투자는 단순한 파트너십 증진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먼저 대한항공이 아니라 한진칼에 투자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델타항공과 직접적인 협력관계를 가지는 것은 대한항공이다. 한진칼은 대한항공의 최대주주일 뿐 사업 측면에서는 델타항공과 관계가 전혀 없다. 델타항공이 즉각적인 손실을 감수하고 투자했다는 점도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델타항공이 골드만삭스를 통해 지분을 매입한 시점은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진칼의 주가가 최정점에 이르렀던 시점이다. 델타항공이 보유한 지분 가치는 매입 시점보다 적어도 20% 이상 떨어졌다. 델타항공이 한진칼의 지분을 매입했다는 것이 공개되면 주가가 급락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다.
 
 
델타항공이 주식을 매수한 방법 역시 관심을 끈다. 델타항공은 골드만삭스를 통해 한진칼 주식을 장내매수했다. 일반적으로 기업과 기업 간 지분 투자는 신주발행이나 대주주의 지분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조 회장이 델타항공의 투자를 유치한 것이냐는 물음이 나오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지분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델타항공이 협력강화를 위한 일반적인 투자를 원했다면 대한항공에 증자하는 방식이나 한진칼의 대한항공 지분을 매수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델타항공 측에 대한항공이 아닌 한진칼 지분을 매수한 배경과 신주배정이 아니라 장내매수 방식을 선택한 이유를 e메일을 통해 물었다. 델타항공 측은 “우리의 투자방식은 국가와 항공사별로 다르다”며 “한진칼 주식 매입과 관련해서는 델타는 모든 국내 일반 주주에게 가능한 공개시장 형식을 따라서 주식을 매입했으며 한진칼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파트너십의 안정성과 성장가능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한진칼 투자를 결정하게 됐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다만 델타항공이 언제까지 조 회장에게 백기사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이번 투자로 델타항공은 한진그룹 경영권 향배에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조 회장 특수관계인과 조양호 전 회장이 남긴 지분(27.8%)과 KCGI의 지분율(15.98%)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델타항공이 계획대로 지분율을 10%까지 늘리게 된다면 주주총회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KCGI가 이탈하더라도 조 전 회장의 지분 승계가 마무리된 후 형제 간 경영 갈등이 발생할 경우 델타항공의 입김이 또 다시 유지될 수 있다. 이는 델타항공이 대한항공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을 뜻한다. 일각에서는 조인트벤처 체제에서 수익배분이 양사의 협상력에 따라 갈리기 때문에 대한항공의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한다.
 
 
KCG, 이자비용 감당하며 장기전 승부?
델타항공의 지분 매입 목적이 무엇이든 시장에서 조 회장 일가의 백기사로 받아들이는 만큼 KCGI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고 있다. 지분 매입에 나설 자금을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 KCGI가 자금 마련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앞서 일부 증권사가 주식담보대출 연장을 거절한 가운데 2금융권과 주식담보대출 협의에 돌입했으나 무산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델타항공의 가세로 KCGI의 경영권 위협은 위력이 반감됐고 떨어진 주가 탓에 투자자들의 불만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자금 마련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KCGI가 한진칼에 대한 공세를 멈출지는 미지수다. KCGI는 델타항공의 한진칼 지분 인수 소식이 나온 후 “기업지배구조에 관해 동일한 철학을 공유하는 델타항공이 한진칼에 투자를 결정한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한다”며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델타항공이 백기사라는 시장의 시선을 불식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시장에서 델타항공이 한진칼의 백기사라는 분석이 이어지자 KCGI는 델타항공에 한진칼 지분을 매수한 이유에 대해 서신 질의했다. KCGI는 6월 28일 델타항공 이사회를 상대로 ▶한진그룹 총수 일가 각종 사건 진행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지 ▶올해 한진그룹 계열사 정기 주주총회 표대결 경과를 파악하고 있는지 ▶한진칼 지분 취득의도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의했다. KCGI 측 관계자는 “만약 델타항공이 한진칼 지분 투자와 관련해 총수 일가 측과 묵시적으로라도 합의한 사실이 있다면 한국 자본시장법령 위반 소지가 있음을 알렸다”고 설명했다.
 
 
현재 한진칼의 주가 추이는 지난해 11월 말~ 12월 초 수준이다. KCGI가 한진칼의 지분을 매입했다고 밝힌 지난해 11월 15일 이후의 기대감이 반영됐을 시기다. 그 이전까지 한진칼 주가는 1만9000~2만1000원대에서 오르내렸다. KCGI가 그레이스홀딩스를 비롯해 다수의 펀드를 조성해 취득한 주식은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입고 있지만 손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다. 높은 가격에 주식을 매수한 베티홀딩스와 캐롤라인홀딩스의 경우 손실 규모가 크지만 그레이스홀딩스·디니즈홀딩스·엠마홀딩스 등은 평균 단가가 현재 주가보다 낮을 것으로 추산된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KCGI는 델타항공의 지분 투자가 알려진 이후에도 투자유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주식담보대출에 대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장기적인 분쟁으로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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