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학부모 "자사고 폐지되면 강남行"…교육전문가에 물어보니

중앙일보 2019.07.11 09:47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 8곳을 지정취소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중앙포토]

자율형사립고 폐지를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 8곳을 지정취소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중앙포토]

"아이를 신일고에 보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자사고 취소됐네요. 강북에는 면학 분위기 갖춘 학교가 드문데, 결국 빚내서 강남 가란 얘기네요."
서울시교육청이 자율형사립고 8곳의 자사고 지위를 취소한다고 발표하자, 해당 학교에 진학을 준비하던 중3 학부모가 보인 반응이다. 이번에 지정 취소된 자사고는 경희·배재·세화·숭문·신일·중앙·이대부고·한대부고다.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부분 강북에 있는 자사고가 취소됐다"면서 "면학 분위기, 대학진학 실적을 고려하면 주변 일반고에 보낼 엄두가 안난다. 강남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같은 학부모의 반응에 대해 일각에서는 "자사고가 폐지된다고 학교가 문 닫는 것도 아닌데, 이사까지 가겠다는 반응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바뀌어도 어차피 같은 학교인데, '강남행' 운운하는 것은 자사고 프리미엄을 누리려는 학부모들의 특권의식"이라고 비판한다. 둘 중 누구 말이 옳을까. 대학교수·입시전문가·자사고 교장 등에게 물었다.
 

자사고→일반고 전환되면 전혀 다른 학교 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전혀 다른 학교로 바뀌는 것"이라며 "같은 학교가 간판만 바꿔 단 거로 착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자사고는 일반고와 달리 학생선발권과 교육과정 편성·운영권을 갖고 있다. 학교 구성원이 합의하면, 과학 수업과 실험 위주로 교육과정을 편성해 '과학고형'으로 운영할 수도 있고, 외국어나 외국 문화에 집중해 '국제고형'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신동원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전 휘문고 교장)는 "자사고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그 학교의 특색있는 교육과정에 동의한 상태고, 학교는 교육과정의 취지에 부합한 학생을 선발해 시너지 효과를 내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고로 전환되면 무작위로 학생들이 배정되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반발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공통 교육과정에 준한 평이한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서울에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8곳이 무더기로 지정 취소될 상황에 놓이면서 강남·서초·양천구 등 이른바 '교육 특구'의 지위가 더 공고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서울에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8곳이 무더기로 지정 취소될 상황에 놓이면서 강남·서초·양천구 등 이른바 '교육 특구'의 지위가 더 공고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강남 일반고, 타 지역 학교보다 입시 유리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지난해 서울대 합격생을 많이 배출한 서울지역 일반고를 조사한 결과, 1~5위 가운데 4곳이 강남 일반고였다. 1위는 24명을 합격시킨 강서고였는데, 이 학교는 강남구와 함께 교육특구로 꼽히는 양천구(목동)에 위치하고 있다. 단대부고(19명 합격), 숙명여고(17), 경기고(16), 서울고(14) 모두 강남구에 있다.
 
강남 일반고는 수시전형보다는 정시전형에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과정이 수능 대비에 맞춰졌고 인근에 학원가 등 사교육 인프라도 갖췄다. 기존 자사고는 특색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수시전형을 주로 공략했다.  
 
수시전형은 내신성적이나 동아리 등 비교과 활동을 기재한 학생부를 평가해 합격생을 선발한다. 정시전형은 수능 성적이 기준이다.  
 
올해 대학입시에서 신입생의 78%를 수시전형으로 뽑는다. 정시로는 22%를 선발한다. 2022학년도가 되면 정시 비율이 30%로 늘고 수시는 다소 축소된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자사고가 폐지와 정시 확대가 맞물리면 정시 대비에 유리한 강남 일반고로 우수 학생이 더욱 몰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사고 등의 폐지 정책으로 서울 강남권 아파트가 품귀를 빚으며 매매가가 급등하고 있다. 사진은 14일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 [연합뉴스]

자사고 등의 폐지 정책으로 서울 강남권 아파트가 품귀를 빚으며 매매가가 급등하고 있다. 사진은 14일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 [연합뉴스]

고교 내신 절대평가, 고교학점제…강남 쏠림 부추겨
현 정부가 추구하는 고교 교육 혁신의 두 축 가운데 하나가 자사고·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고교 내신 절대평가에 기반한 고교 학점제 시행이다.  
 
송기창 교수는 "고교 학점제는 학생과 교사 숫자가 많은 규모가 큰 학교에서만 제대로 시행될 수 있다"면서 "지방 학교보다는 서울, 서울에서도 강남 학교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강명규 스터디홀릭 대표는 "내신 절대평가가 시행되면 강남 일반고의 유일한 단점으로 꼽히던 '지나친 내신 경쟁 부담'마저 사라진다"면서 "강남·서초의 일반고에 진학하기 위해 이사를 오거나 전학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