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거리 뛰는 버스기사가 커피 안 마시는 이유 아시나요

중앙일보 2019.07.08 07:00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 이야기(25)
왕은 궁녀가 있는 상태에서 용변을 봐야 했고, 왕의 변을 내의원으로 들고가서 대변을 살피고 맛을 보기도 하며 왕의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사진은 영화 '광해' 속 장면. [사진 영화 광해 스틸]

왕은 궁녀가 있는 상태에서 용변을 봐야 했고, 왕의 변을 내의원으로 들고가서 대변을 살피고 맛을 보기도 하며 왕의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사진은 영화 '광해' 속 장면. [사진 영화 광해 스틸]

 
흔히 자기 욕심만을 차리는 사람에게 ‘잘 먹고 잘살아라’ ‘얼마나 잘 먹고 잘사는지 두고 보자’라는 비아냥대는 말을 던지기도 하고,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려’ ‘금강산도 식후경’…. 모두 먹는 것의 중요성을 담은 말이다. 그러나 잘 먹으면 잘 싸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반대로 먹는 문제가 아닌 싸는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뜻이 담긴 말이 많다. 화장실을 ‘뒷간’이라 불렀던 것도 그렇고, ‘뒷간과 사돈은 멀어야 한다’ 모두 냄새나고 껄끄러운 사람은 거리를 두고자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영화 ‘광해’를 보니 임금님께서 배에 신호가 오면 복이나인을 부르면 됐다. 복이나인은 ‘매우 틀’을 들고 달려온다. 왕의 변은 ‘매우’, 왕의 오줌은 ‘지라’라고 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왕은 궁녀가 있는 상태에서 용변을 봐야 했고, 왕의 변을 내의원으로 들고 가서 대변을 살피고 찍어 맛을 보기도 하며 왕의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전직 대통령이 몇십 분 머무를 행사장 대기실에 ‘대통령 전용 화장실’을 설치했다는 이야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용 화장실’을 갖고 판문점에 왔다는 것 등으로 볼 때 권력자의 배설은 썩 자유로워 보이지도 않고, 맛보고 관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마렵다→화장실 간다→싼다’는 너무나 보편적이고 일상적이며 자연스럽고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이 자유가 사람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배가 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먹는 것과 더불어 오줌과 똥을 싸는 기본 생리 욕구를 해결하는 공간인 화장실의 접근권 또한 차별적이었다.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는 인간의 기본 욕구인 배설 욕구에 대한 차별을 보여준다. 주인공 캐서린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무실에서 왕복 1.6km 떨어져 있는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사진 영화 히든피겨스 스틸]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는 인간의 기본 욕구인 배설 욕구에 대한 차별을 보여준다. 주인공 캐서린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무실에서 왕복 1.6km 떨어져 있는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사진 영화 히든피겨스 스틸]

 
19~20세기 미국은 ‘짐 크로법’을 시행했다. 짐 크로법은 인종별로 공공장소나 편의시설을 분리해 사용하도록 하는 미국의 주법이었는데, 공립학교나 대중교통, 화장실, 식당. 식수대에 백인과 유색인종을 분리해 놓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면 인간의 기본 욕구인 배설 욕구에 대한 차별을 잘 읽을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치열한 우주개발 경쟁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시절, 천부적인 두뇌와 재능을 지닌 캐서린 존슨은 미 국립항공우주국(NASA) 최초의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선발된다. 하지만 흑인,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한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으며, 공용 커피포트조차 용납되지 않는 차별에 점점 지쳐 간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배변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캐서린은 800m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고, 참고 참다가 처리해야 할 서류 뭉치를 들고서 하이힐을 신고 왕복 1.6km(40분 정도)를 뛰어 화장실에 다녀온다. 땀이 범벅되기도 하고, 비에 옷이 다 젖기도 해 지쳐서 돌아오는 것이다.
 
어느 날 상사 해리슨은 종종 자리에서 잠적해 보이지 않는 그녀에게 농땡이를 친다며 호되게 야단한다. 그때 캐서린은 이렇게 말한다. “NASA 직원이 누는 소변의 색은 똑같다”며 쌓인 울분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상사 해리슨은 망치를 들고 나가 백인만을 위한 화장실의 간판을 부순다.
 
