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 읽기] 화전민, 대리기사, 그리고 무인자동차

중앙일보 2019.07.10 00:19 종합 28면 지면보기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단편소설 아이디어 하나가 있는데, 쓸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다. 내용은 이렇다.
 

무인차 나오면 어떤 일 벌어질까
조선 말기 떠오르는 이 찜찜함
당시 권력자들은 정말 몰랐을까

10~15년 뒤의 미래. 구글에서 마침내 무인자동차 개발을 마치고 판매에 들어간다. 세계 자동차업계와 운수업계에 지각변동이 인다. 한국도 난리가 난다. 가만히 있으면 현대기아차가 망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대통령이 ‘한국형 무인자동차’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현대기아차-카이스트 연구팀이 그 한국형 무인자동차를 내놓는다. 해외 전문가들은 구글을 따라잡는데 최소한 5년이 넘게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휴가도 퇴근도 반납한 연구원들 덕분에 2년 만에 그런 쾌거를 이뤄낸다.
 
한국형 무인차는 구글의 차량보다 충전용 전기도 덜 먹고, 한국 도로 환경에도 최적화돼 있으며, 오디오 시스템도 더 뛰어나다고 한다. 그런데도 ‘구글 프리미엄’이 없어 시장에서 고전한다.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한국형 무인차를 사는 소비자들에게 자동차세를 깎아주는 지원 정책을 펼친다.
 
자동차회사의 마케터들은 구글의 판매 전략을 벤치마킹해 안전성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교통사고 현장의 참혹한 모습,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보여준 뒤 무인자동차가 해답이라는 광고를 만든다. 아예 ‘무인차 구매가 윤리적인 소비’임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무인 택시, 무인 공유차량을 이용해 본 젊은 소비자들 위주로 호평이 퍼진다. 값도 싸지만, 말을 걸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옛날 음악을 크게 틀거나 난폭 운전을 하는 인간 기사가 없다는 사실이 그렇게 안심이 된다고 한다. 마침 여성 승객을 상대로 한 택시기사 성범죄 사건과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인명 사고가 연달아 터진다.
 
서울시가 버스와 택시를 단계적으로 무인차로 교체할 계획을 세웠음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다. 전국의 버스기사, 택시기사, 대리기사들이 광화문에서 결사반대 시위를 연다. 운수업 종사자들은 친절 서비스 다짐대회를 열지만 “여태껏 뭐했느냐”는 비웃음만 산다.
 
무인차 도입 확대에 찬성하는 이들은 교통사고 유가족협회와 손잡고 홍보 캠페인을 벌인다. 버스기사, 택시기사, 대리기사들은 그 앞에서 할 말이 없다. 그저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살라는 말이냐”는 하소연뿐이다. 정부에서는 운수업 종사자들을 위한 직업교육과 저금리 대출을 대책으로 내놓지만 둘 다 빛 좋은 개살구다.
 
소설 주인공은 살 길이 막막해지고 마음에 상처를 크게 입은 택시기사다. 그는 집회에서 알게 된 버스기사, 대리기사와 함께 자살특공대를 조직한다. 그들은 무인차에 치여 죽으려 한다. ‘인간 기사는 믿을 수 없다’는 슬로건에 너무 절망해서, 무인차도 사망사고를 일으킬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게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주인공은 무인차의 운전 패턴을 분석한다. 밤에 검은 옷을 입고 기다리다가 무인차가 오면 버스기사가 먼저 보도에서 차도로 뛰어들기로 한다. 무인차가 급히 차선을 바꾸면 중앙분리대 화단에 숨어 있던 택시기사가 뛰어들어 차량에 치인다는 계획이다. 택시기사는 덜덜 떨면서 자신을 죽일 무인차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자신을 덮치는 무인차의 전조등 불빛 앞에서 눈을 감으며 택시기사는 생각한다. 10년 전, 15년 전 정치인들은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정말 예상하지 못했을까. 구글이 무인차를 개발한다는 뉴스는 분명히 2010년대부터 나왔던 것 같은데. 소설은 거기서 끝난다.
 
지난달 말에 소설집 두 권을 함께 냈다. 한 권은 경제적 약자를 다룬 연작소설이고, 다른 한 권은 SF 중단편집이다. 인터뷰에서 몇몇 기자들은 사회파 소설과 SF를 쓰는 일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내게는 큰 차이가 없어서 머리만 긁적였다. 위의 아이디어를 소설로 쓰면 사회파 소설이 되는 걸까, SF가 되는 걸까. 올해 발표하면 SF인데, 10년 뒤에 내면 사회파 소설이 되는 것 아닐까.
 
사회파 연작소설을 쓰면서는 요즘이 조선시대 말기와 닮지 않았나 생각했다. 조선말의 정치인들도 서양 함선들을 보며 뭔가 거대한 충격이 오고 있음은 알았을 것이다. 고향에서 쫓겨나 떠돌아다니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화전민들의 삶을 모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 권력자들의 눈은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우리의 눈은 미래를 향해 있나, 아니면 과거를 보고 있나.
 
장강명 소설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