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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 조세형, 징역 3년 구형에 "군대 갈 아들 생각하면 마음 아파" 호소

중앙일보 2019.07.11 12:29
2005년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경찰서에서 절도혐의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조세형씨. [중앙포토]

2005년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경찰서에서 절도혐의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조세형씨. [중앙포토]

1970~80년대 사회 고위층의 집을 털어 ‘대도(大盜)’라는 별명이 붙었던 조세형(81)씨에게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조씨는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
 
11일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정찬근)에서 열린 조씨의 첫 재판에서는 그의 추가 범죄 사실이 드러났다. 당초 조씨는 지난달 1일 서울 광진구 한 다세대주택 1층에 침입해 몇만 원 수준의 금품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조씨는 조사를 받으면서 스스로 5건의 추가 범죄 사실을 자백했다고 한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6번에 걸쳐 총 6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치거나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조씨는 유리창 방범창을 뜯어낸 후 빈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미리 준비한 가방에 옷을 준비해 도주 후 갈아입는 등 치밀함도 보였다.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을 주로 노렸다는 조씨는 주차되어 있던 자동차 블랙박스에 담을 넘어오는 모습이 포착되며 덜미를 잡혔다.  
 
검찰은 “상습 절도 전력이 있고 누범 기간 중 재범을 저질렀다”며 조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조씨의 변호인은 생활고로 인한 범죄임을 강조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변호인은 “최초 경찰에 신고된 건으로 체포된 이후 조씨가 자신의 범행을 깊이 반성했기에 스스로 나머지 5건의 여죄를 밝혔다”며 “기초생활수급비와 나라에서 나오는 돈으로 여관 주거비 50만원을 내고 나면 겨우 14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80세 고령에 어려운 생활을 이기지 못하고 범행을 저질렀다”며 “처벌 달게 받고 나가 성실하게 살겠다고 맹세한다”고 덧붙였다.  
 
조씨 역시 자신의 어려웠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조씨는 “부모님이 생활고 때문에 고아원에 맡긴 후 4살부터 혼자 살아왔다”며 “고아원을 전전하며 비행 청소년이 되어 배가 고파 두부 한 모 훔쳐 먹어 소년원을 드나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소년원에서 범죄 기술을 배우며 “내가 살아갈 유일한 수단은 도둑질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는 게 조씨의 말이다.  
 
조씨는 자신이 ‘대도’로 불리게 된 계기를 군사정권의 부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72년 서모씨의 집에 들어가 7200만원을 훔친 사건으로 큰 화제가 됐다”며 “사실 22억원 정도를 갖고 나왔는데 서씨가 경찰에 압력을 넣어 훔친 금액을 줄였다”고 말했다. 이어 “서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한 후배라더라. 군사정부에 반감을 가진 언론이 정권의 부패를 드러내기 위해 나를 의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조씨는 “징역만 총 40년을 살았다.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저의 범죄 인생이 처참하다”며 “40년 옥살이했지만 이제 곧 군대 가는 아들을 생각하면 징역이 너무나 두렵다”고 말하다 감정이 격해진 듯 울먹였다. 그는 “더는 물리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할 것 같다”며 “범죄인생 마침표에 판사님의 온정을 바란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조씨는 1970~80년대 사회 고위층의 집을 자주 털어 ‘대도’ ‘의적’ 등 별명을 얻은 상습절도범이다. 1982년 구속돼 15년 수감 생활을 한 뒤 출소와 재수감을 반복했다. 조씨가 이번 재판에서 또다시 실형을 선고받으면 출소 1년도 안 돼 다시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된다. 선고 공판은 다음 달 22일에 열린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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