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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성주신이 누구더라?…우리 신화는 왜 잊혀졌나

중앙일보 2019.07.12 0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37)
'우리 신화'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 입에서 '단군신화'부터 튀어나온다. 대부분 '단군신화' 말고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리스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는 만화로, 영화로 더 익숙한 편이다. [중앙포토]

'우리 신화'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 입에서 '단군신화'부터 튀어나온다. 대부분 '단군신화' 말고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리스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는 만화로, 영화로 더 익숙한 편이다. [중앙포토]

 
아직 많은 사람이 한국에는 신화가 없는 줄 안다. ‘우리 신화’ 하면 떠오르는 게 무엇이냐 질문을 던져 보면 열에 아홉은 참여자 중 한두 사람 입에서 ‘단군신화’가 튀어나온다. 물론 단군신화도 신화이지만, 그것만 아는 것은 아쉽다.
 
반면에 그리스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는 아동용 만화책 시리즈로,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컴퓨터 게임으로 충분히 즐기고 있기에 매우 익숙하다. 그러다 조금씩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왜 저런 이야기가 없나? 태초의 혼돈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Geia)로부터 비롯되는 신들의 이야기. 남쪽의 불 무스펠(Muspell)과 북쪽의 암흑과 안개의 땅 니플헤임(Nifleheim)으로부터 비롯되는 광활한 신들의 영역.
 
토르와 요르문간드. 에밀 되플러의 1905년 그림. [사진 위키백과]

토르와 요르문간드. 에밀 되플러의 1905년 그림. [사진 위키백과]

아이온과 가이아가 4명의 아이들과 함께 있다. 이 네 명의 아이들은 아마도 사계절의 의인화인 듯하다. 기원전 3세기경. 로마의 모자이크. [사진 위키백과]

아이온과 가이아가 4명의 아이들과 함께 있다. 이 네 명의 아이들은 아마도 사계절의 의인화인 듯하다. 기원전 3세기경. 로마의 모자이크. [사진 위키백과]

 
한국 신화로는 '단군 신화' 밖에 모르는 입장에서는, '단군 신화'는 그만한 비유 상징이 부족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대로 각각 곰 토템과 호랑이 토템을 가진 부족들이 서로 싸우다 어느 한쪽이 힘을 얻게 된 이야기라고만 기억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단군 신화'는 한 나라가 만들어진 내력을 서술한 건국신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세상이 만들어지고 인간이 만들어진 내력을 이야기하는 신화가 있다. 세상의 근본과 인간의 근본, 신들의 근본과 사람살이의 근본을 풀이하는 이야기, ‘본풀이’이다. 이 본풀이는 ‘서사무가(敍事巫歌)’로 전해진 탓에 근본을 잃었다. 무당이 굿을 하며 부르는 노래 안에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세상의 근본을 풀이하는 이야기가 근본을 잃게 된 아이러니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와도 연관된다. 대체로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 전통문화가 사라진 것이 큰 요인으로 꼽히는데, 본격적으로 뿌리까지 뽑히게 된 것은 개발독재 시절 때라고 한다. 초가집 지붕 개량하고 농지 정리하면서 구습을 타파한다는 명목 아래 굿과 무당은 미신으로 치부되었고, 그 탓에 우리의 신화 전통은 이 땅에서 씨가 마르게 되었다.
 
주호민 작가는 '신과 함께'를 구상하면서 제주도를 오가며 심방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았다. '신과 함께'라는 제목 그 자체로 우리 신화의 특성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낸다. [사진 영화 신과 함께 스틸]

주호민 작가는 '신과 함께'를 구상하면서 제주도를 오가며 심방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았다. '신과 함께'라는 제목 그 자체로 우리 신화의 특성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낸다. [사진 영화 신과 함께 스틸]

 
그랬다가 이제야 겨우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는 중인데, 웹툰에서 영화로 이어지며 천만 관객에게 이름을 새긴 '신과 함께'가 큰 역할을 했다. 주호민 작가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제주도를 여러 차례 오가며 심방들을 인터뷰하고 당을 찾아가 관찰하며 자료를 모았다. '신과 함께'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우리 신화의 특성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낸다.
 
작가도 인터뷰에서 밝혔듯, 우리 신화는 다른 문화권과 다르게 굉장한 현실감을 바탕에 두고 있다. 가택신앙이라는 것 자체가, 신이 부엌에도 있고 문간에도 있고 심지어 측간에도 있다. 그래서 부엌을 지저분하게 쓰면 벌을 받기도 하고, 신들에게 대접을 잘하면 복을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 신화 자료들은 제주도, 함경도, 동해안 지방에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남아 있는 신화 자료들을 잘 갈무리하고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은 한국 신화 지도.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

우리나라 신화 자료들은 제주도, 함경도, 동해안 지방에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남아 있는 신화 자료들을 잘 갈무리하고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은 한국 신화 지도.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

 
현재 남아 있는 신화 자료들은 제주도 것이 가장 많고 함경도나 동해안 지방에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중앙에서 먼 곳이다 보니 미처 그 힘이 미치지 못한 덕분이겠다. 지금이라도 남아 있는 자료들을 잘 살려야 할 텐데 신화의 땅 제주도에 ‘신화 테마파크’도 만들어졌지만, 역시 기대(?)했던 대로 그저 테마파크일 뿐 신화의 이름으로 제주도 땅을 파헤친 역사만 남겼다.
 
가르치고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모르고 있다는 것도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학교 밖에서도 우리 신화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아서, 역시 아동용으로 나오는 그림책 자료들이 좀 있을 뿐, 성인 독자들이 깊이 있게 신화를 공부하고자 할 때 참고할 만한 도서나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현재 얼마라도 남아 있는 신화 자료들을 어떻게든 잘 갈무리하고 접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일이, 그래도 우리 구비문학을 연구하고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살겠다고 마음먹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우리에게도 태초의 혼돈으로부터 비롯되는 신들의 이야기가 있다. 하늘과 땅이 붙어 있고 해도 달도 둘씩 있던 시절, 세상과 함께 태어난 신에 의해 세상의 법(法)이 마련된 내력을 이야기하는 신화들. 이승과 저승의 분별이 생겨나고, 강남천자국과 서천서역국, 원천강과 서천꽃밭의 신성하고 광활한 신들의 영역,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과업을 수행해낸 뒤 신직(神職)을 부여받은 신들의 이야기.
 
우리 신들의 이야기를 불러내는 일은, 우리 삶의 근본을 이해하는 일이다. 단순히 ‘교훈’을 얻는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사람과 삶의 이치를 이해하는 깊이를 주는 일이 될 것이다. 앞으로 이 지면에서 신들의 이야기를 함께 해보려 한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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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필진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신화, 전설, 민담에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느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 하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옛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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