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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중국·동남아 수출길 막힌 폐플라스틱 한국행?

중앙일보 2019.07.13 00:03
동남아 각국, 바젤협약 개정안 내세워 속속 수입 중단… OECD 회원국 간 수출입 예외 움직임
 

OECD발 ‘폐플라스틱 쓰나미’ 덮치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 포트 클랑 항에서 한 작업자가 폐플라스틱 등으로 가득 채워진 컨테이너를 열어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자국에 밀반입된 수백t 규모의 쓰레기를 적발해 일본과 영국, 캐나다, 미국 등 배출국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 사진 연합뉴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 포트 클랑 항에서 한 작업자가 폐플라스틱 등으로 가득 채워진 컨테이너를 열어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자국에 밀반입된 수백t 규모의 쓰레기를 적발해 일본과 영국, 캐나다, 미국 등 배출국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 사진 연합뉴스

국내로 반입되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쓰레기 처리의 어려움을 내세워 지난해 1월 폐플라스틱 수입을 중단한 여파다. 중국으로의 폐플라스틱 수출길이 막히자 미국과 일본, 유럽 주요국은 폐플라스틱을 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 등지로 보냈고, 이 가운데 일부가 국내로도 흘러들었다. 여기에 최근 바젤협약 개정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선진국에서 오는 폐플라스틱 반입을 중단하면서 한국의 폐플라스틱 수입량은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로 들어온 폐플라스틱은 15만1292t으로 수출량(6만7441t)의 2배가 넘는 물량이었다. 2017년까지 수출이 수입보다 약 3배 수준으로 많았지만 지난해부터 달라졌다. 이른바 ‘폐플라스틱 무역수지’는 지난해 4868만2000달러(약 568억3600만원) 적자로 돌아섰다. 국내 재활용 업체들이 중국으로 가던 폐플라스틱 수입을 늘린 탓이다. 한 재활용 업체 관계자는 “수입 폐플라스틱으로 재생원료를 만들면 판매 단가에서만 ㎏당 100원 정도를 더 받는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바젤협약 개정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폐플라스틱을 반입하지 않겠다고 나서면서 한국이 폐플라스틱 처리장이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바젤협약은 선진국이 수출 명분으로 개발도상국에 유해 폐기물을 떠넘기지 못하게 하는 국제 협약이다. 187개 바젤협약 당사국은 지난 5월 10일 폐플라스틱을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폐기물(부속서Ⅱ)’로 새로 규정하고 개발도상국이 사전 허가 없는 폐플라스틱 유입을 거부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수출길 막혔는데 수입은 늘어
바젤협약 개정은 동남아시아 전체가 겪은 ‘쓰레기 쇼크’가 발단이 됐다. 지난해 1월 세계 폐플라스틱의 절반가량을 처리했던 중국이 수입을 중단하자 동남아시아가 몸살을 앓게 됐다. 매립·소각 인프라가 여의치 않고 처리 기술이 부족한 상황에서 선진국의 폐플라스틱이 몰려들자 그대로 방치되기 일쑤였다. 재활용 폐기물로 둔갑한 불법 폐기물이 밀반입되는 일도 허다했다. 한국이 지난해 12월 한국으로 되돌아 온 플라스틱 쓰레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필리핀으로 재활용 불가능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생 가능 폐플라스틱으로 속여 수출했다가 적발됐다. 일본·영국·사우디아라비아·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미국 등도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로 재활용 폐기물로 위장한 쓰레기를 수출해온 걸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동남아시아 각국은 유해 폐기물에 대한 각국의 관리 권한 확대가 핵심인 바젤협약 개정에 동의했다. 또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2021년 개정안 본격 시행에 앞서 플라스틱 수입을 속속 제한하고 있다. 베트남은 지난해 7월부터 폐기물 수입 업체에 대한 허가 발급을 중단했다. 2021년부터는 폐플라스틱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말레이시아는 최근 폐플라스틱 공장 114곳의 수입 허가를 취소했다. 태국은 2021년 모든 폐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하기로 했다.
 
문제는 폐플라스틱이 한국으로 몰려들 가능성이다. 전문가들은 바젤협약 개정으로 한국의 폐플라스틱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한달 동안 일본과 미국이 한국에 수출한 폐플라스틱은 각각 1만t, 4000t이었다. 직전해 같은 달에는 각각 3000t, 1000t에 그쳤다. 이와 달리 한국은 지난해 전체 폐플라스틱의 80%를 동남아시아로 수출했는데 앞으로 수출길이 막힐 가능성이 크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 소장은 “한국은 하루 평균 4000t의 폐플라스틱을 배출하는 ‘쓰레기 생산 대국’이면서 폐플라스틱을 수입하는 나라”라면서 “국내에서 나온 폐플라스틱양이 적지 않은 데도 선진국의 폐플라스틱을 수입해 재가공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 간 거래에선 바젤협약 적용을 예외로 두려고 한다는 점이다. OECD 회원국 사이에서는 바젤협약에 관계없이 폐기물의 자유로운 수출입을 허용하자는 조항이 담긴 별도의 환경규제절차(Green Control Procedure)를 따르자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이 주요 선진국의 폐플라스틱 수출 타깃이 될 우려가 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폐플라스틱 수입이 수출보다 많은 몇 안 되는 나라다. 특히 한국이 올해 들어 지난 6월까지 들여온 전체 폐플라스틱의 82%는 OECD 회원국에서 나왔다. 지난해 OECD 회원국에서 국내로 들여온 폐플라스틱이 전체 수입량의 70%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6개월 사이 12%포인트 증가했다.
 
