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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정치권, 개혁보다 총선에 몰입…촛불 정신 희미해져 걱정
김진국이 만난 사람

정치권, 개혁보다 총선에 몰입…촛불 정신 희미해져 걱정

중앙선데이 2019.07.13 00:20 644호 10면 지면보기
김진국 기자 사진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kim.jinkook@joongang.co.kr
강대인 정개특위 자문위 운영위원장 
선거법은 고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15일 여야 5당은 선거법 개정에 합의했다. 연동형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반대, 나머지 4당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으로 국회가 마비되는 곡절을 겪었다.
내년 4월 총선에 적용하려면 시간이 없다. 말이 신속처리지 서둘러도 330일까지 걸린다. 민주당이 특위 위원장 한 자리를 한국당에 넘겨주고 국회를 정상화했지만 갈 길이 멀다. 정개특위 자문위 운영위원장인 강대인(72) ‘배곳 바람과 물’ 이사장은 정치권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의회주의 실종
국회가 국정의 구심점 역할 못해
여론조사·국민청원 통해 정책 결정

권력 집중 문제
총리에게 국무위원 제청권 보장 등
대통령 권한 조금이라도 나눠줘야

정치 개혁 필요
국회·정당 정치 살리는 게 급선무
권력구조 바꿔야 대통령 불행 막아

2일 평창동 ‘대화의 집’ 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고(故) 강원용 목사가 운영하던 ‘크리스챤아카데미’ 후신이다. 강 이사장은 대화문화아카데미 원장을 겸하고 있다. 대화의 집 1층은 카페, 2층은 대화문화아카데미, 3층은 크리스챤아카데미가 쓰고 있다. 지하 갤러리에는 여성운동 관련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다.

벽에는 강원용 목사가 김수환 추기경 등과 함께 동일방직 여공들을 만나는 장면, 80년 서울의 봄 때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씨를 대화모임에 초청해 민주정부 수립을 논의하는 사진 등 대화아카데미의 역사가 걸려 있다.
강대인 이사장은 ’촛불 정신이 벌써 희미해지고,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라며 ’정치권은 벌써 내년 총선에 몰입하고, 총선이 지나면, 늘 되풀이해 왔던 것처럼 대선 준비로 다들 몰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강대인 이사장은 ’촛불 정신이 벌써 희미해지고,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라며 ’정치권은 벌써 내년 총선에 몰입하고, 총선이 지나면, 늘 되풀이해 왔던 것처럼 대선 준비로 다들 몰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정치개혁이 입법부의 고유 권한이기는 하지만, 이해가 걸린 당사자들 아닙니까. 장기적인 안목에서, 역사의식을 갖고, 국민을 위한 정치 개혁 작업을 하고 있는지 회의적입니다. 자문위원들을 위촉해놓고, 의원들과 연석회의 한번 해 본 적이 없어요.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하는데, 그걸 도와주려고 온 사람들 이야기도 안 듣고 무슨 국민의 뜻을 받든다는 건지….”
촛불 정신을 살리는데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나요.
“솔직히 촛불 정신이 벌써 희미해지고,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입니다. 정치권은 벌써 내년 총선에 몰입하고, 총선이 지나면, 늘 되풀이해왔던 것처럼 대선 준비로 다들 몰려가겠죠. 6·10항쟁 때도 그랬고, 이번 촛불 항쟁도 그렇고…. 촛불은 중앙에 집중된 권력, 통치세력의 잘못된 정치형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었는데, 얼마나 개혁이 진행되고 있는지 매우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의원들, 자문위원들과 회의 한 번 안 해
 
