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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나의 종착지…전집 마무리가 생의 마지막 목표"

중앙일보 2019.07.13 08:00
괴테의 『파우스트』를 새롭게 번역한 전영애 교수. 앞으로 괴테 전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최정동 기자

괴테의 『파우스트』를 새롭게 번역한 전영애 교수. 앞으로 괴테 전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최정동 기자

 
"이미 다양한 『파우스트』번역본들이 있지만, 이 작품이 본래 운문이라는 것을 예감이라도 하게 하는 번역은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파우스트』를 나만의 언어로 조금이나마 운문답게 옮겨보고 싶었습니다."

독문학자 전영애 교수 『파우스트』 출간

 
전영애(68) 서울대 독문학과 명예교수가 최근 독일의 문호 괴테의 대표작인 『파우스트』(전 2권, 도서출판 길)를 독ㆍ한 대역으로 출간했다. 지난 9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에서 만난 전 교수는 "파우스트의 정교한 운문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어도 아주 조금이나마 '시'다움이 느껴지는 번역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오래 품었고, 그렇게 새 번역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파우스트는 괴테가 60여 년에 걸쳐 쓴 작품으로, 1만2111행이라는 방대한 분량이 정교한 운율로 짜인 역작이다. 욕심 많은 주인공이 악마와 계약해 영혼을 팔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민간전승을 각색한 이야기다. 원작에선 주인공이 24년 동안 복락을 누리다 결국 지옥에 떨어진다. 하지만 괴테는 24년이라는 한시적 계약을, 주인공이 '멈추라'고 말하는 시점까지 악마가 봉사해야 하는 내기로 바꿔 놓았다. 덕분에 이야기는 엄청난 추동력을 가진 파우스트가 겪게 되는 파란만장한 대서사시로 재탄생했다.
 
"파우스트를 처음 읽었을 때는 너무 어려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진가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 책은 200년 전에 쓰인 이야기지만 오히려 현재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점이 큰 작품입니다.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봤기 때문이죠. 이 작품은 욕망에만 추동될 뿐 인간이 점점 더 왜소하고 허약해지는 시대에 각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결국엔 내면의 힘에 대해 말하는 작품입니다."
 
전 교수는 파우스트를 번역하는 동안 기존의 한국어 번역을 전혀 보지 않았다고 한다. 최초의 한국어 번역인 것처럼 오로지 원본만 들여다보며 번역했다. 오직 자신의 눈과 안목만 의지해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두려웠지만, 이제쯤은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우리나라 독문학의 높이나 문학 전반의 시야가 그만큼은 되었다고 생각했다"고 서문에 적었다.
 
전 교수는 파우스트를 요약하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를 꼽았다. '천상의 서곡'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우리에게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구절로 더 익숙하다. 그런데 전 교수는 번역하면서 고심 끝에 '노력'이라는 단어를 '지향'으로 바꿨다. 그는 "독일어 동사 'streben'은 밤낮으로 노력한다는 의미보다는 마음속의 솟구침을 더 많이 담은 단어다. 노력에 다소 지나치게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아 오랜 생각 끝에 굳어진 번역을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추천하는 파우스트의 또 다른 문장은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이 악마에게 파우스트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오는 이 문장은 비문이라 단박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곱씹어 읽어보면 깊은 울림과 여운이 있다.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혀 있어도 알맹이가 선하다면 바른 의식이 있을 것이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포용, 기다림이 담겨 있다.
전영애 교수는 "괴테를 알게 된 건 인생에서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전영애 교수는 "괴테를 알게 된 건 인생에서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전 교수는 "이 밖에도 파우스트 안에는 주옥같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문장들이 너무나 많다"며 "번역하는 내내 나를 사로잡은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고 설명했다. '반짝이는 건 순간을 위해 태어난 것 / 진정한 건 후세에도 간직됩니다' '인식했으면, 무엇이 세계를 / 그 가장 깊은 내면에서 지탱하고 있는지' 등은 그가 꼽은 명구절이다.
 
사실『파우스트』 번역은 전 교수가 계획하고 있는 '괴테 전집'의 출발일 뿐이다. 그는 앞으로 괴테의 시, 드라마, 소설, 서간집 등 총 20권을 차례로 출간할 예정이다. 전 교수는 "괴테는 '종이 시대의 가장 생산적인 시인'이라고 불릴 만큼 남긴 작품이 방대해 모두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현재 한국 독자들에게 의미가 있고 필요한 것들을 선별해 전집으로 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994년부터 괴테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한 그는 이미 전집의 절반 정도는 번역을 마친 상태다. 매일매일 꾸준하게 숨을 쉬듯 번역 작업을 한다는 전 교수는 앞으로 10년 정도 후면 괴테 전집 번역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아직 괴테 전집을 혼자서 완성한 사람이 없는데, 하늘이 허락하기만 한다면 내가 마지막까지 꼭 해보고 싶다"며 "괴테의 전집을 마무리하는 것이 내 생의 마지막 목표"라고 밝혔다.
전영애 교수가 중앙일보에서 『파우스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전영애 교수가 중앙일보에서 『파우스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괴테는 살면서 위기나 시련을 겪으면 능동적인 사유와 연구, 창작으로 극복해낸 인물입니다. 단순히 극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성장시켜나갔어요. 살면서 여러 훌륭한 작가를 만났는데 오랜 여정 끝에 가장 큰 인물인 괴테를 정착지로 삼게 된 것입니다. 괴테를 알게 된 건 내 인생이 엄청난 행운입니다."
 
전 교수는 독일 괴테학회의 '괴테 금메달'을 2011년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받았다. 괴테 금메달은 괴테학회가 1910년부터 괴테 연구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수여했으며, 관련 연구자 사이에서는 최고 영예의 상으로 꼽힌다. 수상자 대부분은 독일 출신 괴테 연구자로, 외국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는 "당시에 괴테 금메달을 받으면서 나는 자격이 안 되는데 앞으로 자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며 "괴테 전집을 마무리하는 것은 나에게 그 약속을 지키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 교수는 괴테의 작품을 번역하는 일 외에도 한국에 괴테의 마을을 직접 만드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그가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여주의 여백서원 일부를 '괴테 마을'로 꾸미고 있는 것. 여백서원에 있는 '괴테의 산책길'이나 '파우스트 극장' '괴테의 도서관' 등이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단순히 독일의 괴테 마을을 복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괴테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며 "개인이 왜소해지는 요즘, 괴테라는 인물은 다시금 조명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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