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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신뢰 못한다는 아베, WTO 가면 日에 마이너스 작동할 것"

중앙일보 2019.07.08 16:16
이재민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5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교수는 "WTO 제소 준비 과정에서 일본과 두 차례 이상 만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이재민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5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교수는 "WTO 제소 준비 과정에서 일본과 두 차례 이상 만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아베 총리가 언급한 ‘신뢰 문제’는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선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일본 조치의 문제점을 부각해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이다.”
 

"WTO 제소 요건 상당 부분 갖춰"
"규범에 신뢰 저하 예외조항 없어"
"日 규제 작동 방식 실체 확인해야"
"협의 요청후 日과 2차례 이상 만나야"

5일 만난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 정부의 경제 제재 조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WTO 분쟁에 참여한 이 교수는 2004년부터 한양대와 서울대에서 국제법을 강의하고 있는 통상 및 국제분쟁 전문가다. 1992년부터 10년간 외교관으로 일한 경험도 있다.
 
이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일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을 규제하는 데 대해 “WTO의 규칙에 맞다”며 “(양국의) 신뢰 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뢰 저하를 수출 규제 원인으로 꼽은 것이다. 이에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4일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보복적인 성격으로 WTO 규범 등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WTO 제소 검토에 들어갔다. 제소가 가능한 사안인가.
“일단 WTO 제소를 위한 요건은 상당 부분 갖췄다고 본다. 다만 실제 제소로 이어지기 위해선 구체적인 밑그림이 나와야 한다. 이를테면 일본이 7월 4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새로운 수출 허가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안타깝지만 이 과정에서 몇 주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다른 분쟁은 몇 달 혹은 그 이상 지켜보며 준비작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번엔 긴급한 사안이고 실제 기업 피해가 임박한지라 다른 분쟁의 경우와는 달리 빠른 판단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통상교섭본부장이 GATT 11조를 언급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자유 교역을 규정한 대표 조항 중 하나다. 몇 가지 예외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기본적으로 수입 또는 수출을 제한하지 말라는 거다. 일본은 4일부터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반도체 핵심 소재 세 가지 품목에 대한 제한 조치에 들어갔는데 실제로 수출이 제한될 경우 11조 위반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2004년부터 15년간 특정한 방식으로 한국으로의 수출을 허가하다 불과 4일 만에 기존과 다른 제도를 전격적으로 시행한 건 새로운 수출제한 조치의 발동으로 볼 여지가 크다.”
 
WTO 제소하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나.
“WTO 제소는 공식 문서를 제출함으로써 시작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양자 협의 요청서다. 상대국의 문제가 되는 조치를 설명하고 관련 협정의 어떤 조항을 위반하는지 제시해야 한다. 이 요청서는 자세하게 기재할 필요는 없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5일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재민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5일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양자 협의 요청서를 제출한 다음 과정은 뭔가.
“양자 협의 요청 이후 60일간 적어도 두 차례 이상 서로 만나야 한다. 일종의 숙려기간이라고 보면 된다. 양자 협의를 거쳐도 분쟁 해결이 안 되면 패널 절차로 넘어간다. 일반적으로 양자 협의를 통해 합의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미 이 시점엔 서로 칼을 갈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0일 이후 패널 절차로 거의 자동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보면 된다. 패널은 제3국 국적의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된다. 패널위원 선임 과정에서 양측의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한쪽이 원하는 전문가는 다른 쪽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합의에 실패하면 결국 사무총장이 직권으로 임명한다.”
 
 
패널은 누가 맡나.
“통상분쟁을 담당한 경험이 있는 고위 외교관, 법률전문가, 학자 등을 적절히 섞어 구성한다.”
 
패널 설치와 위원 선임은 어떤 의미인가.
“이 시점에서 일단 게임의 룰이 다 짜인 것으로 보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패널 설치와 위원 선임이 WTO 제소의 첫 번째 길목이자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WTO에는 국내 법원과 같은 가처분 신청 과정은 없나.
“통상 분쟁을 다루는 WTO 분쟁 해결 절차에는 그런 과정이 없다. 1995년 WTO 출범 시 패널에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패널이 심리를 시작하면 결론을 얻기까지 얼마나 걸리나.
“WTO 협정에 따르면 패널은 최소 6개월 최장 9개월까지 심리를 진행한다. 하지만 실제는 1년, 길게는 1년 6개월 정도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분쟁 당사국은 방대한 분량의 서면 입장서와  입증자료를 제출한다.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자료다. 상대방 주장 내용과 증거를 보고 다시 반박하는 추가적 문서도 상당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스위스 제네바에 소재한 WTO에서 2차례에 걸친 구두심리(Oral Hearing)가 진행된다. 한 번의 구두심리는 보통 2일 정도 진행된다. 구두심리에서 3명의 패널위원이 양 당사국에 여러 질문을 하고 설명과 주장을 듣는다. 구두심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사실상 분쟁의 향방을 좌우한다.”
 
