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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신부' 목숨 앗아간 잠원동 철거 현장, '무경험' 지인이 감리했다

중앙일보 2019.07.09 13:24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잠원동 건물붕괴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관계자들이 현장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잠원동 건물붕괴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관계자들이 현장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4일 붕괴 사고가 일어난 서울 잠원동 철거 현장 감리자가 철거 업체의 지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해당 감리자는 4층 이상의 건물을 감리한 경험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업체가 매뉴얼을 어겼다고 보고 관계자들의 책임 여부를 가리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9일 "건물 철거 업체 관계자와 감리자 정모(87)씨가 지인 사이로 확인됐다"면서 "공사가 부실하게 이뤄진 정황으로 보고 위법성을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감리자 선임도 건물주가 아닌 철거업체가 담당 건축사무소에 추천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철거 작업을 감독해야 할 감리자를 업체가 직접 선임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감리자를 시공사나 철거업체가 직접 고르는 일이 빈번하다고 말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칙상 건물주가 직접 감리를 선정해야 하지만 업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시공사에게 감리자 추천까지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럴 경우 감리자가 깐깐하게 감리를 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씨의 업체가 잠원동 건물 철거 감리를 맡기엔 감리 경험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해당 업체는 주로 2층 내외의 저층 건물 감리를 주로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붕괴 사고가 일어난 잠원동 건물은 지상 5층, 지하 1층 규모다.
 
앞서 철거 현장에는 정씨 대신 감리 자격증이 없는 정씨의 동생이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됐다. 정씨 측은 사고 당일 동생이 감리 보조인 자격으로 현장을 지켰다고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동생은 감리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관계자는 “80대 후반의 고령인 감리자가 직접 현장을 챙기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정씨가 철거계약서 낼 때 건축사가 상주 감리하겠다고 계약서까지 첨부해서 냈다”며 “감리 보조를 따로 맡겼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만약 이를 허용했다면 건축주도 책임이 있어 감리자, 철거업체 관계자와 함께 고발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파악한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민간 자문위원을 받아 책임 소재를 가리고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현장소장 등 9명에 대한 소환조사를 마쳤다. 경찰 관계자는 “감리 업체 선정이 부실하게 이뤄지는 등 철거 매뉴얼을 어긴 점을 확인했다”면서 “사실관계 파악이 끝난 만큼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단계”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허가권자인 행정관청이 직접 감리자를 지정하는 제도가 정착되어야 이 같은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강주석 건축사협회 법제실장은 “철저한 감리가 이뤄지기 위해선 건설 업체가 아닌 제3자가 감리자를 지정해야 한다”면서 “감리 업체를 허가권자가 지정하는 ‘허가권자 지정감리 제도’가 올해 확대 시행됐지만, 철거 감리에 대해선 적용 여부가 모호하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건물 붕괴사고' 철거업체 관계자들이 지난 4일 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무릎을 꿇고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잠원동 건물 붕괴사고' 철거업체 관계자들이 지난 4일 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무릎을 꿇고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비 신부 유족, 사고 관련자 7명 고소 
한편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모(29)씨의 유족은 업무상 과실치사·치상 혐의로 서초구청 담당자 3명과 건축주, 감리인, 철거업체 관계자 등 총 7명에 대한 고소장을 서초경찰서에 제출했다. 철거 작업을 한 공사 관계자뿐 아니라 관리를 소홀히 한 구청의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서초경찰서는 이들 7명을 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상태다.                                                            
 
사고는 지난 4일 오후 2시 23분쯤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하면서 발생했다. 건물 잔해가 가까운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차량 3대를 덮쳐 예비신부 이모(29)씨가 4시간가량 갇혀 있다가 숨졌다. 이씨와 결혼을 약속한 황모(31)씨는 중상을 입고 구조돼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두 사람은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던 길이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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