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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6그램 야망'이 보좌관의 전부는 아니다

중앙일보 2019.07.11 00:03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승현 논설위원이 간다] 밖에선 갑, 안에선 을 … 국회보좌관의 희망과 절망, 야망
패스트트랙으로 충돌이 벌어진 지난 4월 국회의원과 보좌진, 당직자가 정치개혁 특위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국회 제3회의실 앞 복도에서 회의를 막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패스트트랙으로 충돌이 벌어진 지난 4월 국회의원과 보좌진, 당직자가 정치개혁 특위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국회 제3회의실 앞 복도에서 회의를 막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환요? 그런 얘기 하면 욕먹습니다. 국민은 우리도 특권층으로 보는데….”
 
국회의원 보좌관의 생활을 캐물으니 수비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40대 후반 4급 보좌관의 몸에 밴 조심성이다. 그는 “의원의 참모이자 비서, 홍보맨이자 위기관리인, 민원해결사로 살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반응이 나온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양면성이 강한 직업이다. 주연의 곁에서 조연으로 서 있다가 때론 더 존재감을 발휘하기도 한다. 국정감사 기간에 정부 부처 공무원에겐 ‘갑 중의 갑’이다. 기업 총수를 국감장에 불러내는 작업을 주도하기도 한다. 반면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국회의원과 관계가 삐끗하면 설 자리가 없다. 해고되면 국민에게서 온 ‘힘의 원천’은 사라진다.
 
국회의원 한 명은 9명의 보좌진을 둔다. 보좌관이라는 명칭의 4급 상당의 별정직 국가공무원이 2명, 그 아래로 비서관(5급) 2명, 비서 4명(6·7·8·9급)과 인턴 1명이 있다. 약 2700명(의원정수 300X9명)의 보좌진이 국회의 모세혈관이자 센서의 역할을 한다. 최근 JTBC 드라마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삶이 관심을 받기도 했다.
  
갑과 을의 사이
 
보좌진이 목표로 하는 것 중 하나는 ‘그랜드슬램’이다. 모시는 의원이 제기한 이슈가 메이저 신문 1면과 주요방송 톱뉴스를 장식하는 일이다. 국정감사 시즌엔 정부와 기업 등이 감추고 싶어하는 약점을 캐묻고, 입증 자료를 만든다. 반대로 이렇다 할 실적이 없으면 바늘방석이다. 한 보좌관은 “의원과는 뉴스를 함께 안 보는 직업병이 있다”고 했다. 다른 의원실에서 한 건 했을 때 ‘우린 왜 저런 걸 못하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다. 한 비서관은 “코피를 쏟으며 일하다가 ‘무슨 영화를 누리려고 이러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고된 작업의 성과가 오로지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남게 되는 점도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다.
 
‘다음 선거’는 가장 중요한 미션이다.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도 그렇다. 최근 여야 보좌관들은 내년 총선 공천의 여론조사에 대비해 지역구의 당원을 모집하고 있다. “여의도에서는 허리가 꼿꼿하다가 지역구에 가까워질수록 90도로 숙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위해 민원을 듣고, 해결 방안을 찾아 법안으로 만들어 내는 것도 보좌진의 일이다. 상임위원회 회의, 국정감사, 예산 결산 심사, 인사청문회, 피감기관 업무 보고 등에서 의원의 질의서를 만들고 자료를 정리하는 일도 해야 한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뜸해지긴 했지만, 과거엔 지역구 호텔의 인사 청탁 등 상상을 초월하는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묵묵히 일만 하던 보좌진들 사이에서 최근 ‘을의 항변’이 늘고 있다. 내부고발 사이트에서 의원과 고참 보좌관의 은밀한 비리가 폭로되기도 하고, 지난달엔 국회 의원회관에 ‘커피는 여자가 타야 제맛입니까?’라는 포스터를 붙인 여성 보좌진 모임도 생겼다.
  
