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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50만, 시진핑 25만 인파…북·중 혈맹이 살아났다

중앙일보 2019.07.08 05:00 종합 19면 지면보기
지난달 20일 북한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펼쳐진 대형 단체 공연이 끝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관객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연합=신화]

지난달 20일 북한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펼쳐진 대형 단체 공연이 끝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관객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연합=신화]

북·중 사회주의 혈맹이 부활했다.  

[신경진의 서핑차이나]
中 인민일보가 기록한 북·중 수뇌부 교류
김정은, 김일성 시기 공식 방문 부활시켜
中 외교부, 김씨 3대 70년간 24차례 방중
새로운 단계·신시대 북·중 발전전략 일치
대중국 외교, 사드 이어 북·중 밀착 과제로

지난 6월 20~21일 북한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평양 시민 25만명이 환영하면서다. 김동길 베이징대 사학과 교수는 “북·중 관계가 1992년 한·중 수교 이전의 친밀감을 회복했다”고 평가했다. 중국 외교부는 북·중 수교 70년 동안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지도자가 총 24차례 중국을 방문했다고 집계했다(표 참조). 북·중 수뇌부의 상호 방문을 기록한 중국 인민일보에서 변화의 추이를 살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50만 베이징 시민 천안문에서 김일성 환영
“김일성 수상이 인솔한 당·정 대표단 베이징 도착, 50만 인파 환영.” 1961년 7월 11일 자 인민일보 1면 제목이다. 김일성, 류사오치 중국 국가주석, 저우언라이 총리가 탄 무개차가 천안문 광장 앞을 지나는 모습 등 환영식 화보가 4면을 장식했다. 당시 729만 인구의 베이징 시민 가운데 6.9%인 50만 명이 천안문을 중심으로 건국문에서 영빈관까지 도열해 징과 북을 치며 김일성 일행을 맞이했다. 김일성은 다음날 류사오치와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을 담은 ‘북·중 우호 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했다. 한국에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고 한·일 관계가 정상화 조짐을 보이자 북한과 중국이 재빨리 밀착했다. 중국은 노선 다툼을 벌이던 소련에서 북한을 떼어내기 위해 시민 50만 명을 동원해 환대했다.
1961년 7월 11일자 중국 인민일보 4면. 김일성을 환영하는 천안문 광장의 중국 환영 인파 등 화보를 실었다. [인민일보 DB]

1961년 7월 11일자 중국 인민일보 4면. 김일성을 환영하는 천안문 광장의 중국 환영 인파 등 화보를 실었다. [인민일보 DB]

1961년 7월 11일자 중국 인민일보 1면. 머리기사로 50만 베이징 시민이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을 환영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인민일보 DB]

1961년 7월 11일자 중국 인민일보 1면. 머리기사로 50만 베이징 시민이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을 환영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인민일보 DB]

1963년 9월 16일자 인민일보 1면. 북한 평양을 방문한 류사오치 중국 국가주석을 20만 평양시민이 환영했다고 보도했다. [인민일보DB]

1963년 9월 16일자 인민일보 1면. 북한 평양을 방문한 류사오치 중국 국가주석을 20만 평양시민이 환영했다고 보도했다. [인민일보DB]

1975년 4월 19일자 인민일보 1면. 김일성(오른쪽)이 베이징에서 마오쩌둥(왼쪽)을 만난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인민일보DB]

1975년 4월 19일자 인민일보 1면. 김일성(오른쪽)이 베이징에서 마오쩌둥(왼쪽)을 만난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인민일보DB]

1961년 7월 10일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과 환영나온 중국 고위 인사들이 베이징 공항 청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민일보 DB]

1961년 7월 10일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과 환영나온 중국 고위 인사들이 베이징 공항 청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민일보 DB]

1961년 7월 10일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을 환영하는 베이징 시민들이 천안문 앞에서 깃발을 흔들며 환오하고 있다. [인민일보 DB]

1961년 7월 10일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을 환영하는 베이징 시민들이 천안문 앞에서 깃발을 흔들며 환오하고 있다. [인민일보 DB]

1963년 9월 15일 북한 평양을 방문한 류사오치 중국 국가주석을 20만 평양시민이 환영하고 있다. [인민일보DB]

