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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괴감이 가상의 남자 불렀다"…실직 60대는 왜 아내·딸 찔렀나

중앙일보 2019.07.11 05:00
60대 가장이 아내와 딸을 살해한 사건 현장. 위성욱 기자

60대 가장이 아내와 딸을 살해한 사건 현장. 위성욱 기자

지난 7일 경남 창원에서 60대 가장 A씨(60)가 아내(56)와 딸(29)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족 살인’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용하고 말수가 적었지만 수십년간 별 탈 없이 직장생활을 해왔고 겉으로는 평범한 가족의 가장이었던 그가 왜 실직 2개월 뒤 갑자기 살인마가 돼 자신이 사랑했던 가족을 무참히 살해했는지 의문이 커져서다.  
 

[단독] 안인득 맡았던 프로파일러가 본 60대 가장 살인
"직장 잃은 뒤 자괴감과 열등감이 환시와 환청으로 연결"
"환각속에서 자책이 배신과 분노감으로 바뀌어 살인으로"

경찰은 조현병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대신 그가 10여년 전에 우울증을 앓아왔고 그것이 실직 후 어떤 계기를 통해 재발하면서 환시와 환청 등 환각 상태로 발전해 범행에까지 이르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사건 발생 이틀 후에 경찰에 붙잡힌 뒤 굳게 입을 닫았다. 그의 입을 열게 한 것은 진주 방화·살인범 안인득을 담당했던 경남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 프로파일러 방원우(38) 경장이었다. 방 경장의 분석을 토대로 A씨의 심리 상태를 알아봤다.   
 
사건이 발생한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A씨 집 주변 이웃들은 그를 말수가 적고 조용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한 이웃은 “딸이 좀 아팠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큰 문제는 없었던 가족이었다”며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 등의 공장에서 수십년간 생산직 직원으로 일하며 많지는 않았지만, 월급을 꼬박꼬박 벌어오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다 지난 5월 직장을 잃었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주변 사람과 교류를 자주 하지 않았던 A씨는 직장을 잃은 뒤 사실상 집에서만 생활했다. 집에는 딸이 함께 있었지만, 감정 기복이 심한 ‘경계성 성격장애’를 앓고 있어 A씨와 다툼이 잦았다.  
경남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과학수사계 방원우 경장(프로파일러)이 지난 4월18일 오후 경남 진주경찰서 4층 대강당에서 안인득 방화·살해 사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남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과학수사계 방원우 경장(프로파일러)이 지난 4월18일 오후 경남 진주경찰서 4층 대강당에서 안인득 방화·살해 사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A씨와 달리 활달한 성격이었던 부인이 판매직 일을 하면서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부인은 A씨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거나 취미생활을 하라는 취지로 자주 조언을 했지만, 오히려 이것을 부담으로 받아들였다. 
 
방 경장은 “A씨는 직장을 잃은 뒤 아내나 자식들과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으로써의 역할을 못 한다는 자괴감과 경제활동을 못 하는 열등감 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그로 인해 아내가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지면서 우울증이 심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A씨는 잠을 자지 못하거나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증상 등이 반복되면서 사건 발생 15일 전쯤에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 우울증 관련 치료를 받고 약도 받아와 복용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증상이 크게 호전되지는 않았고 오히려 환시와 환청 등 환각증세가 나타났다.
 
A씨는 처음에는 ‘외부활동을 하라는 부인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거나 딸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못나서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이 자기에게 오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향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생각했으나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이 과정에 어떤 남성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 아내와 딸과 관계를 하는 환시와 환청에 시달린다. 자신이 못나서 아내와 딸의 관심과 사랑이 다른 곳으로 향할 것이라는 생각이 ‘어떤 남성’을 만들어내고 아내와 딸이 그 남성과 관계하는 환청까지 들리게 된 것이다. 
 
방 경장은 “A씨는 내가 못났고 내가 무시당해도 될 사람이라는 자괴감과 자책감이, 그래도 어떻게 내가 있는데 아내와 딸이 다른 남성을 끌어들여 관계할 수 있느냐는 배신감과 분노로 바뀌면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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