과거처럼 인종차별의 화장실은 없지만, 여전히 기본적인 생리 욕구인 먹고 싸는 것의 화장실 접근 권리는 보편적이지 않다. 오래된 건물에서는 장애인 화장실을 찾기가 힘들다. [사진 pixabay]

과거처럼 인종차별의 화장실은 없지만, 여전히 기본적인 생리 욕구인 먹고 싸는 것의 화장실 접근 권리는 보편적이지 않다. 오래된 건물에서는 장애인 화장실을 찾기가 힘들다. [사진 pixabay]

 
지금 인종차별의 화장실은 없다. 그러나 아직도 기본적인 생리 욕구인 먹고 싸는 것의 화장실 접근 권리는 보편적이지 않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접근권)’에서 장애인 화장실의 설치 책임을 두고 있지만 오래된 건물에서는 장애인 화장실을 찾기가 힘들다, 입구에 경사로가 갖춰지지 않으면 장애인 화장실에 들어갈 수도 없다. 또 화장실이 있다 하더라도 장애인 화장실은 예산 부족, 공간 부족의 이유로 대부분 남녀 공용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인데, 남성으로 더 잘 통하거나 좀 모호한 모습의 트랜스젠더 여성은 어느 화장실로 가야 할까?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한 불안감에 이들 또한 공중화장실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웨덴은 공중화장실 70%에 ‘성별 구분 없는 1인 화장실’이 존재한다고 한다.
 
추석이나 설에는 교통대란이 있고, 고속도로 휴게소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교통체증을 뚫고 간신히 휴게소에 도착했지만 여자 화장실의 줄은 길기만 하다. 반대로 남자 화장실 앞은 텅 비어 있는데 말이다. 여자, 남자 화장실의 규모는 몇 대 몇이어야 공평할까?
 
남녀가 화장실에 머무르는 시간을 조사해 보니 여성이 남성보다 1.6배 더 많은 시간을 화장실에 머문다. 생리용품도 교체해야 하고, 스타킹도 올려야 하며, 얼굴 화장도 고쳐야 한다. 당연히 여성 화장실은 원활한 교체가 되지 않는다. 이를 고려해 공중화장실법 개정안은 여성화장실 대변기 수는 남성화장실 대·소변기를 합한 것보다 1.5배 이상 되도록 발의됐다. 이런 사례가 모두 똑같이 대하는 것이 평등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운전 중에 화장실에 자유롭게 가기 힘들어지는 버스 기사들. 식후 물이나 커피를 의도적으로 안 마시고, 너무 오랫동안 소변을 참아 비뇨기질환이나 방광염에 시달린다고 한다. [중앙포토]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운전 중에 화장실에 자유롭게 가기 힘들어지는 버스 기사들. 식후 물이나 커피를 의도적으로 안 마시고, 너무 오랫동안 소변을 참아 비뇨기질환이나 방광염에 시달린다고 한다. [중앙포토]

 
최근 여성에 대한 범죄 장소가 화장실이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강남역 화장실에서 살인사건, 연예인의 화장실 강간사건, 화장실에 설치된 카메라에 의한 불법 촬영물 발견은 여성들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시간조차 불안과 긴장의 시간이 되게 한다.
 
또 자유롭게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배설권은 어떤가? 버스 기사들의 긴 노동시간은 잘 알려진 바다. 긴 노동시간과 더불어 이들은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운전 중 화장실에 자유롭게 가기 힘든 상황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식후 물이나 커피를 의도적으로 안 마시고, 너무 오랫동안 소변을 참아 많은 기사님이 비뇨기질환과 방광염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렇게 현실에서 화장실이란 공간과 자유로운 배설의 권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공평하지 못하게 존재하고 있다. 가장 원초적이고 사적인 생리현상에 대한 배설의 공간은 높낮이가 없어야 하고, 안전해야 하며, 자유로워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오줌권’ ‘똥쌀 권리’는 평등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 사회는 더 많은 사람이 건강해지고 더 안전한 세상일 것이다.
 
손민원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손민원 손민원 성ㆍ인권 강사 필진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젊은이와 노약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남자와 여자..... 모두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들의 인권 이야기, 폭력예방, 성평등.... 교육을 통해, 나와 이웃 모든 사람이 가진 자유, 평등, 존엄에 대해 공감하는 힘을 키우기를 소망합니다. 강의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목소리를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