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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병원가라”“운동해라” 보건소·의사 잔소리가 2400명 살렸다

중앙일보 2019.07.11 00:02 종합 20면 지면보기
10일 오전 경기도 광명시의 한 태권도장에서 고혈압·당뇨병 환자들이 최성원 관장(맨 왼쪽)의 지도를 받으며 기본 동작을 익히는 운동을 하고 있다. 보건소가 이들의 운동·식단·약 복용 등을 밀착 관리한다. 병원에 안 가면 즉각 진료 독촉 전화를 한다. [강정현 기자]

10일 오전 경기도 광명시의 한 태권도장에서 고혈압·당뇨병 환자들이 최성원 관장(맨 왼쪽)의 지도를 받으며 기본 동작을 익히는 운동을 하고 있다. 보건소가 이들의 운동·식단·약 복용 등을 밀착 관리한다. 병원에 안 가면 즉각 진료 독촉 전화를 한다. [강정현 기자]

10일 오전 11시 경기도 광명시 한양대 유신태권도장. 9명의 어르신이 원을 그리고 앉아서 최성원 관장의 지도를 받으며 스트레칭에 열중이다. 이어 까치발이나 뒤꿈치로 걷는다. 돌다리처럼 생긴 매트에 오르며 힘차게 기합을 넣는다. 최 관장이 술래가 돼 태권도의 주춤서기·모아서기를 응용한 동작을 하며 술래잡기를 한다. 이들은 고혈압·당뇨병 환자다. 광명시 보건소가 주관하는 무료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보건소가 고혈압·당뇨병 환자 ‘잔소리꾼’을 자처했다. 이 프로그램도 잔소리의 일부다. 가장 유익한 잔소리는 병원 보내기다. 약 처방 기록이 없으면 30일 후에 전화가 간다. “왜 약을 처방받지 않았느냐”고 따진다. 일부 환자는 “증세가 좋아져 먹지 않는다”고 엉뚱한 답을 한다. 보건소는 “병원 의사와 상의해서 결정하셔야 한다”고 안내한다. 약값에 월 1만~2만원 든다. 돈이 없다고 하는 환자에게는 “나중에 합병증이 생기면 돈이 훨씬 많이 든다”고 설득한다. 어떨 때는 환자를 모아 병원 근처 카페에서 ‘출장 잔소리’를 한다.
 
질병관리본부가 2009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고혈압·당뇨병 등록관리사업(이하 고당사업)이다. 광명시를 비롯해 서울 성동구·홍천·포항 등 19개 시·군·구 주민 12만여명이 참여한다. 동네의원과 연계해 진료와 환자 관리를 담당한다. 이 사업에 참여하면 65세 이상 노인은 진료비(1500원)가 면제다. 약값 2000원을 할인한다.
 
이성란(65·여·광명시)씨는 2005년 이유 없이 피곤해 서울 강남의 대학병원에 갔더니 당뇨병 진단을 받았고 이어 고혈압이 따라왔다.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서 7시에 대학병원에서 채혈하고, 10시에 ‘1분 진료’를 받고, 약을 한 보따리 받는 일을 반복했다. 너무 힘들었다. 거기서 교육을 받긴 했지만 와 닿지 않았다. 혈당 조절이 안 됐다. 집 근처 의원으로 옮겼고 광명시 고당사업에 참여했다. 대학병원과 차원이 달랐다. 당뇨병의 원인부터 식이요법, 운동요법까지 세세하게 교육받았고 실천했다. 환자 모임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면 실천이 더 잘 됐다. 보건소에서 1대1 지도했고, 식사일지를 써서 가져가면 체크했다. 밥 먹고 나서 떡 먹은 걸 집어냈다. 또 ‘밥 먹고 두 시간 후 사과 두 쪽, 포도 15~18알을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잔소리했다. 약 떨어지기 사흘 전이면 “병원 가시라”고 문자가 온다. 그랬더니 혈당이 뚝 떨어졌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씨는 “도토리묵 무침이나 감자는 달지 않아서 먹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도 탄수화물이 있어서 당이 올라간다. 이런 걸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보건소 가는 날이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집 근처 의원의 의사도 주기적으로 당뇨망막증 검사를 하고, 운동을 잘하는지 등을 체크하고 잔소리꾼을 자처한다.
 
고당 사업은 보건소와 의사가 잔소리꾼이 된다. 순천향대 의대 박윤형 교수팀이 지난해 전국 고당사업 참여자 12만6450명(등록 고당환자)과 조건이 비슷한 일반 고혈압·당뇨병 환자 12만6450명의 사망률 등을 비교했다. 환자별로 5년 후 변화를 추적했다.  
 
그랬더니 등록 고당환자가 2395명 덜 사망했다. 사망률로 치면 1.9% 포인트 낮았다. 뇌혈관질환이 생겨 입원한 사람도 417명 적었고, 심장병은 297명, 신장질환은 174명 적었다.
 
또 광명시 등록 고당환자와 다른 지역 두 곳의 고당환자를 비교했더니 광명 환자가 외래진료를 지속적으로 받는 비율이 1.39배에 달했다. 약 복용률은 1.03배(당뇨병)~1.08배(고혈압) 높았다. 지역 동네의원 이용률도 1.36배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는 의료쇼핑이 20% 적었다. 남양주시 한내과 한충민 원장은 “고당 사업 참여 환자는 사흘 전 보건소 문자를 받고 병원 오는 경우가 많다. 치료 지속성이 높다”며 “동네의원에도 인센티브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명시 왕내과의원 왕준광 원장은 “환자가 자주 오면서 고혈압·당뇨병뿐 아니라 피부과·안과 질환을 묻는다. 신뢰관계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원영 광명시 고당사업 등록교육센터장(중앙대 의대 교수)은 “노인은 경험이나 느낌에 의존해 병원에 안 가거나 약을 줄인다”며 “보건소에서 ‘메시지나 전화가 귀찮게 온다’면서도 병원으로 간다. 자식보다 낫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고당 사업에 연 2500억~3000억원이 들여 2000억~4000억원의 의료비를 절감한다”고 덧붙였다. 박윤형 교수는 “의사가 교육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진료시간에 쫓길뿐더러 환자 교육에 대한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 보건소의 고당사업 전문가의 노하우가 축적돼 있어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복지부 관계자는 “고당사업 참여자의 혈당 조절이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가 있어 다른 사업과 어떻게 통합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충민 원장은 “요즘은 30~64세에 만성질환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20,30대에 초기에 관리해야 한다”며 “65세 미만 환자 대상 사업이 없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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