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침을 머금고 눈만 껌뻑이는 아기, 내가 키울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9.07.08 15:0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2)

제주도에 사는 시인. 결혼 20년이 되던 해 위탁 부모로 나눔의 여정을 시작했다. 갈 곳 없는 아이를 맡아 키우며 사랑을 나누고, 자신도 성장하는 '색다른 동거' 이야기. <편집자>

 
아기를 만나러 애서원에 갔던 날을 잊지 못한다. 여러 감정이 혼합돼 잠도 이루지 못하고 애꿎은 아기 옷가지와 곰인형을 만지작거렸다. [사진 pixabay]

아기를 만나러 애서원에 갔던 날을 잊지 못한다. 여러 감정이 혼합돼 잠도 이루지 못하고 애꿎은 아기 옷가지와 곰인형을 만지작거렸다. [사진 pixabay]

 
아기를 처음 만나러 가는 날, 새벽부터 집안을 서성거리며 연신 시계를 봤다. 미리 사둔 곰 인형을 챙기고, 입고 갈 옷을 꺼내 놓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어떤 아기일까, 아기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휑한 시골길을 달리고 달려 비포장도로가 끝나는 곳. 거기에 미혼모시설 ‘애서원’이 있었다. 겨울과 봄이 반반씩 묻은 3월의 바람 사이, 노랑 빨강 소담한 팬지 사이를 지나, 아늑한 소파가 있는 면회실에 앉았다. 몸은 앉았지만 청각은 곤두서있었다.
 
스르륵, 면회실 문이 열리고 앳된 여자가 아기를 안고 들어왔다. 설마, 이 아기가…. 무표정하게 걸어 들어와 자리에 앉아서 시선을 바닥에 두는 여자. 그 품에서 한껏 침을 머금고 눈만 껌뻑이는 아기.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낯설어서 그렇겠지. 남편이 곰 인형을 건네며 말을 걸었다. 피식, 순간 웃음이 새어 나오더니 다시 눈을 바닥에 떨구는 여자. 마음에 안 드나, 왜 그러지, 아기도 가만히 있네.
 
낯설고 어색한 대화를 나누고, 다 식어버린 차를 마시고, 마지막으로 아기를 한 번 안아 보려고 했다. 아기를 건네는 무겁디무거운 여자의 손. 그리곤 금방 낚아채 가는 여자의 손. 떨리는, 경계하는, 울고 있는 손 위로 햇살의 위무가 스며들고 있었다.
 
“오늘 데려가는 건 아니고요, 인사하러 왔어요.”
동행한 위탁센터 선생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그 손은 흐물흐물 녹아내렸을지 모른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기를 처음 만난 날. 제주 애서원에서. [사진 배은희]

아기를 처음 만난 날. 제주 애서원에서. [사진 배은희]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내내 편치 않았다. 아기를 지키려는 어린 엄마의 모성과 경계의 눈빛이 계속 아른거렸다. 그리고 아기 아빠랑 친할머니 모두 지적장애가 있다는 말도 그때 들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아니, 멈췄다. 시간이 날 기다려주지 않으니 내가 시간 속에 멈췄다.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가족력이라는 게 있잖아. 내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책임져….
 
돌이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건 하고, 할 수 없는 건 정직하게 거절하는 게 맞는 거라고. 나는 일을 하고 있고, 이제 겨우 눈곱만큼의 여유를 느낄 것 같은데 어떻게 돌쟁이 아기를…. 또 습관처럼 거절의 문장을 만들었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때 거절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뭉쳤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생명을 키워내자 다시 약속했다. 두렵고 떨리는 이름 ‘위탁 엄마’, 아니 ‘엄마’. 난 그 낯선 세계로 이미 들어서 있었다.
 
집으로 데리고 온 첫날. 아기는 내내 울었다. 찢어지게 울면서 고개를 두리번두리번했다. 엄마를 찾나보다, 엄마도 네 생각에 지금 울고 있을지 몰라. 연신 두리번거리는 아기를 안고 남편과 나는 꼬박 3일 밤을 새웠다.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닦고, 다시 기저귀를 갈고….
 
두 아이를 낳고도 그랬다. 처음부터 엄마가 된 건 아니었다. 키우면서, 함께 울고 아파하면서 엄마가 되어갔다. 열이 나고, 이마가 찢어지고, 폐렴으로 입원할 때마다 조금씩 엄마가 되어갔다. 낳는다고 다 엄마가 되는 건 아니구나, 낳았다고 다 엄마는 아니구나, 그때 알았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점차 엄마가 되어갔다. 나는 육아에 베테랑이 된 내 모습을 기대했는데, 아이들을 키우며 보니 완벽한 엄마가 되기 어려웠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버티고 일어서야 할 빈틈을 주는 보통의 엄마였다. [사진 pixabay]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점차 엄마가 되어갔다. 나는 육아에 베테랑이 된 내 모습을 기대했는데, 아이들을 키우며 보니 완벽한 엄마가 되기 어려웠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버티고 일어서야 할 빈틈을 주는 보통의 엄마였다. [사진 pixabay]

 
아이들이 크면서도 그랬다. 한 10년쯤 키우면 베테랑 엄마가 되는 줄 알았는데 나는 계속 엄마가 되어가는 ‘진행형’이었다. 좀 더 나은 엄마, 좀 더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그것은 무지에서 시작된 욕심일 뿐이었다. 대상관계를 연구한 도널드 위니콧은 ‘충분히 좋은 엄마’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아이가 정상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완벽한 엄마(Perfect Mother)’가 아닌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라는 것이다.
 
충분히 좋은 엄마는 완벽하게 모든 것을 채워주기보다 적절한 좌절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틈을 제공하는 보통의 엄마를 말한다. 미안하게도 난 그 틈을 항상 제공한 엄마였다. 그런 기준이라면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은지 엄마가 되면서 알았다. 우리 사이에 별처럼 많은 이야기가 쌓이고 쌓일 때 우린 진짜 가족이 되어 간다는 걸. 찢어지게 울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꼬박 밤을 새우고,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닦고, 다시 기저귀를 가는 그 일들이 나를 진짜 은지 엄마로 만들어 준다는 걸.
 
새벽녘 동쪽 하늘에 뜬 금성은 샛별이라 부르고, 해가 진 뒤 서쪽 하늘에 뜬 금성은 개밥바라기라 부른다. 오늘도 그 이름처럼 빛나는 별들. 난 그 아래서 찬란한 이름 ‘엄마’가 되어 가고 있다. 오늘도 진행형이다.
 
배은희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배은희 배은희 위탁부모·시인 필진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 제주도에 사는 시인. 낮엔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일하고, 밤엔 대학원에서 공부한다. 색다른 동거를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매너 있고 돈 많은 남자와 사는 게 아니라, 작고 여린 아기와 하는 동거다. 우린 동거인이면서 가족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위탁가족’이다. 우리의 색다른 동거가 ‘사랑’으로 전해지길 기도한다. 동거는 오늘도 진행형이다.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