촛불 정신이 뭐라고 봅니까.
“87년 이후 대통령 두 사람이 지금 감옥에 가 있고, (두 사람은 갔다 왔고) 또 한 사람은 죽음을 택했고…. 이런 체험을 통해서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구조를 바꿔야겠다는, 그게 촛불 정신의 정치적 함의였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는 20~30대가 ‘정유라의 말’이나 ‘편입학 부정’ 같은 공정하지 않은 일에 굉장히 분노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라고 봅니다. 모든 게 대통령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니 핵심은 정치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권력구조를 손대기에 너무 늦지 않았나요.
“과거에는 ‘이번엔 누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기대를 했습니다. 이제 ‘이 정치제도 가지고는 오래된 비극적 관행을 멈추기 어렵겠다’고 확신합니다. 20대 국회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선거제 개편하고, 헌법 개정까지는 어렵더라도 선거제도와 연계해 권력 구조를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라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의회에 와서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토론하고, 국정을 논의하지 않으면, 만성적인 정치 불안이 계속되고, 거리의 정치도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는 문명화된 선진국은 “의회가 국정을 주도”하는데, “우리는 국회가 국정의 구심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 구성원은 4년에 한 번, 5년에 한 번 투표하는 것 이외에는 정치에 참여할 통로가 전혀 없습니다. 국민의 삶에서 올라오는 이야기들이 반영되는 의사당 정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 국정의 불연속성 문제가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교과서가 바뀌고, 남북관계가 바뀌고…. 이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패스트트랙에 올려놓은 선거법 개정안이 다시 바뀌지 않을까요.
“자문위 안도 현실을 고려한 최소한의 개혁안이었단 말이에요. 작년 5당 원내대표들이 대충 그런 방향으로 합의했지 않습니까. 연동형이면 연동형이지 50% 연동형이 뭡니까.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연동형하고 대통령중심제가 맞느냐’고 했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연동형으로 키워갔으면 좋겠고, 시간이 없으면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라도 연동형의 취지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인지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습니다.”
개헌하지 않고 어떻게 조정할 수 있습니까.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막강하다는 공감은 이뤄졌지 않습니까. 우선은 지금 헌법 안에서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을 보장하는 거죠. 국회가 총리를 복수 추천해 대통령이 결정하게 한다든지, 내각에 의결권을 주는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정도라도 너무 집중된 대통령 권력을 의회와 조금이라도 나누는 최소한의 법 제도를 고칠 수 있겠죠. 국민의 여망을 존중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만 있다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의사당 정치나 정당정치가 활성화되지 않는 원인은, 모든 게 대선을 목표로 움직이는 오래된 정치 문화죠.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당에 축적된 정책으로 집권해야 하는데, 우리는 대선 후보가 등장하면 그때부터 측근들로 인수위원회를 구성해 선거공약 위주로 정책을 만들고, 3분의 1도 실행하지 못하고 가지 않습니까. 의사당이 활성화되려면 정당이 명실상부한 가치집단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바뀌지 않으면, 정당도 안 바뀌고, 의회도 안 바뀔 것 같습니다.”
대화문화아카데미는 정치 개혁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왔다. 처음 개헌안을 만든 것은 1980년 서울의 봄 때다. 원로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 등이 참여했다. 12년 전 다시 헌법 논의를 시작해 정치개혁을 포함해 40회 이상 대화모임을 했다.
강대인 이사장이 80년 서울의 봄 당시 크리스챤아카데미의 대화 모임에 참석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씨 등의 사진과 참석자들의 서명을 가리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진국 기자

강대인 이사장이 80년 서울의 봄 당시 크리스챤아카데미의 대화 모임에 참석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씨 등의 사진과 참석자들의 서명을 가리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진국 기자

“저희는 동지들의 모임이 아니고, 입장과 견해를 달리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아가는 모임입니다. 팽팽하게 갈렸던 의견들이 논의를 계속하다 보니 자꾸 좁혀지더라고요. 그래서 과거의 대통령 중심제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순수내각제로 가자는 분이 별로 없다고 봅니다. 민주당과 한국당도 우리 정치가 활성화되고, 의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당장 조금 손해 보더라도 멀리 볼 때 이런 개혁에 힘을 모으는 게 현명하다고 보는데, 역시 조금 근시안적인 것 같아요. 더구나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오랫동안 작업하시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18대 국회는 초당적으로 미래한국헌법연구회를 만들었는데, 무려 189명의 의원이 참여했어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이야기를 하면 모든 것이 블랙홀로 빠져든다’고 한마디 하자 조용해졌어요. ‘이야, 한국에는 여당이 없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사실상 여당 대표는 대통령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는 “의사당 내에서의 토론을 통해서 중요 국정을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여론 조사나 국민청원을 통해 정책을 만들려고 한다”면서 “그러면 의회가 점점 더 약해지지 않느냐”고 우려했다.