1963년 9월 15일 북한 평양을 방문한 류사오치 중국 국가주석을 20만 평양시민이 환영하고 있다. [인민일보DB]

1961년 7월 10일 김일성, 류사오치, 저우언라이가 탄 무개차가 천안문 앞의 환영 인파를 지나고 있다. [인민일보DB]

1961년 7월 10일 김일성, 류사오치, 저우언라이가 탄 무개차가 천안문 앞의 환영 인파를 지나고 있다. [인민일보DB]

1963년 9월 15일 류사오치 주석이 평양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평양 시민 20만 명이 동원됐다. 당시 인구 150만 명 가운데 약 13%다. 평양역에 김일성·마오쩌둥·류사오치 세 명의 초상이 걸렸다. 환영식에 21발의 예포가 발사됐다. 환영 인파는 “만싸이(曼赛)! 만싸이!”를 외쳤다. 인민일보가 만세를 한글 발음 그대로 표기했다. 아바지(阿爸基·아버지)와 아마니(阿媽尼·어머니)가 백발이 성성하게 환영했다며 한글을 표기하며 북한에 호의를 표시했다.
중국 건국 기념일도 챙겼다. 5주년과 10주년 기념식에 김일성이 대표단을 인솔해 베이징을 방문했다. 1959년 10월 1일 천안문 열병식에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베트남 호찌민 주석 등 공산권 지도자와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국 원로와 앞줄에 함께 섰다.
국빈 방문은 1982년 이뤄졌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숨진 뒤 북·중 혈맹을 새롭게 다졌다. 천안문 성루에 대형 홍등이 걸리고 주요 도로에 국기가 걸렸다. 베이징 역에 어린이 4000여 명이 나와 꽃다발을 들고 손님을 맞이했다.
김일성은 베이징과 한반도 통일을 깊이 논의했다. 국빈 환영 만찬장에서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조선(한반도) 통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미국 군대를 남조선(한국)에서 철수시키고 미 제국주의가 만든 ‘두 개의 조선’ 정책을 제지하고 분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9년 뒤인 1991년 10월에는 장쩌민 주석을 만나 “하나의 민족, 하나의 나라, 두 개의 제도, 두 개 정부”라는 기초 위에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하겠다고 지지를 요청했다. 이는 “누가 누구를 먹어치울 수 없는 방법”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자 북·중 교류는 얼어붙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5월부터 비공식 방문 8차례와 2011년 8월 국경 통과까지 모두 아홉 차례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공식 방문은 없었다. 선군정치와 개혁개방 노선 사이의 간극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변화는 지난해 시작됐다. 시 주석의 6월 평양 방문은 결정적이었다. 1991년 김일성 이후 사라진 정식우호 방문이 부활했다. 김일성 시절로 북·중 관계를 복원했다는 의미다. 쑹타오(宋濤) 중앙 대외연락부장은 지난달 21일 “두 당과 두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중·조 우호의 새로운 챕터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안치영 인천대 중국학과 교수는 “김정은이 지난해 3월 중국을 방문한 바로 뒤인 4월 노동당 7기 3차 전체회의에서 경제 건설 중심의 새로운 전략 노선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시진핑의 중국이 세계에 보급하고자 하는 ‘중국 방안’의 첫 시험대를 북한이 자처하면서 북·중 밀착이 성사됐다는 설명이다. 북한식 사회주의의 ‘새로운 단계’와 중국의 ‘신시대’로 두 나라 발전 전략이 일치한 셈이다.
김동길 베이징대 교수는 “평양 회담에 먀오화(苗華) 정치공작부 주임이 참석하면서 북·중 군사교류가 재개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후견인으로 심리적 지지를 북한에 제공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10월 1일 건국 70주년 열병식에 북한 군사 대표가 참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국제정세를 고려해 정상급 외빈 초청 없이 국내 행사로 치를 것이란 관측이 높다.
한·중 수교 이후 남·북 등거리 외교를 해온 중국이 북한에 경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중국어 학과)는 “북한과 중국의 사회주의 연대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에 이어 대중국 외교의 현안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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