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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만큼 힘들 땐 크게 울어보자, 손 잡아줄 이웃 꼭 있다

중앙일보 2019.07.10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96)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잊고 있다가 무심코 들여다보니 부재중 전화가 열 통 넘게 와 있었다. 차도 주차장에 잘 주차했고 별일 없이 차 한잔하고 있는데 무슨일인가 싶었다. [사진 pixabay]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잊고 있다가 무심코 들여다보니 부재중 전화가 열 통 넘게 와 있었다. 차도 주차장에 잘 주차했고 별일 없이 차 한잔하고 있는데 무슨일인가 싶었다. [사진 pixabay]

 
일요일인데 지인에게서 차 한잔할 수 있냐며 전화가 왔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바로 약속장소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그의 남편은 서울서 대수술을 받고 내려와 있고 본인도 정성을 다해 병간호하는 중인데 얼굴에 피곤함이 쌓여있다. 밥을 잘 먹어야 간병인이 기운 난다며 염소 전문 식당으로 갔다.
 
식사 후 한 시간여를 요즘 힘들었던 이야기도 하며 분위기 있는 찻집에서 차 한잔하고 있는데 무심코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부재중 전화가 열 통이 넘게 와 있었다.
 
아뿔싸! 미사 중 무음으로 해놓고 그만 잊고 있었던 거다. 119, 112, 경찰서 등등 신원이 확실한 관공서랑 별별 번호가 다 적혀 있다. 자동차도 아파트 주차장에 잘 주차되어 있고 나도 별일 없이 여기서 차 한잔하고 있는데 뭔 일이란 말인가?
 
내 차 안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서 아이들이 고양이를 살리겠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신고가 접수되어 경찰 전화도 받았다.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오면 차주가 차 문을 열고 직접 확인을 해야 한단다.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사진 pxhere]

내 차 안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서 아이들이 고양이를 살리겠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신고가 접수되어 경찰 전화도 받았다. 경찰서에 신고가 들어오면 차주가 차 문을 열고 직접 확인을 해야 한단다.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사진 pxhere]

 
폰을 보는 사이 또 전화가 빤짝거렸다. 받으니 경찰이다. 사연인즉, 내 차 안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서 아이들이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안 받으니 경찰서에도 하고, 119에도 하고, 아빠에게, 엄마에게, 온통 연락해서 고양이를 살리겠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후유~ 한숨을 쉬며 나는 집고양이도 안 키울뿐더러, 동물을 차에 태워 다니지 않는다며 이해를 구하니 신고가 되고 접수가 된 거라 차주가 차 문을 열고 확인을 해야 한단다. 경찰도 현장에 가서 보고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아이들 장난 전화로 받아들여서 나에게 빨리 조처를 하라는 식이다.
 
커피가 나오고 한 모금을 마시려는데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엔 아이 아빠다. 고양이를 살려달라고 아이들이 열 명이 넘게 모여 성화를 해서 내려와 보니 내 차의 앞부분에서 나는 소리가 맞는단다. 어른이 들어봐도 살려달라는 울음소리라는 것이다.
 
보닛 커버를 열어 살펴보니 새끼 고양이가 미로 같은 통로에서 벨트에 몸을 꼬아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야생으로 자라 사람의 손길을 두려워하는 탓에 고양이는 쉽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사진 pixabay]

보닛 커버를 열어 살펴보니 새끼 고양이가 미로 같은 통로에서 벨트에 몸을 꼬아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야생으로 자라 사람의 손길을 두려워하는 탓에 고양이는 쉽게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사진 pixabay]

 
커피를 마시다 말고는 일어나 아파트 주차장에 달려오니 초등학생들과 몇몇 부모가 나와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뭔 일이래? 분명히 내 차에서 나는 소리다. 어찌나 세게 울음소리를 내는지 아이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애가 탔으리라 짐작이 갔다. 차 문을 열고 찾아도 없다. 한 아이 아빠가 보닛 커버를 열어 여기저기 살펴보니 새끼고양이가 미로 같은 통로에서 벨트에 제 몸을 꼬아서는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주먹만 한 놈인데도 야생으로 자라 사람의 손길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무 꼬챙이로 유도해도 으르렁거리며 방어하는 모습이 귀엽다 못해 웃음이 난다. 저 어린 것의 유랑자 같은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한편으론 마음이 스산했다.
 
시간은 흐르고, 연륜 있는 한 어른이 슈퍼에 달려가 냄새나는 오징어포를 사와서 차 밑으로 유도하니 꼬인 벨트를 스스로 풀고 내려온다. 아이들이 손뼉을 치는 사이 고양이는 오징어포를 잽싸게 낚아채서는 쏜살같이 어디로 사라졌다. 허무하게….
 
아이들에게 정말 착한 일을 했다며 칭찬을 하고 얼음과자라도 사 주려고 하니 한 아이 아빠가 어느새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와서 아이들에게 쭉 나눠주었다. 어린아이들이 장난 전화를 했다고 잠시 무시한 것을 진심으로 반성했다.
 
 
사람도 살다 보면 죽을 만큼 힘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할 생각을 하고, 또 혼자서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고 할 때가 있다. 그땐 자존심이고 뭐고 다 뒤로 미루고 크게 아프다고 울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이란 살고 보는 게 우선 아니겠는가? 울 때 옆에서 함께 울어주고, 손잡아 주고, 기댈 수 있게 어깨를 내어주는, 좋은 이웃이 꼭 있다.
 
그래도 살면서 힘들 때 밥 사주는 사람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아픈 사람은 아파서 아프지만 지켜보는 사람도 아프고 힘들다. 지인은 그날 내가 염소고기 사준 것에 감동했다며 마음을 알아주니 요즘은 힘이 하나도 안 든단다. 밥 한 끼 함께하고 좋은 사람 축에 끼어서 행복하다.
 
오늘 신문엔 홀로 외로이 죽은 시신이 두 달이나 지나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올라와 있었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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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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