“해고는 미리 알려 주세요”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지난 5일 자유한국당 보좌진협의회(한보협) 회장에 당선된 이종태(41) 보좌관(송희경 의원실)은 ‘면직예고제’를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다. 한보협은 30년 전 보좌관들의 모임에서 시작해 지금은 보좌진 전체로 확대된 단체다. 면직예고제는 의원이 보좌진을 해고할 때, 30일 전에 서면으로 통지하는 게 골자다.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민보협) 회장인 조혜진 보좌관(서영교 의원실)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현재 보좌진은 의원이 ‘임용변경신청서’에 도장만 찍으면 바로 해고된다. 이종태 한보협 회장은 “예전처럼 갑자기 면직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보좌진의 권익과 위상을 높여 자부심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넘게 주장했는데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보좌진의 자부심이 낮은가.
“그렇진 않다. 각자의 신념과 의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다만, 인턴부터 보좌관까지 13년 경험을 해 보니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안정감이 커져야 전문성도 높아진다.”
 
어떤 방안이 있나.
“면직예고제 외에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보좌진의 재취업을 돕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직급별 맞춤형 취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당 대표에게 한보협 회장 출신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보좌진이 당과 의원에게 정치적 동반자로 인정받는 의미가 있다.”
 
패스트트랙 충돌로 고소당한 보좌진은 어떤 상황인가.
“6명이 고소·고발됐는데, 많이 불안해한다. 과거 민주당은 그런 상황을 훈장처럼 인정해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당에서 법률 지원 등 최대한의 도움을 주고 있다. 국회의원 조사가 시작되면 정치적 해법이 나오길 바란다. 일단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국회선진화법을 너무 가볍게 봤나.
“격한 몸싸움 경험이 없는 젊은 보좌진도 열정적으로 나섰다. 선거법 등을 태운 패스트트랙에 강한 문제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6g의 금배지
 
상당수 보좌관은 가슴 깊은 곳에 국회의원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 무게 6g의 금배지를 가슴에 다는 야망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해찬 의원), 유은혜 교육부총리(고 김근태 전 의원)도 보좌관 출신이다. 20대 국회엔 20여 명의 보좌진 출신 국회의원이 있다. 6%가 넘는 비율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우원식(임채정 전 의원), 조정식(제정구 전 의원), 이철희(김한길 전 의원), 기동민(이재정 전 의원), 윤후덕(김원길 전 의원), 이훈(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의원 등이, 자유한국당은 김태흠(김용환 전 의원), 김학용(이해구 전 의원), 이장우(이양희 전 의원), 이헌승(김무성 의원) 의원 등이 보좌진 출신이다.
 
이철희 의원은 “전문 영역인 정치의 프로세스와 룰을 익힌 경험은 의원이 되어서도 큰 도움이 된다”며 “국회의원 보좌진 경험은 곧 의회주의자의 소양을 쌓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실의 오상택(40) 비서관은 울산 울주군 출마를 결심하고 지역구로 내려갔다. 그는 “지역에선 서울에서 원내대표를 보좌하며 한 일은 잘 모른다.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데 부대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출마를 선언한 김성회 보좌관(손혜원 의원실)은 “보좌관의 역할을 마치고 ‘독립’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카카오톡 소통으로 저출산 등의 문제에 대한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는 프로젝트를 구현하고 당에 적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초까지 한국당 김용태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강명구 서울영등포갑 당협위원장도 영등포갑 지역구에 도전장을 던졌다.
  
전문성 키우는 게 중요
 
금배지 도전은 여러 조건이 충족됐을 때 가능한 길이다. 이를 위해 일부 보좌관은 장관 정책보좌관, 청와대 행정관, 공공기관 감사 등으로 자리로 옮길 기회를 찾는다. 이를 ‘신분 세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년 헌신했으니 10년 정도는 내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한 계단 더 올라갈 기회를 찾은 뒤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보좌관은 “‘언제 배지 다느냐’라는 질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그는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직업인으로서 지금의 역할에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언제 의원이 되느냐고 묻는 것은 일반 직장인에게 ‘언제 사장 되냐’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쉽게 할 질문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국회 안의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국가 발전에 역할을 하는 것도 금배지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비정규직 공무원’이라고 부르면서도 가능성과 야망을 놓지 않는 국회 보좌진들. 한 보좌관은 그런 다이내믹한 삶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잖아요. 예측대로 안 된다는 의미죠. 그 안에 사는 우리 삶이 예측하기 쉽겠습니까.”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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