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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있고 싶어질 것 같아 서둘러 떠난 도시, 코임브라

중앙일보 2019.07.10 11: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25)
코임브라 대학교 구대학의 캠퍼스. 몬데구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 코임브라 궁전이 대학으로 변신한 것이다. 코임브라 대학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에서도 세 번째로 오래된 인문학의 중심 역할을 했다. [사진 박재희]

코임브라 대학교 구대학의 캠퍼스. 몬데구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 코임브라 궁전이 대학으로 변신한 것이다. 코임브라 대학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에서도 세 번째로 오래된 인문학의 중심 역할을 했다. [사진 박재희]

 
몬데구강을 건너 코임브라에 들어서니 와락 젊음이 느껴졌다.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성큼성큼 걷는 학생들의 발걸음에 맞춰 마침 시계탑의 종소리가 울렸다.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를 집필하며 영감을 받았다는 포르투갈 대학생들이 입은 검은 망토 이야기는 알려진 대로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교복이 된 것이다. 지나온 호젓한 시골길이 그렇게 좋았으면서도 모처럼 싱그러운 젊음을 만나보니 거부할 수 없이 매혹적이다.
 
“요아니나 도서관만 둘러보고 가려고 했는데 코임브라 파두를 놓치면 안 된대.”
일정이 촉박하다며 저녁 기차로 포르투로 가겠다던 줄리도 파두 공연을 보기 위해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누구나 코임브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요아니나 도서관과 파두, 그 두 가지를 꼽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1700년대에 지어진 호화로움의 극치 요아니나 도서관에는 박쥐가 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철학, 법학, 신학 등 라틴어 고서 3만여권이 있는 도서관에서 그 책을 보전하기 위해 책벌레를 먹이로 하는 박쥐를 키운다니 상상만으로도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을 시작한 기분이다.
 
“코임브라 대학은 포르투갈에서 제일 오래된 대학이야. 유럽에서도 세 번째로 오래됐고. 원래는 코임브라 궁전이었는데 대학으로 변신시킨 거래.”
줄리와 나는 코임브라 구 대학 영역 입장권을 사서 관람하기로 했다. ‘철의 문’을 통과하면 요아니나 도서관과 법학대가 있는 구 대학 캠퍼스가 나타난다.
 
왼쪽에 보이는 시계탑으로 올라가면 코임브라 시가를 360도로 모두 내려다볼 수 있어 인기 있는 관람 코스로 꼽힌다(위). 코임브라의 구시가의 모습(아래). 중세의 수도원과 성당, 미로 같은 골목을 끼고 붉은 지붕과 알록달록한 건물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도심이다. [사진 박재희]

왼쪽에 보이는 시계탑으로 올라가면 코임브라 시가를 360도로 모두 내려다볼 수 있어 인기 있는 관람 코스로 꼽힌다(위). 코임브라의 구시가의 모습(아래). 중세의 수도원과 성당, 미로 같은 골목을 끼고 붉은 지붕과 알록달록한 건물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도심이다. [사진 박재희]

 
펼쳐진 광장 가운데 코임브라 대학을 이곳으로 이전한 주앙 3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헨리 8세가 왜 여기 있나 했다’는 줄리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과연 솟아오른 배 모양이 닮은 듯하다. 당시 왕의 ‘위풍당당’ 이미지를 완성하는 것은 비만형 복부였음이 틀림없다.
 
시계탑으로 올라가면 구시가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강물은 수백 년의 시간을 지켜보며 흐른다. 천 년 전 중세의 수도원부터 정원과 성당, 미로 같은 골목을 덮은 붉은 지붕 건물이 만든 풍경은 아무리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코임브라의 옥탑에서 피크닉 하는 기분으로 계속 있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시간 간격을 두고 20명씩 입장을 제한하는 도서관 관람을 위해 내려왔다. 광장 안뜰을 마주한 도서관은 지상층인데 들어가는 입구는 뒤쪽 계단으로 지하 2층까지 내려가야 있다.
 
요아나니 도서관 장엄의 홀이라 불리는 중심부 촬영은 허락되지 않는다. 대리석과 금, 화려한 천장화로 장식한 도서관 지하 1층에는 고서 복원과 보수를 위한 공간이 있다. 수 세기에 걸쳐 보관된 고서를 볼 수 있다. [사진 박재희]

요아나니 도서관 장엄의 홀이라 불리는 중심부 촬영은 허락되지 않는다. 대리석과 금, 화려한 천장화로 장식한 도서관 지하 1층에는 고서 복원과 보수를 위한 공간이 있다. 수 세기에 걸쳐 보관된 고서를 볼 수 있다. [사진 박재희]

 
“지하 2층은 학생 감옥이었대. 끔찍하지 않아? 규율을 어겼다고 학생을 감옥에 가두다니!”
으스스했다. 엄격한 수도원으로서 성직자를 길러내는 역할도 담당했던 중세 시대 대학의 학생 감옥을 지나 지하 1층으로 올라가면 오래된 책을 보수하고 복원하는 곳이다.
 
고서 복원사들이 수백 년 시간을 지나온 책에 다시 생명을 주고 치료하는 병원과 같은 곳이다. 고서 복원의 진풍경을 감상하고 요아니나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입장을 기다렸다. 스무 명씩 순번대로 출입이 관리하는 구역이다.
 
