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7cm 열무 뿌리의 비밀

중앙선데이 2019.07.13 00:20 644호 26면 지면보기
안충기의 삽질일기
잎채소 전성기가 지나고 이제 열매채소 계절이다. 같은 줄기에서 달려도 모양이 제각각인 오이, 일하다 목마르면 따서 먹는다. 잔가시 훑어내고 뚝 분질러 씹으면 풋풋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앵두·버찌·블루베리 익어가며 여름도 깊어간다.

잎채소 전성기가 지나고 이제 열매채소 계절이다. 같은 줄기에서 달려도 모양이 제각각인 오이, 일하다 목마르면 따서 먹는다. 잔가시 훑어내고 뚝 분질러 씹으면 풋풋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앵두·버찌·블루베리 익어가며 여름도 깊어간다.

1985년 8월 28일 신영복 선생은 감옥에서 이런 편지를 썼다.
  

사람에게 최소 주거 기준이 있듯
채소도 적정 재배 거리가 있다
빽빽하게 키우면 신경질을 낸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법으로 정한 ‘최소 주거 기준’이 있다. 3인 가구는 방 2개와 주방을 갖추고 전용면적 36㎡(11평), 4인 가구는 방 3개에 43㎡(13평)가 돼야 한다. 1인당 10㎡(3평) 정도다. 학계에서는 보다 쾌적한 ‘적정 주거면적’을 제시한다. 3인 가구는 60㎡(18평), 4인 가구는 66㎡(20평)다. 행복이 집의 크기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의 사적 공간은 필요하다.
 
마른 풀 더미 위에서 뿌리 내린 열무. 쭉 펴니 30cm다.

마른 풀 더미 위에서 뿌리 내린 열무. 쭉 펴니 30cm다.

채소도 적정 주거면적이 있다. 성장에 적당한 공간이 있어야 스트레스 없고 튼튼하게 자란다. 여름에는 특히 그렇다. 시루에서 자라는 콩나물 취급하면 신경질을 낸다. 모종을 심을 때 띄우는 한 뼘은 자존의 거리다. 문제는 씨앗을 뿌릴 때다. 좁쌀만 한 씨앗을 뿌릴 때 적정 간격을 정하기는 쉽지 않다. 겉봉에 표시한 발아율은 참고사항일 뿐이다. 지난봄에 씨앗 1000개 정도가 든 들깨 1봉을 뿌렸는데 싹이 튼 건 10포기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새싹이 빽빽하다 싶을 정도로 올라오게끔 씨를 붇는다.  
 
이때부터 머리가 복잡해진다. 자라는 속도에 맞춰 적당한 만큼 솎아내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채소가 무섭게 자라는 5월 말에서 6월 한 달이 고비다. 아이고 예쁜 놈들 보기만 해도 배불러, 하다가 때를 놓치면 폭삭 망한다. 채소들에게 전우애와 형제애는 없다. 오직 밥그릇싸움만 있다. 햇살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악을 쓰며 하늘 향해 목을 뺀다. 다투다가 다리가 엉키고 팔은 비틀리고 허리가 굽기도 한다. 경쟁에 밀린 포기는 핏기를 잃고 비실대다 주저앉는다.  
 
이러니 그냥 놔뒀다가는 같이 망해 손가락 빨기 십상이다. 아수라장을 교통정리 할 나는 기껏 주말 한나절만 시간이 날 뿐이다. 과감하지 않으면 사달이 난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20011년 6월 18일이었다. 밀림이 되어가는 밭에서 뒤엉킨 채소를 뭉텅뭉텅 뽑아 던지며 바람 길을 내고 있었다. 키 큰 풀 뽑아내고, 꽃대 올리는 쑥갓 허리를 분지르고, 양배추 벌레를 떼어 던졌다. 웬만큼 일을 마친 뒤 밭둑에 앉아 한숨 돌리는데 옆에 있는 풀 더미에 눈길이 갔다.  
 
6월 중순만 해도 밭은 이렇게 여린 채소들로 가득했다. 한 달 지나 지금은 온통 억센 풀들 천지다. 천국과 지옥의 시간차는 한 달이다.

6월 중순만 해도 밭은 이렇게 여린 채소들로 가득했다. 한 달 지나 지금은 온통 억센 풀들 천지다. 천국과 지옥의 시간차는 한 달이다.

이웃들이 밭에서 나온 풀이며 버린 채소를 몇 년째 쌓아 높이가 1m쯤 됐다. 풀 더미는 바짝 말라있었는데 그 위에서 뭔가 자라고 있었다. 열무 한 포기였다. 물기 하나 없는 데서 어떻게 뿌리를 내렸을까. 한 달 전에 심고 남은 열무씨앗을 허공에 휘휘 뿌린 일이 생각났다. 그중 한 톨이 떨어져 뿌리를 내렸을 터였다.
 
줄기를 손가락으로 살살 당겨봤다. 풀 더미만 들썩일 뿐 뽑히지 않았다. 힘을 줘도 마찬가지였다. 뿌리가 단단히 박힌 모양인데 얼마나 길게 자랐을까 궁금해졌다. 더 세게 당기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산삼 캐듯 지극정성으로 헤쳐 내려갔다. 뿌리는 구불구불 끝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점점 가늘어지던 뿌리 아래가 끊어지고 나서야 작업이 끝났다. 눕혀놓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물을 찾아 대장정을 떠난 뿌리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가 물기를 만나고서야 실뿌리를 내고 있었다. 연두색 연한 잎에는 벌레 먹은 흔적이 거의 없었다. 안온한 이랑에서 때마다 물 받아먹으며 자라면서도 너덜너덜한 진초록 열무와 달랐다. 집에 가지고 와 재니 뿌리길이만 27cm였다. 똑바로 잡아 늘리고 끊어진 부분까지 더하면 30cm가 넘을 터였다. 시장에서 파는 열무뿌리는 10cm 정도다.
 
2004년의 기억도 있다. 한 해만에 베란다 천장까지 올라간 인동덩굴이 다음해가 되자 잎에 곰팡이가 피며 시들시들해졌다. 밭에 가져다 심으니 하얀 꽃을 무더기로 피우며 다시 무성해졌다. 죽어가던 화분 속 인삼 벤자민도 밭에서 다시 싹을 틔웠다. 그해에는  농협에서 사다 심은 머루 묘목도 가지가 휘어져라 열매가 달렸다.
 
풀어놓으면 알아서 크는 데, 나는 아직도 집착이 크다.
 
그림·사진·글=안충기 아트전문기자 newnew9@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