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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인사이트] 인도·태평양 전략과 신남방 외교…접점 찾아야

중앙일보 2019.07.10 00:04 종합 26면 지면보기
트럼프 방한 이후 한국의 선택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지난달 30일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회담에 묻혀 언론의 관심을 못받았지만 그 날 한·미 정상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매우 중요한 내용이 발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안보뿐 아니라 경제와 지역·글로벌 이슈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 간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표명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하지만 미·중 패권이 격돌하는 민감한 시점에 인도·태평양 전략과의 제휴 의사를 표시했다는 점에서 괄목할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문 대통령은 최근 발생한 유조선 피격 사건 등 중동 긴장 고조 상황에 대한 우려에 공감했다며 오만 해역에서의 통항의 자유는 국제 에너지 안보와 중동지역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향후 중동정세 안정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한미 정상 간에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우리의 원유 수송로가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인도·태평양에서의 안전이 우리의 국익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호주·인도 중시 미국의 전략
한·중 관계 고려 한국은 참여 주저
인도의 대중 양면 전략 참고할 만
적극 참여로 글로벌 책무 다해야

미국의 태평양 시대는 19세기에 개막됐다. 1860년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 윌트 휘트먼은 태평양이 미국인들에게 번영을 약속할 드넓은 고속도로가 될 것이라 했다. 미국 지도자들은 태평양과 아시아가 미국인들에게 위대한 미래를 선사할 것이라는 낙관적 비전을 제시했다. 알라스카와 미드웨이를 편입시킨 링컨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자 전략가인 윌리암 시워드는 서부개척 이후 태평양으로의 진출이 미국이 나가야 유일한 방향이라고 단정했다. 본격적인 태평양 시대가 열린 건 1906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백함대(大白艦隊·Great White Fleet)를 태평양에 전진배치하면서였다. 그 뒤 이어진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였다.
  
태평양 넘어 인도양으로
 
미국의 인도양 진출에 대한 꿈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과 정체성에서 이해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인도·태평양 구상을 전략으로 발전시키며 중국의 패권도전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연 21세기도 미국의 세기로 유지될지 불안한 미국인들에게 트럼프는 중국의 패권 도전은 이겨낼 수 있으며 미국은 계속 전진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2018년 5월 미국의 태평양 사령부가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개편한 것은 미국의 팽창주의 역사와 국제사회에서의 주도적 역할 연장에 대한 강한 집착에서 연유한다.
 
미 국방부는 지난달 1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세계 전략의 크기와 범주 및 전략 환경 변화를 이해하고 어떻게 접근할 지를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전략서이다. 이 보고서는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최우선 가치로 상정하고 있다. 특히 일본이 미국의 역내 제 1 파트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 위협에 대한 부분을 다루며 일본의 납치자 문제까지 언급 하는 등 아베 정부에 대해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 내용을 보면 한국의 안보협력 파트너로서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읽을 수 있다. 미일동맹을 코너스톤(conerstone)이라 칭한 반면, 한미동맹을 린치핀(linchpin)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미국은 일본·호주·인도 등 4개국 (QUAD)을 중심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는 미국의 새로운 동맹전략에 기인한다. 중국에 대한 대응전략을 적극 구사할 수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동맹전략을 새롭게 짠 것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중심에 놓고 주요 동맹국들을 재평가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있는 한국의 전략과 입장이다. 과연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참여는 한국의 국익에 치명적 손실일까. 트럼프 행정부의 결연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중국과의 충돌을 우려한 나머지 적극 지지하거나 참여하기를 주저해 왔다. 국제정치학의 동맹 이론 가운데 연루(entrapment)와 방기(abandonement)란 개념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방기 가능성보다 미국과 중국의 격돌에 한국이 연루될 가능성에 더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그 결과가 미칠 파장은 심각하다. 미국과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신(新)애치슨 라인 주장이 점차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중 간의 군사적 격돌을 피하기 위해 한반도 밖으로 미국의 방위선을 후퇴시키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의 대(對)중국 경사론도 이 주장에 힘을 보태는 요인이다.
 
한국의 주저하는 태도는 고고도미사일(THAAD·사드)체제 배치 때와 같은 중국의 보복을 우려하는 것은 일면 이해되는 일이다. 하지만 동맹의 비전과 미래 전략을 개척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의 역할과 위상의 추락을 이대로 방치해선 안된다.
 
인도의 입장은 참고할 만하다. 3월 5~6일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인도 해군협회 주최로 뉴델리에서 열렸다. 인도는 자신들의 역할을 결코 대(對)중국 군사적 봉쇄에 두고 있지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중국과의 협력과 견제도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인도의 사례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의 참여가 반드시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인다거나 중국과의 충돌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미국은 대중 봉쇄작전만 하는 게 아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재난이 아시아 지역과 인도양에서 급증하고 있다. 이를 위한 인도적 지원과 재난구호 작전만 연 7회 이상 진행되고 있다. 남북 화해시대에 한반도에서 연합훈련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정이라면 역외 훈련에 참가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 4월 방한한 미 해병대 태평양사령관 루이 크래파로타 중장은 해병대 창설 70주년 세미나에서 한국 해병대가 함께 참가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항행의 자유에 대한 중국의 위협이나 무력 시도가 있다면 국제규범에 따라 행동하고 대응하면 된다. 그러나 대중국 봉쇄 정책에 참가한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지역 안정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거나 소극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가장 강력한 동맹으로서의 위상과 지위를 유지하기 힘들다.
  
지역 안정과 글로벌 역할의 모색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하는 것은 단순히 동맹관리 차원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기여해야 하겠다는 동기요인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인도지원과 재난 구호 등 세계 국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나 중국과의 우호관계 유지에 부담이 될 것을 걱정하기 보다는 비확산(non-proliferation)과 같은 초국경적 위협을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우리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지구촌 차원의 안전을 도모하며 세계국가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정의하고 찾아 나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대통령이 노르웨이에서 그토록 강조한 평화의 실체이다.
 
전쟁의 부재란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실질적 기여에 입각한 평화를 위해서라면 좀 더 적극적인 세계전략이 필요하다. 지난달 30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8번째 정상회담에서 밝힌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외교의 접점 찾기에 대한 의지 표명은 만시지탄이있지만 환영할만한 소식이다. 앞으로 세계전략에 기반한 외교 안보 정책의 큰 그림 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위치 선정과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통해 우리가 인도·태평양의 안정과 평화에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홍규덕 숙명여대 국제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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