이 교수는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발표한 내용에는 두 가지 항목이 있는데 세 가지 반도체 소재 품목에 대한 수출제한 조치가 첫 번째이고, 그다음은 7월 24일까지 일본 국내 의견 수렴 이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할지를 결정하는 부분”이라며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결국 다른 품목에 대한 수출 및 수입제한 조치로 이어질 수 있어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패널 구두심리가 끝난 다음 과정은 뭔가.
“패널 판정문을 작성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통상 두세 달이 걸린다. 판정문 작성이 끝나면 비밀 유지를 조건으로 당사국에만 먼저 제공된다. 사실관계에 대한 오류 확인을 위해서다. 그다음 최종 판정문이 당사국에 전달되고, 그다음 전 회원국에 회람된다. 승패가 공식화되는 순간이다.”
 
당사국이 패널 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항소 가능한가.
“패소한 국가는 패널 판정에 대하여 항소할 수 있다. 항소는 WTO 항소기구(Appellate Body)가 맡는다. 항소기구는 7명의 상임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중 3명이 특정 사건을 담당한다. 보통 항소심 절차는 90일 정도 소요된다.”
 
항소심 결론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다.
“패널 판정이 나오고 60일 이내에 항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항소심까지 포함하면 최초 제소 시점부터 최종 항소심 판정까지 물 흐르듯이 흘러간다 해도 지금 27개월 정도 걸리고 있다.”
 
WTO 항소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항소기구 위원은 7명이 정원이나 현재는 3명밖에 없다. 올해 12월 이 중 2명이 퇴임하면 1명만 남는다. 그런데 미국이 후임 임명에 반대하고 있어 이대로 가면 당장은 항소심이 제대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임시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지금 여러 국가가 발 벗고 뛰고 있다.”
 
항소심 결정이 마지막인가.
“ 그렇다.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의 경우에는 패널 결정에서는 우리가 졌지만 항소심에선 이를 뒤집었다. 항소심 판정이 마지막이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5일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재민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5일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패널과 항소심이 WTO에서 유일하게 항의할 수 있는 수단인가.
“그렇지 않다. 분쟁해결절차와 별개로 관련 위원회를 통한 항의도 하나의 방법이다. 가령 ‘상품교역위원회’가 있다. 대략 1년에 10번 정도 회의를 한다. 상대국의 교역제한 조치에 불만을 가진 국가가 이 위원회에서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항의하는 경우도 많다. 위원회에는 모든 회원국(164개국)이 참여하므로 어떤 식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일본 조치에 대한 문제점 지적과 우리 입장을 제시하며 다른 회원국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일본도 이들 위원회에서 자국 입장을 강하게 설명할 것이다. 일종의 국제 여론전으로 볼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치 외교적 갈등이 통상 갈등으로 표출된 것”이라며 “양국 갈등이 통상의 틀로 드러난 이상 WTO 등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신뢰 문제를 거론했다.
“WTO 규범엔 신뢰 저하에 따라 교역을 제한할 수 있는 예외조항이 없다. 다시 말해 양국 신뢰 저하에 따라 교역제한 조치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가 WTO 제소를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교통사고 이후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과 유사하다. 경미한 접촉사고는 당사자 간 합의할 수 있으나 일정 수준을 넘는 사고는 경찰에 알리고 공식적인 기록을 남겨야 한다. WTO 제소는 그런 과정이다. WTO 제소는 지금 한-일 양측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 혹은 다양한 퍼즐 조각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유일한 절차도 아니고 이를 통해 원천적인 문제 해결도 힘들다고 본다. 다만 양국 갈등이 통상의 모습으로 표출됐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과 별개로 통상이나 교역 차원에서 우리가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방이 ‘장군이요’ 하며 나왔으니 우리가 ‘멍군이요’ 하고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교역문제에 관한 한 WTO 절차가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데 WTO 제소가 꼭 필요한가.
“오늘(5일) 확인해 보니 WTO 분쟁이 그간 모두 585건이다. 가장 최근 등록된 분쟁이 7월 3일 개시된 분쟁인데 미국이 인도를 제소한 사건이다. WTO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분쟁해결절차에 가장 큰 불만을 가진 미국이 그 절차를 활용하는 게 흥미롭다. WTO 분쟁 해결 절차는 공식적인 문제 제기 창구로 활용되기 때문에 WTO 제소를 하지 않는다는 건 법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이번 문제의 본질은 통상 분쟁이 아니다. 외관은 일단 교역제한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본질은 양국의  정치외교적 갈등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WTO에서 승소한다 해도 문제의 본질, 다시 말해 환부를 제거하는 건 힘들다. 그 작업은 외교적 협의를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WTO 분쟁은 시작된 이후 양국이 타협해 종결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일단 절차가 시작되더라도 양국 협의에 따라 타협점이 찾아지면 WTO 절차는 언제든지 종결할 수 있다. 그 점을 생각하더라도 제소를 너무 복잡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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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분쟁 절차가 갖는 의미는.
“WTO 협정에 이런 조항이 있다. WTO 분쟁의 개시가 회원국 간 공격적인 행동(contentious act)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분쟁은 일종의 회원국 간 이견을 해소하는 절차로 담백하게 여겨졌다. 회원국 간 있을 수 있는 일들(business as usual)로 바라보고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WTO 분쟁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금물이고 그 단점만을 바라보고 그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교역 관련 분쟁을 국제사회에서 공식화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이다. 그 측면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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