‘책을 모시기 위해 보물로 지은 궁전.’ 도서관에 들어섰을 때 받은 느낌은 딱 그랬다. 화려한 대리석과 금으로 아낌없이 치장한 실내와 천장을 장식한 화려하고 정교한 프레스코화. 극도의 호화로운 보물로 받들고 있는 진짜 보물은 다름 아닌 책이다. 그 시대 책은 권력이자 힘이며 가장 귀한 보물이었다. 은은하게 책의 향기가 감돌고 적절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도서관에서는 고요한 신비에 휩싸이게 된다.
 
관람객 대열에서 떨어졌을 때였는데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어리둥절한 우리에게 책장 구석을 보라며 가리켰다. 야행성 박쥐들이 낮에 몸을 숨기는 곳이라고 했다. 줄리는 얼핏 박쥐를 봤다는데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어떤 궁전 못지않게 호화롭던 ‘장엄의 홀’ 요아니나 도서관을 나와 학생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망가 정원, 산타크루즈 대성당, 구 대성당을 차례로 돌아보면서 코임브라의 하루를 빼곡하게 채웠다. 대성당은 원래 아랍인들이 지은 요새였다고 한다. 포르투갈을 건국한 엔리케 왕이 12세기에 성당으로 재건한 구 대성당은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다.

 
코임브라는 언덕을 오르내리는 가파른 골목길이 많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 코임브라 대학은 가장 높은 언덕 지대에 있다. [사진 박재희]

코임브라는 언덕을 오르내리는 가파른 골목길이 많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 코임브라 대학은 가장 높은 언덕 지대에 있다. [사진 박재희]

 
대성당을 지나면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퀘브라 코스타스’ 계단이 나타난다. 가파른 계단이라 구르면 허리가 부러진다는 의미가 붙은 이름이지만 알록달록 색깔의 바닥과 건물이 빼곡한 골목이 이어져 기웃기웃 구경할 거리가 많다. 독특한 서점과 기념품 가게, 숙소와도 가까워 파두 공연을 챙기며 골목을 즐겼다.
 
줄리가 코임브라를 떠나지 않은 이유가 파두 공연인 만큼 그녀는 정통 공연을 보고 싶어했다. 코임브라 대학의 원형에 가까운 ‘파두 센터 하우스’의 공연 시작까지 나는 줄리와 퀘브라 코스타스 계단 길에 있는 카페에서 와인을 마셨다.
 
“리스본 파두가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여성의 아픔과 슬픔을 노래한 것이라면, 코임브라 파두는 젊은 시절의 기쁨과 설렘을 노래한 것입니다.”
코임브라 파두는 남자 대학생이 사랑을 고백할 때 여학생의 기숙사 창문 아래서 부르던 세레나데가 전승된 것이라고 한다. 파두에서는 3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주로 기타 두 대가 반주하는 파두로 사랑을 고백했고, 파두를 들은 여학생이 방의 불을 세 번 깜빡이면 승낙의 의미가 됐다. 태생부터 낭만적이다.
 
코임브라의 파두는 사랑을 고백하는 세레나데를 원형으로 한다(왼쪽). 리스본의 파두에 비해 낭만적이다. 호주에서 온 줄리는 세상을 떠난 친구를 위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는 순례자였다(오른쪽). 심장이식 수술 후 함께 산티아고를 걷고 싶어 했던 친구의 얼굴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기도하며 걸었다. [사진 박재희]

코임브라의 파두는 사랑을 고백하는 세레나데를 원형으로 한다(왼쪽). 리스본의 파두에 비해 낭만적이다. 호주에서 온 줄리는 세상을 떠난 친구를 위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는 순례자였다(오른쪽). 심장이식 수술 후 함께 산티아고를 걷고 싶어 했던 친구의 얼굴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기도하며 걸었다. [사진 박재희]

 
리스본에서 들었던 파두는 절절하게 끓어 넘치는 비감이었다. 쉽사리 잊히지 않을 무거운 정수의 감정이었던 반면 코임브라의 파두는 애절하지만 달콤했다. 끈적이기보다는 매끄럽고 무겁지 않은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줄리를 떠나지 못하게 했던 파두였는데 정작 푹 빠져 버린 건 나였다. 줄리가 떠나고도 이틀을 더 있었다. 아침엔 몬데구강 가에 나가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했다. 굽이굽이 언덕길을 따라 구시가를 헤매다가 숙소로 들어와 방학을 맞은 학생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나 멍하니 파두가 시작할 시간을 기다렸다. 
 
삼 일째 되던 날, 나는 코임브라가 깨어나기 전 일찍 도시를 떠났다. 더 있고 싶어질 것 같아서였다. 무엇에 그리 끌렸는지 아직도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묘한 뒤섞임 때문인 듯하다. ‘젊음, 세월이 들어 잘 익은 젊음과 낭만, 낡지 않은 신식의 낭만’ 같은 것 말이다. 사라져버린 공룡처럼 자취도 없다고 믿었던 종류의 젊음과 낭만이 코임브라에 있었다.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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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필진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 한량으로 태어나 28년을 기업인으로 지냈다. 여행가,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다. 길에서 직접 건져올린 이야기, 색다른 시각으로 비틀어 본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함께 걸으며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 생생한 도보 여행의 경험을 나누며 세상을 깊이 여행하는 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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