“얼마 전 대통령이 국회에 오셨을 때 이전 국회의장 한 분이 ‘급한 일이 있을 때 제가 통화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를 주십시오’ 해서 전화번호를 받았답니다. 그런데 한 번도 통화가 안 되었답니다. 국회의장이 대통령에게 전화했는데…. 이게 뭘 의미합니까. 국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쓸모없다는 것 아닙니까. 국민에게 자꾸 국회를 혐오하도록 유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민주주의로 보면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교양 있는 정치인들, 막말해 가슴 아파
 
개헌의 핵심은 뭡니까.
“저는 대통령 권력을 줄이는 문제보다, 어떻게 하면 국회를 살릴까, 어떻게 하면 정당을 살릴까, 거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거제도를 개편하고, 권력 구조도 개편하자는 겁니다. 해방 이후 우리 국회도 대통령 중심제의 피해자였습니다. 물론 국회 자체도 비난받고 신뢰를 잃어버릴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지만, 구조적인 원인은 권력 구조와 정부 형태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것이 정당 공천에도 영향을 주고, 한국당이 깨지게 된 것도 사실 그것 때문 아닙니까. 왜 우리는 역사가 주는 메시지를 깊이 성찰하면서 새롭게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취약한지 모르겠어요.”
1988년 5월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1박2일 대화 모임에 참석한 3김씨. 왼쪽부터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강원룡 목사. [대화문화아카데미]

1988년 5월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1박2일 대화 모임에 참석한 3김씨. 왼쪽부터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강원룡 목사. [대화문화아카데미]

그는 세종로 공원 주시경 선생 비석에 새겨진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라는 말을 인용해 정치의 품격을 주문했다.

“언어가 굉장히 소중한 것인데, 어떻게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서 말을 함부로 하는지…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언어는 영혼이 담긴,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기반’입니다. 평소 만나면 인격도 교양도 있는 분들이, 예비군 훈련장에 간 예비군처럼 국회나 당에만 가면 그러실까요. 문제는 제도에 있다고 봅니다. 정당도 바뀌어야 하고,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균형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너무 작은 것을 가지고 싸우지 말고, 20대 국회가 정치제도 개혁의 물꼬를 트는 것으로 국민에게 보답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크리스챤아카데미 초대 원장 강원용 목사의 장남
강대인 이사장의 선친인 강원용 목사

강대인 이사장의 선친인 강원용 목사

1962년 만들어진 크리스챤아카데미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초대 원장이 여해(如海) 강원용 목사는 목회자이면서, 사회운동가이자,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였다. 그는 경동교회를 설립한 당회장으로 종교 간 대화를 주창해 초기에는 개신교 내부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강대인 ‘배곳 바람과 물’ 이사장은 강 목사의 장남이다. 경동교회에서 태어난 그는 장충국민학교 학생회장 시절 ‘모범적인 학생’이라고 적힌 성적표를 가져왔다. 강 목사는 못마땅해 해 강 이사장에게 오랫동안 충격으로 남았다고 한다. 강 목사는 “모범생은 보통 일밖에 못한다. ‘창조적 소수자’가 사회를 이끌고 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연세대 문과대를 나와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8년 반 독일 생활을 마친 그는 귀국 직후부터 크리스챤아카데미 간사로서 아버지를 도왔다. 그는 40여년을 ‘스태프’로 살아와 앞에 나서지 않는다. 인터뷰도 마지못해 응했다. 연세대 대학원 정외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재단법인 ‘여해와 함께’ 아래 세 조직이 있다. 기독교 문제만 다루는 ‘크리스챤아카데미’, 사회적 대화를 하는 ‘대화문화아카데미’, 생명 가치를 교육하는 ‘배곳 바람과 물’이다. 강 이사장은 대화문화아카데미 원장과 배곳 바람과 물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자문위 활동만 끝나면 원장직은 내놓기로 했다.

‘배곳’은 주시경 선생이 만든 ‘배움터’란 뜻의 말이다. 강 이사장은 환경과 교육이 전공이다. 87년 이후 주민자치의 풀뿌리민주주의에 매달려왔다. 앞으로 여기에 주력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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