OECD는 지난 6월 전문가 회의에서 바젤협약 개정 합의가 이뤄진 지난 5월 10일부터 60일 이내인 오는 7월 9일까지 이의신청을 받기로 했다. 이의신청이 없으면 바젤협약이 187개 당사국 전체에 적용되지만, 이의신청이 이뤄질 경우 OECD회원국의 폐플라스틱이 한국으로 몰릴 수도 있다. 고금숙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활동가는 “바젤협약 개정안의 핵심은 민간에서 신고제로 이뤄지던 폐플라스틱 교역을 국가 허가로 규제하는 것”이라며 “OECD 사무국이 폐플라스틱 수출국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이면 바젤협약 개정안에 따라 동남아를 갈 수 없는 OECD 회원국의 폐플라스틱이 민간 통로로 대거 한국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제환경보건단체 아이펜(IPEN)은 지난 7월 3일 한국 정부에 “OECD 환경규제절차의 유해 폐기물 목록을 바젤협약 목록과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한국이 나서 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환경부, 뒤늦게 수입 허가제 검토하며 대책 마련
일각에선 폐플라스틱 수출이 막히고 수입이 늘면 중국의 수입 중단으로 불거진 쓰레기 대란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폐플라스틱 수출길이 막혔는데도, 처리가 편한 폐플라스틱 수입을 늘리면서 정작 국내에서 발생하는 폐플라스틱은 처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하루 평균 4000t이 넘는 폐플라스틱이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 생산대국이다. 이에 따라 한국 곳곳에 쓰레기 더미가 쌓이고 있다. 환경부가 집계한 국내 미처리 쓰레기(주로 폐플라스틱) 규모는 120만여t으로 전국 235곳에 산처럼 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68만2000t)이 경기도에 있고 이어 경북(28만6000t)·전북(7만8000t)·전남(3만2000t)·인천(2만9000t)·강원(2만8000t) 순이다. 특히 경북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의 한 폐기물 처리장에는 무려 17만3000여t의 거대한 폐기물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다. 폐기물 재활용 업체가 들여온 이들 폐기물이 제때 처리되지 못한 채 방치됐다.
 
정부는 최근에야 폐플라스틱 수입량을 조절하기 위해 폐플라스틱 수입 허가제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행 방침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 관계자는 “폐플라스틱을 합성섬유나 펠릿(플라스틱을 녹여 만든 조각) 등으로 가공해 수출하는 산업이 발전하면서 국내로 들어오는 폐플라스틱 양이 증가한 것이지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와 같이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바젤협약과 OECD 환경규제절차의 유해 폐기물 목록 합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고(폐플라스틱) 수입 허가제 도입도 준비하고 있는 만큼 폐플라스틱 수입 규모가 크게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디간지 IPEN 과학기술고문 - “한국도 폐플라스틱 밀반입 고통 겪을 수 있다”
“한국도 불법 플라스틱 폐기물 밀반입의 피해 국가가 될 수 있다.” 화학·폐기물 관련 세계적인 전문가 중 하나인 조 디간지 아이펜(IPEN) 선임과학기술고문이 바젤협약 개정 이후 내린 진단이다. 아이펜은 국제환경보건단체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재활용할 수 없는 폐기물을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했다가 되돌려 받는 망신을 당했다. 디간지 고문은 당시에는 한국이 가해자였지만 앞으로는 필리핀처럼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바젤·스톡홀름협약에 옵저버(감시자) 자격으로 참여해왔다. 폐플라스틱 규제가 결정된 지난 5월의 바젤협약 당사국 총회에도 참석했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바젤협약을 따르지 않는 사태가 불거질 수 있다”면서 “지금도 일본·미국 등지로부터 폐플라스틱을 수입하는 한국이 선진국의 쓰레기 처리국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바젤협약은 불법 플라스틱 폐기물 밀반입을 막기 위한 협약이다.
 
“바젤협약은 제11조에서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에 관한 개별 협약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 OECD 일부 회원국은 회원국 간 폐플라스틱 교역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OECD만의 개별 협약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폐플라스틱의 10%만 재활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머지 90%의 재활용 불가 폐플라스틱을 지금처럼 수출로 처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OECD만의 개별 협약을 추진할 경우 한국은 선진국들의 새로운 타깃이 될 수 있다.”
 
필리핀과 같은 사태가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필리핀은 개정된 바젤협약에 따라 오염된 폐플라스틱 수입을 국가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지위를 얻었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OECD 회원국인 동시에 폐플라스틱 전체 수입량의 약 80%를 OECD 회원국으로부터 들여오는 폐플라스틱 수입국이다. OECD가 바젤협약 개정안을 따르지 않고 개별 협약을 맺으면 OECD 국가가 불법 플라스틱 폐기물을 한국으로 밀반입할 여지가 생긴다.”
 
바젤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187개국이 개정에 동의했다. OECD 회원국 대부분도 당사국에 속해 있다.
 
“미국이 빠졌다. 미국은 바젤협약 폐플라스틱 개정안이 시행되면 187개 바젤협약 당사국 전체에 플라스틱 폐기물을 보낼 수 없게 된다. 바젤협약 당사국에서 빠져 있는 미국이 폐플라스틱을 내보내려면 OECD만의 개별 협약을 진행하는 게 유리하다. 이미 관련 산업 이해관계자들이 나서 OECD만큼은 개별 협약을 맺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럽쓰레기환경서비스연합(FEAD)은 “OECD에 속해 있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은 OECD가 바젤협약 개정안을 따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중국처럼 국내법을 제정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혼합 플라스틱과 같은 재생 불가 폐플라스틱을 수입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 포트 클랑 항에서 한 작업자가 폐플라스틱 등으로 가득 채워진 컨테이너를 열어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자국에 밀반입된 수백t 규모의 쓰레기를 적발해 일본과 영국, 캐나다, 미국 등 배출국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 사진 연합뉴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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