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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선] 무지 또는 무시 : 한국의 일본 대응 매뉴얼

중앙일보 2019.07.11 00:20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세종대왕은 1450년(세종 32년) 2월 14일에 동부승지 정이한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붕어(崩御) 3일 전이었다. 결국 유언이 됐다. ‘왜(倭·일본)와 야인(野人·여진족)을 대하는 것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평안에 빠져 있다가 해이해지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매일 정신을 가다듬어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세종실록』)
 

세종대왕 유언이 “왜를 경계하라”
『징비록』은 침략 징후 경시 반성
계속 당하고도 우린 일본을 몰라

조선은 일본(임진왜란)과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병자호란)에 의해 강토가 유린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훌륭한 지도자의 안목은 역시 다르다.
 
그 뒤의 임금들은 과연 세종의 유훈을 따랐을까. 그렇지 않았다. 조선과 일본은 통신사(조선 측)와 국왕사(일본 측)라는 외교 사절 방문을 주고받았는데, 통신사 파견은 1479년에 명맥이 끊겼다. 일본의 동향을 파악하고, 인적 정보망을 구축할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조선은 100년 넘게 사절단을 보내지 않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압박에 마지못해 임진왜란 발발 2년 전인 1590년에 통신사 파견을 재개했다. 그렇게 일본에는 눈 감고 귀 닫고, 명나라만 바라보며 지냈다.
 
1590년에 보낸 통신사가 다음 해에 귀국하자 일본이 쳐들어올 것이다, 아니다를 놓고 고관대작들이 싸웠다. 널리 알려진 대로 파견단 최고위직 2인 황윤길과 김성일의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다. 류성룡은 『징비록』에 김성일에게 왜 침략 징후가 없다고 보고했느냐고 물었더니 “백성들이 동요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고 적었다. 당시 관료의 수준이 그랬다.
 
왜적 침입의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1586년과 이듬해에 일본의 전선(戰船)으로 추정되는 배가 남해안에서 조선 수군과 싸움을 벌였다. 배에 타고 있던 이들의 모습이 통상의 왜구와는 달랐다고 조정에 보고됐다. 정탐으로 추정되는 행위였다. 1591년에는 명나라에서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정보를 조선에 전했다. 『징비록』에 따르면 이런 전조도 있었다. ‘부산 초량의 왜관에는 항시 왜인들 10여 명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둘 일본으로 돌아가더니 임진년 봄에 이르러 왜관에서 왜인이 모두 사라졌다.’ 임진왜란은 몰라서 당한 변고가 아니라, 알면서도 아니기를 바라며 손 놓고 있다가 당한 일이었다.
 
우리는 일본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 역사 교과서에는 한반도에서 문물이 전수됐다는 것과 왜구가 호시탐탐 노략질을 했다는 것이 강조된다. ‘식민사관’ 청산의 역작용이다. 가르치고 배우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백강(白江) 전쟁’이다. 우리는 그렇게 표기하고, 중국은 백강구(白江口) 전투, 일본은 백촌강(白村江) 전투라고 한다. 한국학 전문가인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가 “왜 그토록 한국에서 무시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역사의 한 대목이다. 예전에는 교과서에 실리지도 않았는데, 요즘엔 한 문장 정도로 등장한다.
 
역사책과 다큐멘터리 등으로 자습한 내용에 따르면 663년 일본은 전선 800~1000척에 병사를 실어 백강(금강 또는 동진강) 하구로 보냈다. 파병 병사 수에 대한 기록은 적게는 2만7000, 많게는 4만2000이다. 나당(신라·당) 연합군과 대치 중인 백제 잔존 세력을 돕기 위해 일본 야마토 조정이 나선 것이었다. 당시 백제와 일본의 관계, 나아가 동아시아 세력 판도를 가늠하게 하는 장면인데도 전쟁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국민이 많다.
 
7세기 일본은 수만 명의 군사를 일거에 서해로 원정 보내 당시 최강대국 당과 일전을 치를 정도의 나라였다(처참하게 패배하기는 했다). 고대 일본은 우리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담고 있던 ‘허접한 섬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 전쟁은 말해준다.
 
지난 3월 일본계 대부업체 ‘산와머니’가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한해 1000억원 이상을 배당금으로 일본에 보내던 회사가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징비록에 기록된 ‘부산 왜인 실종’ 사태와 비슷하다. 시장에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뭔가 심각한 도발을 해 양국 관계가 극도로 악화될 것을 이 회사가 감지한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즈음에 일본 전직 고위 관료가 한국 정부 측에 일본 내각의 강경한 분위기를 슬쩍 알려주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정부는 기민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이 ‘수출 규제’라는 카드를 꺼내 든 뒤 정부 관리는 대기업 간부들을 모아 놓고 “일본에 영업망과 지사가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정부에는 눈과 귀가 없었다는 고백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일본을 잘 모른다. 그러면서 큰소리만 친다. 누군가가 다시 징비록을 써야 할 판인데, 그럴 인물이 보이지도 않는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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