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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최악의 한일관계 속 강경론만 난무하는 여권…‘토착왜구’ 이어 ‘의병 모집’까지

중앙일보 2019.07.08 17:01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한국내에는 분명히 일본을 평균이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부류가 있어보입니다. 이런 부류가 한국사회내 힘을 갖고있는 것도 사실인듯 하구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일본을 평균 이상으로 좋아하는 부류들의 일관성’이라는 제목으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박 의원은 “비분강개는 넘쳐흐르나 실효적인 대 일본 대책은 냄비 끓듯 했을 뿐”이라며 “일본을 탓하기 전 우리정부를 먼저 탓하고 사법농단을 탓하기 전 외교적 거래를 두둔한 부류는 일관됩니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했던 위안부합의를 강행했던 사람들, 5억불로 일제 36년을 퉁치려 했던 사람들의 일관성입니다”라고도 적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페이스북 캡쳐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페이스북 캡쳐

 
그는 이날 작정한 듯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에 대해 정부 여당의 미흡한 대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성토했다. 얼마 전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의 표현을 빌자면 ‘토착 왜구’에 대해 경고를 한 셈이다.
 
일본의 수출제한으로 인한 경제 위기가 가시화되는 가운데 여권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강경론 일색이다. 이날 최재성 민주당 의원도 “이 정도 경제 침략 상황이면 의병(義兵)을 일으켜야 할 일이다. 정치인들이 주판알만 튕길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두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이번 일에 대해 정부여당을 비판하면 '일본을 평균 이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토착 왜구’가 되는 셈이다. 의병 운동을 해야할 시기에 말이다. 그럴 때인가. 실로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친일 프레임을 씌워 재갈물리기를 시도하는 것”이란 야권의 질타는 타당해 보인다.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설치 및 중국 측의 경제보복이 벌어진 2016년 여름과 비교해보면 여권의 태도는 180도 다르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중국 측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며 김영호·박정·신동근·소병훈·김병욱·손혜원 의원 등 6명이 중국으로 갔다. 당시 이들은 중국 측 인사들을 만나 의견을 청취한 뒤 한국에 전달했다. 동맹국인 미국 측 반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민주당은 “국익의 관점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라며 “의원외교의 일환”이라고 일축했다. 이듬해 1월엔 송영길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의원 8명이 다시 중국에 갔다. 
사드 논란 속에 중국을 방문했던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명. 이들은 귀국 직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중을 통해 사드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왼쪽부터 소병훈·김병욱·손혜원·신동근·박정·김영호 의원. [중앙포토]

사드 논란 속에 중국을 방문했던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명. 이들은 귀국 직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중을 통해 사드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왼쪽부터 소병훈·김병욱·손혜원·신동근·박정·김영호 의원. [중앙포토]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방중단이 2016년 8월 8일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1층 세미나실에서 중국 학자들과 좌담회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방중단이 2016년 8월 8일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1층 세미나실에서 중국 학자들과 좌담회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정작 한국 경제가 휘청이는 지금은 여당 의원 중 누구하나 나서지 않고 있다. 일본 천황의 사과를 요구하던 문희상 국회의장은 한·일 관계를 풀어달라며 무소속 서청원 의원과 만나 일본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문 의장 자신이 한일의원연맹 회장 출신 아닌가. 정치권 관계자는 “서 의원은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청와대와 소통이 전혀 없는데 이런 긴급 상황을 푸는 메신저가 될 수 있겠냐”고 우려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접견실에서 한·일 의회외교포럼 출범식에 앞서 서청원 한·일 의회외교포럼 회장에게 임명장을 수여 하고 있다.[뉴스1]

문희상 국회의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접견실에서 한·일 의회외교포럼 출범식에 앞서 서청원 한·일 의회외교포럼 회장에게 임명장을 수여 하고 있다.[뉴스1]

여권이 '토착 왜구' 운운하며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등을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몰아가는 태도도 무책임하다. 
이번 사태를 불러온 직접적 원인은 징용공 배상 판결을 둘러싼 갈등이다. 2005년 한·일 협정 문서를 공개한 노무현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고 정리한 뒤 강제징용 피해자(7만8000여명)에게 각각 20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했는데 최근 사법부가 다른 판결을 내리면서 사안이 복잡해졌다. 일본에서는 이전 정권과 계속해서 입장이 바뀌고 있다며 추궁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노무현 정부 당시 침묵을 지키던 여당 의원들이 지금 와서 “의병을 소집하자”며 강경론을 주도하는 것은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으로 보일 뿐이다. 
 
여권이 ‘토착왜구’ 경계 목소리를 높이며 선명성 경쟁을 하던 7일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급히 방일했다. 일본 정부가 거래 규제 대상에 올린 반도체 첨단소재 3종(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불화폴리이미드)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의병 궐기보다, 토착왜구 척결보다 더 급한 것이 있는데 여당 정치인의 눈에만 안 보이는 것 같다.  
  
일본을 국빈 방문중인 김대중 (金大中) 전 대통령이 1998년 10월 8일 오전 도쿄 (東京)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을 국빈 방문중인 김대중 (金大中) 전 대통령이 1998년 10월 8일 오전 도쿄 (東京)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과의 관개 개선을 이끌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공동선언을 낼 무렵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부로부터 과거사의 청산을 강요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일본 국민과 정부가 과거를 어떻게 반성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해 일본 내에서도 지지를 얻은 바 있다. 역대 최악의 한일 관계를 목도하고 있는 지금, 여권 지도부는 김 전 대통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봤으면 한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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