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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피기스 감독을 만나고 김칫국을 마시다

중앙선데이 2019.07.11 16:11
아침에 일어나 원고를 쓰는 게 백만 년 만의 일처럼 느껴진다. 요즘 들어 그만큼 글을 쓰지 않는다는 얘기이며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그건 그렇기도 하고 꼭 그렇지는 않은 얘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지금 박스 오피스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알라딘> <토이 스토리> <스파이더 맨 : 파 프롬 홈>은 보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미안하지는 않다. 어쨌든 그러니 요즘 영화를 죄다 보지 않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오동진의 라스트 필름 1. '체 게바라'와 '코뮌'
(오동진 영화 평론가의 영화 에세이)

영화 '체 게바라 2부 게릴라'

영화 '체 게바라 2부 게릴라'

하지만 스티븐 소더버그의 <체 게바라Ⅰ,Ⅱ>같은 영화와 영국 피터 왓킨스 감독이 1997년에 만든 전설과 불멸의 영화 <코뮌>같은 영화는 봤다. 앞의 것은 4시간이 넘고 뒤에 것은 3시간 28분짜리다. 원래 <코뮌>은 5시간 반짜리 BBC 방송물을 극장용으로 바꿀 때 시간을 줄인 것이라 하니 저것도 짧은 셈이다. 
 
그런데 두 작품을 다 보고 나니 몇 년 전 새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 스미스>를 다 읽고 책을 덮을 때의 느낌이 났다. 그 책은 730쪽 정도 되는데, 그걸 거의 한 번에 독파하고 나니 눈이 밝아지고 더 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문화적 성취감이랄까 그런 것이 확 살아 났었다. 나이를 먹으면 두꺼운 책을 보기가 어려워지듯, 긴 영화 그것도 일종의 작가 영화나 아트 영화를 보기란 여간해선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체 게바라> 1,2부는 쿠바 여행을 네 번이나 다녀온 나로서는 소회가 남다른 작품이었다. 산타 클라라에 있는 체 게바라의 거대한 동상이 머리 속에서 내내 떠나지를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산타 클라라의 철로 역 전투는 쿠바 혁명의 피날레를 기록했던 곳이다. 고작 20여 명의 게릴라들이 시민의 도움을 받아 장갑차를 앞세운 바티스타 정부군을 궤멸시킨 곳이다. 그 격전의 과정을 영화는 비교적 잘 묘사해 내고 있는데 디테일이 꽤 잘 살아 있다. 예를 들어 체 게바라 동상은 게바라가 오른손 붕대목을 한 상태에서 왼손으로 소총을 들고 진군하는 형상인데, 영화에서도 그 부상 과정이 그려진다. 
산타 클라라에서의 전투는 1부 거의 끝 장면이다. 이쯤 됐을 때 베네치오 델 토로와 체 게바라와의 싱크로율은 거의 100%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주인공이 주인공 역에 완벽하게 동화돼 가듯,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게바라와 쿠바 혁명에 깊숙히 들어가게 되는 자신들을 느끼게 된다.

영화 '체 게바라 2부 게릴라'

영화 '체 게바라 2부 게릴라'

 
 
영화 '체 게바라 2부 게릴라'

영화 '체 게바라 2부 게릴라'

<체 게바라>는 1부보다 2부가 더 강렬하다.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은 척 한다. 아니 스스로 읽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의외로 안 읽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체 게바라와 쿠바 혁명에 대해서도 그렇다. 알고 있는 척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게바라에 대해서도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 정도 보고 혁명아(革命兒)의 이미지 정도로만 간파하고 있을 뿐이다. <체 게바라 2부 : 게릴라>는 그가 왜 볼리비아로 갔는지(아프리카 콩고를 거쳐 간 부분은 누락돼 있지만) 거기서 뭘 했는지,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무엇인지, 무엇보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런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역사 책을 병행하면 금상첨화다. 알면 잘 보인다. 이 영화를 두고 재미가 없다는 둥, 어렵다는 둥 하면 스스로의 세계사적 인식이 그만큼 투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 밖에 되지 않는다. 좀 읽고 보는 게 좋다. 그런데 일상이 너무들 바쁘다. 강요할 일이 아니다. 그냥 영화라도 한번 독파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 '체 게바라 1부 아르헨티나'

영화 '체 게바라 1부 아르헨티나'

 
<코뮌>은 나 역시 난생 처음 본 작품이다. 그것도 이번에 했던 <2019 레지스탕스 영화제> 상영작으로 트는 과정에서 본 것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내게도 사실은 안 읽은 <죄와 벌> 꼴이 됐을 법한 영화였을 것이다. <코뮌>은 어마어마한 영화다. 영화를 이렇게도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영화 인생 30년만에 새로 깨달았다고 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일일까. 한편으로 보면 영화의 세계가 진실로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 준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코뮌>은 1871년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파리 시내에 결성됐던 해방 자치구를 가리키고 그 안에서 벌어진 민중들의 투쟁을 그린다. 프랑스 대혁명은, 잘 알다시피(이것도 <죄와 벌>일까?), 1789년 시작돼 1848년 일단락된 세계사적 사건이다. 이후 나폴레옹 3세가 권력을 잡고 총통에서 다시 황제에 올라 왕정이 복구되는 상황이 생기지만, 이것 역시 파리 코뮌 과정에서 무너지게 된다. 당시의 프랑스=파리 코뮌의 민중들은 몇 가지 다층적인 모순에 접하게 되는데, 밖으로는 프로이센과 전쟁을 해야 하고 안으로는 왕당파와 공화파와의 투쟁이 격화되며 공화파 안에서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와의 계급투쟁이 확산되던 때였다. 군사 조직으로 무장화 되지 못했던 민중들은 결국 구 체제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티에르 등 정부군에 의해 수만 명이 학살되는 참극으로 끝을 맺는다. 파리 코뮌의 역사적 사례는 결국 러시아 혁명을 이끌었던 레닌과 트로츠키에게 영감을 줘, 이른바 ‘약한 고리 이론’을 만들어 내게 했고 소비에트를 어떻게 무장화 시켜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게 하는가 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했다. 꼭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고 그런 식이었다는 얘기다.  
 
 
영화 '코뮌'

영화 '코뮌'

이 영화가 놀라운 것은 그 고담준론의 사회과학 논거들이 전혀 지겹지도, 전혀 어렵지도 않게 일관되게 전개된다는 것이며 무엇보다 모든 장면을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장중한 느낌이 그 어떤 스텍터클 전쟁 액션 영화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를 두고 ‘필설(筆舌)로 형용(形容)키 어렵다’는 표현을 쓰는 법이다. 내 가벼운 손 끝과 혀 따위가 어떻게 피터 왓킨스의 위업을 재단할 수 있겠는가. 그 입 다물라,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한 일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코뮌> 상영이 끝나고 마이크 피기스 감독과 GV를 했다. 피기스 정도의 필설이면 이 영화에 대한 형용이 어느 정도 허락된다. 그의 강연같은 GV가 기억에 남는다. 근데 요즘 마이크 피기스는 한국에 자주 온다. 거의 한국에 사는 듯 할 정도다. 한국에서 영화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만들 새로운 영화에 도움 주신 분들로 내 이름이 나오게 될까.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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