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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미국을 흉내 내?" 일본 괘씸해 한국 편드는 중국

중앙일보 2019.07.10 14:13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한·일 충돌을 놓고 중국의 속내가 복잡하다. 동북아 전략 구도로 보면 일본의 한국 때리기가 중국으로선 나쁘지 않은데 정서적으론 일본이 못마땅하다. 중국 당국과 관영 매체 등이 이달 들어 보여준 모습을 종합하면 이렇다. 
중국 외교부의 겅솽 대변인은 9일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 평등하게 대하며 대화와 협상으로 관련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캡처]

중국 외교부의 겅솽 대변인은 9일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 평등하게 대하며 대화와 협상으로 관련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캡처]

중국의 속내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이 수출규제를 선언한 지난 1일부터 열흘 가까이 중국 정부의 입장과 언론의 보도, 학자의 견해, 네티즌 반응 등을 살폈다. 종합하면 중국의 입장은 한국에 기우는 모양새다. “미국을 배운 일본”을 못마땅하게 보는 기색이 강하다.

한·미·일 3국 공조에 악영향 주며 중국 이득
반도체 산업에서도 어부지리 얻을 가능성
그러나 무역전쟁속 미국 따라하기 괘씸
“역사 반성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 없다"

 

한국과 일본이 다투면 3자인 중국은 웃음짓는다는 게 일단 동북아 구도의 특성이다. 중국엔 어부지리(漁父之利)가 될 수 있어서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0일 이번 한·일 분쟁을 놓고 중국엔 외교적, 경제적으로 ‘굿 뉴스’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이 동북아 안보에서 가장 민감해 하는 구도는 한·미·일 3국이 안보 동맹을 맺어 마치 나토(NATO)가 유럽에서 러시아를 견제하듯 동북아에선 중국을 견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한·일 갈등으로 양국 관계의 악화는 물론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에도 영향을 주면 한·미·일 3국 공조에서 엇박자로 이어지고 이는 중국으로선 반가운 일이라는 취지다. 경제적으로도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타격을 받고 일본 역시 충격을 입으면 그 빈자리를 중국이 파고들 수 있어 호재다. 특히 중국은 ‘중국제조 2025’ 계획에 따라 반도체 자급률을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으로 한·일 갈등이 중국의 계획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측에선 한·일 충돌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중국엔 실리가 된다. 
 
 그러나 이는 중국 속내의 전체가 아닌 일부 만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 외교부 겅솽(耿爽) 대변인은 지난 9일 정례브리핑 때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중국은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중앙일보 질의에 대해 “관련 보도에 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중국은 세계 경제가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이 서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며 서로에게 이익을 줘 윈윈하는 기초 위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 환구시보는 1일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다루는 보도를 처음 내보낼 때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일본이 미국을 따라 배워 무역제재에 나설 줄은"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중국 환구망 캡처]

중국 환구시보는 1일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다루는 보도를 처음 내보낼 때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일본이 미국을 따라 배워 무역제재에 나설 줄은"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중국 환구망 캡처]

대화로 원만하게 풀라는 원론적 답변이다. 
하지만 여기엔 숨은 뜻도 담겨 있다. 겅솽 대변인은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를 걸면서 답변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내에서 이 표현은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 등 대중 보복 조치를 뜻한다. 겅 대변인이 이 말을 한·일 갈등에서 끄집어낸 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미국의 이른바 ‘패권적’ 행위와 연결시키는 묘한 답변이 된다. 겅 대변인이 “서로 평등하게 대하며(平等相待)”라고 한 것도 역시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요구하는 “평등한 대화”와 동일한 표현이다. 이때문에 겅 대변인이 이같은 표현을 담은 건 미국이 미·중 간 문제를 먼저 야기했듯이 이번 한·일 분쟁에서도 문제를 먼저 일으킨 건 일본이라는 시각이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당국자들이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이같은 속내를 그대로 노출했다. 지난 1일 한·일 갈등을 처음 보도하며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일본이 감히 미국을 따라 배워 무역제재에 나설 줄은(萬萬沒想到 日本也敢學着美國玩貿易制裁了)”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어 중국 영자지인 글로벌타임스는 8일 칼럼에서 일본을 비판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일본이 의장국으로 참여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환경을 만들자”는 약속을 했던 것에 대한 위반임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대하고 법원 판결을 존중하라고 했다. 공개적인 한국 편들기다. 글로벌타임스는한·일 갈등이 오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이 일본 내 반한 감정에 영합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중국 칭화대학교 국제관계학원의 옌쉐퉁 원장은 이번 한일 갈등을 일본의 한국에 대한 기술 견제 차원에서 분석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칭화대학교 국제관계학원의 옌쉐퉁 원장은 이번 한일 갈등을 일본의 한국에 대한 기술 견제 차원에서 분석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학계에선 한·일 갈등을 기술 전쟁의 시각에서 일본의 한국 견제로 분석하는 시각도 등장했다.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에 따르면 “현시대는 인터넷 시대, 디지털 경제 시대로 기술 혁신이 국가 실력의 주요 원천”이 된다. 미·중 무역전쟁은 쫓기는 자와 쫓는 자 간에 벌어지는 기술 전쟁이다. 한데 이런 현상이 일본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그 아래 국가에서도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 조치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의 니웨쥐(倪月菊) 연구원은 “일본의 조치가 반드시 한국의 반격을 부를 것”이라며 “한·일 관계의 긴장 상황이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상태”에 빠져 글로벌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네티즌 반응은 다양하다. 한·일을 싸잡아 비난하는 말도 나오지만 “만일 일본이 역사적인 반성을 제대로 했다면 오늘날 이런 일이 있을까”하는 일본의 역사적 반성 부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 보인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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