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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싸워야 할 상대

중앙일보 2019.07.12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이동현 산업1팀 차장

임진왜란 이태 전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 일행 중 부사(副使) 김성일(1538~1593)은 논쟁적 인물이다.  
 
일본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정사 황윤길 등과 함께 파견됐는데,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상소가 조정을 혼란케 했다. 결과적으로 “전쟁은 없을 것”이란 김성일의 상소는 거짓이 됐고 ‘당파의 이익을 위해 거짓 보고를 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됐다.
 
‘거짓을 보고한 게 아니라 혼란을 염려한 것’(유성룡, 『징비록』)이란 주장도 있지만 같은 동인(東人)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곧이 믿긴 어렵다. 실록을 보면 선조는 김성일의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수차례 그를 탓하는 발언을 했는데 요즘 말로 ‘뒤끝 있는’ 군주였던 셈이다.  
 
하지만 발언과 달리 선조는 김성일을 중용했다. 선조는 전란이 나자마자 김성일을 압송해 국문할 것을 지시했으나, 이내 특지를 내려 그를 경상우도 초유사(招諭使·난리가 났을 때 백성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맡는 임시 벼슬)로 삼았다. 김성일은 ‘거짓 보고’의 죄를 씻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당시로선 사지(死地)나 다름없던 경상도에 내려가 의병을 규합하고 관군을 독려했다. 그의 활동은 1차 진주대첩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이후엔 경상우도 관찰사가 돼 전란 극복에 앞장섰다. 2차 진주성 전투를 앞두고 사망했는데 실록은 “군사와 백성들이 마치 친척의 상을 당한 것처럼 슬퍼하였다”고 기록했다.
 
전란으로 백성을 곤궁하게 만든 임금이나, 틀린 보고로 판단을 흐리게 한 관리에게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란이 벌어지면 싸워야 할 상대는 내부가 아니라 바깥에 있다. 무역전쟁이나 경제보복도 ‘총성 없는 전쟁’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싸워 이기는 게 우선이다. 책임을 묻는 건 나중에도 충분하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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