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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한·일···"文은 대의 외쳤고, 아베는 계약서 따졌다"

중앙일보 2019.07.11 16:33
 “(징용 문제와 관련한) 중재요구, (수출 규제 등) 제재를 철회하라고 일방적으로 말을 하고 있지만, 그 전제가 되는 얘기는 한마디도 문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적이 없다.”(9일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
최근 쏟아진 일본 정치인들의 발언 중 비교적 속내가 솔직히 드러난 한마디다. 이번 수출 규제 조치의 원인이 된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성의를 보이라는 압박이다. 정권의 2인자이자 아베 정권의 대주주인 아소 재무상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대신해 주문한 것일 수도 있다.  

아베 "징용은 역사 문제 아니다" 주장
文 "징용은 불행한 역사가 만든 것" 강조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기업인들과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했다”고만 했을 뿐 ‘징용’을 거론하지 않았다. 도쿄에 머물고 있는 학계 인사는 “문 대통령의 이런 태도엔 ‘징용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성의 없는 대응이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일본식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다짐이 깔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은 “수출 규제가 싫으면 징용문제부터 손을 쓰라”고 하고 있고, 한국은 “징용과 무관하게 부당한 수출 규제 조치부터 철폐하라”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모양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겸 재무상[EPA=연합뉴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겸 재무상[EPA=연합뉴스]

법과 약속 따지는 메뉴얼 사회 日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 전문가들은 “두 정상 간, 넓게는 양국 사회 간 본질적인 인식차가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아베 총리는 지난 3일 한 토론회에서 “징용 문제는 역사문제가 아니다. 국제법상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65년 청구권 협정)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위안부 합의든, 징용이든 아베 총리는 ‘역사’가 아닌 ‘국제법’으로 바라본다. 이는 아베 총리만의 인식이 아니다. 평소엔 한국에 유화적인 일본 외무성의 고위 관료들도 사석에선 “그런데 한국 헌법엔 국제법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 없느냐”,“국제법에 대한 인식이 어떠냐”며 비꼬듯 말하는 경우가 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내외신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내외신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반면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징용 문제의 역사성을 강조한다. 문 대통령이 징용 문제에 대한 생각을 가장 자세히 밝힌 건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 때다. “한ㆍ일기본협정을체결했지만 그것으로 다 해결되지 않았다라고 여기는 문제들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가 만들어낸 문제들이 아니다. 과거에 불행했던 오랜 역사 때문에 만들어지고 있는 문제다. 일본 정부가 그에 대해 조금 더 겸허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이득 얻으려 대의명분 포기 불가 韓 
한국 사회에는 문 대통령 생각처럼 일본이 양국 관계 개선의 대전제인 과거사 반성을 거부하면서 한국을 상대로 ‘계약 위반’을 주장하는 자체가 허위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래서 계약서를 쓰면 그 조문에 충실해서 한치도 벗어나선 안 된다는 ‘매뉴얼 사회’인 일본과, 타협해서 작은 이득을 챙기기보다는 먼저 옳은 뜻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대의명분 사회’ 한국이 강제징용 문제를 놓고 서로 다가서지 못한 채 계속 대치하는 모양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원칙'을 강조하는 데 일본은 실물 계약서 대로 하라는 원칙인 반면 한국적 정서는 당장 도움이 된다고 해서 뜻을 버릴 수는 없다는 원칙이다.    
 
2011년 12월 교토에서 열린 정상 만찬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노다 요시히코 일본총리와 환담하고 있다.[중앙포토]

2011년 12월 교토에서 열린 정상 만찬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노다 요시히코 일본총리와 환담하고 있다.[중앙포토]

이같은 ‘인식의 평행선’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11년 12월 교토(京都)에서 열렸던 한ㆍ일 정상회담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MB)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총리 사이에 벌어진 ‘위안부 격론’ 때다. MB가“위안부는 법 이전에 국민 정서ㆍ감정의 문제”라고 하자 노다는 “우리 정부의 법적 입장을 알지 않느냐”고 맞섰다. 회담 뒤 서울로 돌아온 MB는 “변호사처럼 계속 ‘법, 법’만 말하더라”고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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